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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1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2 - 작은 존재들의 세상

2023년 02월 13일 월요일


 동생이 병상에 잠들어 있는지 11일 차


 휴대폰은 여전히 잠잠하다.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은 아직도 없다. 병원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연락을 준다고 하는데 오히려 연락이 안 오는 게 더 좋은 건가. 그래 연락이 안 왔으면 좋겠다. 차라리 내가 면회를 갔을 때 눈을 뜨기를 바란다. 미신이라는 거 알지만 유튜브 제너럴 리딩 타로 주제가 '곧 듣게 될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재회카드가 떴다. 그 단어가 연인 간의 만남에서만 유효한 건지 가족도 해당이 되는지 알아보려고 검색을 했다. 어학 사전에서 재회란 '다시 만남 또는 두 번째로 만남'이라고 한다. 곧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일이 화요일로 두 번째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대를 해본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한순간에 찾아오며 우리의 삶은 180 º 바뀐다. 아니 아직은 90 º 만 바뀌었다. 분명 변화는 찾아왔지만 그건 우리 가족에게만 한정적이다. 내 삶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큰 사건으로 모든 것들이 중단될 위기를 겪게 되었지만 나의 일상은 중단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떤 것이 중요할지 혼란스러운 지금도 나는 내 삶을 살아내야 한다. 동생이 수술을 했고 그 문제가 내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한데 나는 여전히 내 할 일도 같이 해나가야 한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나 하나만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가족의 문제도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막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지금은 모든 일이 손에 안 잡히지만 그러한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나는 내 삶도 헤쳐나가야 한다. 취업지원제도를 하고 있어 취업수당을 받기 위해선 한 달에 두 가지 취업활동을 해야 한다. 이 와중에도 소개받은 일자리에 연락을 취하며 취업특강을 신청해야 하는 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멈추고 싶지만 같이 멈출 순 없다. 옆에서 함께하고 싶지만 세상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건강이 제일 큰 축복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 축복이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살아간다. 제일 소중한 건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 먹고살기 바빠서 소홀해진다. 그런데 가족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겠지. 돈이 있어야 가족을 지키니깐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가족 옆에 항상 있을 수가 없다. 다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돈만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분명히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딜레마에 빠진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잃을 건 있었고 둘 다를 얻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언제까지 그 고민을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고민하고 내일도 고민하며 답을 찾아봐야겠다.


 나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었다. 시간적 여유를 얻어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의 최종 목표였다. 가족들이 돈 걱정 없이 놀 수 있게 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인생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내가 기대했던 행복이 안개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가족과 여행을 다닐 때는 돈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행복이 있었다. 그 부족함을 채우고 행복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조건 돈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일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완전한 만족이 없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채워지면 지금보다는 더 걱정 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이 내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에서 인간 하나는 분명 작은 존재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와도 같이 소리소문 없이 왔다가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그 인간 하나는 누군가의 부모, 자식, 형제, 친구 내 주변 사람이다. 작은 존재임은 틀림없는데 그 사람 하나가 주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의 죽음은 나에게도 죽음이 되며 그의 아픔은 나에게 슬픔이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이 흘러가는데 나는 그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다. 정말이지 인생은 복잡 미묘하다. 때론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있다. 모든 것들은 안을 들여다보면 시끄러운데 정작 바깥은 고요하다. 분명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일들로 흘러가고 있다. 병원에 있다 보면 하루에도 구급차 사이렌이 몇 번이나 울리며 새로운 환자를 싣고 온다. 병원에는 아프고 다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사고가 벌어진다니 고요하고 평화로웠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깨져버렸다. 사실 나랑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관심이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내 일이 되니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간접적인 경험과 직접적인 경험은 아무래도 이해와 감정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머리로는 알기에 이해는 가능하지만 그 일로 겪게 되는 모든 감정을 전부 공감하지는 못한다. 물론 본인이 겪게 될 일들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사건의 의미가 같을 수가 없다. 다만 어렴풋이 지레짐작하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난 오늘도 아파하고만 있을 순 없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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