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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1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 - 애써 외면했던 마음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오늘은 경기도에 있는 체육관에서  합동 세미나가 열려 참여를 했다. 평소에 다니던 체육관에서 같이 운동했던 관원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점에 다니고 있는 관원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운동을 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동안 개인 사정으로 인해 체육관에 나가지 못하다가 한 달 만에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경기도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관장님과 관원들을 마주쳤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요즘 체육관은 왜 안 나오냐는 질문에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다 사실대로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관원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역에 도착하니 또 다른 관원을 만났다. 이렇게 같은 지점 관원들이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어 함께 체육관으로 향했다. 2시까지 가야 하는데 시간을 보니 3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다들 약속이나 한 듯 헐레벌떡 뛰어갔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가뿐 숨을 진정시키며  도장 안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얼굴도 보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탈의실에서 도복을 갈아입고 잠시 기다리니 합동 훈련이 시작되었다.


 다른 지점에는 중학생들도 많았는데 어린아이들이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물론 3개월 남짓 배워서 누구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중학생들은 나보다 체구가 작았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젊어서 그런지 몸짓이 작아도 민첩성이나 힘이 어찌나 좋은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동안 배웠던 기술은 전부 어디로 갔는지 내 머릿속은 새하얗다. 정신을 차려보면 상대방의 기술에 걸려 중학생을 상대로 탭을 어찌나 많이 쳤는지 어디 가서 운동했다고 말도 못 하겠다. 한 달 만에 격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스파링을 하고 나니 어깨랑 목이 다 뭉쳤다. 그 좋던 체력이 다 어디로 갔나 모르겠다. 그래도 오랜만에 사람들과 만나 땀을 내며 운동을 하니 활기찬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운동이 끝난 후 관장님과 같은 지점 관원들끼리 모여 콩나물 국밥을 먹고 보드게임 카페를 갔다. 보드게임은 오랜만이다. 게임을 자주 하지 않아서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게임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초심자의 행운 같은 거였겠지만 말이다.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덧 3시간을 훌쩍 넘겨 시계는 10시를 가리켰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아쉽지만 게임은 이쯤에서 끝내고 해산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관원들은 동생 일이 잘 해결될 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위로를 했다. 관원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니 마음이 안 좋기도 하고 자신의 가족처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게 고맙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 보니 괜히 밝은 에너지 속에서 나 혼자만 어두운 그림자를 지닌 것 같았다. 나는 같이 있는 사람들의 밝은 기운을 받고 있는데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기운이 전달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편으론 이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동생은 지금 사경을 헤매며 병원에 누워있는데 누나라는 사람은 게임이나 하며 하하 호호 웃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다가도 집으로 오는 길에서는 눈물이 났다. 내 삶이 버거워서 그런 건지 혼자 있을 엄마가 가여워서인지 아니면 동생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오늘은 정말 괜찮은 하루였다. 운동을 해서인지 오히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힘든 일도 없었다. 분명히 남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잘 지냈다. 그런데 왜 이럴까. 아직은 동생이 깨어나지 않았지만 곧 씩씩하게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서 슬프진 않은데 거울에 비친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 어떤 이유로 눈물이 나는 건지 나도 내 감정을 잘 모르겠다. 인간은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슬픔을 내려두고 다른 감정들을 쌓는 듯하다. 맨 아래로 숨기다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 슬픔이라는 감정은 무뎌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되면 애써 무시하고 있던 감정이 올라온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다가 괜찮아졌다고 방심한 순간 내 안에 있던 진짜 속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지금이 그 순간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는 내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어지니 감춰왔던 본연의 내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그제야 다시 한번 내 마음을 깨닫게 된다. 나 지금 강한 척하지만 사실 굉장히 두렵고 무섭다. 솔직히 동생이 이겨낼 거라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올라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내 생각 때문에 진짜 동생이 잘못될까 봐 불안한 마음을 부정한다. 그렇게 애써 슬픈 감정까지 부정했다. 나는 내 감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여전히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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