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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0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 - 괜찮다고 하지만 괜찮지 않다.


2023년 2월 9일 목요일


 2월이 되고 나서 두 번째 데이트다. 우리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만큼 서로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화, 금은 동생 면회를 가야 해서 만날 수 없고 나머지 요일에는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날에 자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각자의 스케줄이 있어 약속을 잡기가 까다로웠다. 그래도 이번주는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아서 좋았다. 남자친구의 업무 때문에 오늘은 3시간 정도 같이 있을 수 있다. 짧은 시간이라 아쉬웠지만 함께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우선 남자친구가 궁금하다고 했던 가구, 인테리어 박람회를 구경하기 위해서 양재 aT센터로 향했다. 박람회가 얼마나 재밌을지 기대하는 남자친구의 눈빛을 보니 불안해졌다. 전에 가봤던 경험상 볼거리가 풍성하지 않아서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고 나면 실망을  모습이 상상이 돼서인지 내가 괜히 눈치가 보였다. 남자친구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랬던  같다. 매표소 앞을 도착하니 압구부터 분위기가 썰렁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안을 들어가 보니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많았고 젊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대로 박람회는 시시했다.  예상을 빗나갔던  생각보다 긍정적인 자친구의 반응이었다. 박람회를 둘러보는 데에는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정이 빠듯하기도 했고 저녁도 먹어야 하는지라 서둘러 박람회장을 빠져나왔다.


 길거리에 나와서는 가려고 검색해 본 식당을 찾기 바빴다.  10 정도 걸었을까 오늘은 현지인 맛집이라는 식당을 도착했다. 짬뽕과 간짜장, 탕수육을 시키고 빨리 나오기 만을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문량이 많다 보니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늦게 나왔다.  5 50분쯤에 간짜장과 짬뽕이 먼저 나왔다. 탕수육도  나오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문에 문제가 생겼는지 가게 직원끼리 언쟁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필 우리가 앉은 테이블이 주방과 가까워서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다. 직원들끼리 소통이 되지 않았는지 탕수육이 누락되었던 것이다. 서로의 탓을 하는 대화를 듣고 누구의 잘못인지는 나중에 따지고 문제부터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가뜩이나   먹는 속도가 느린데 음식을   먹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7시까지는 동네로 도착해야 했기에 먹는 내내 시간을 확인했다. 여유로운 저녁과는 정말 거리가 멀었다.


 결국은 시간이 다 돼서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나왔다. 시간을 맞추느라 급하게 먹어서 헛배가 불렀다. 배부름을 느낄 틈도 없이 우리는 지하철로 이동해야 했다. 다행히 동네까지는 시간을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데이트가 순식간에 끝나버린 기분이었다. 바쁘기만 하고 실속은 없는 느낌이었달까. 오늘도 깊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었음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남자친구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어서 조금 돌아가는 길로 걸었다. 문제의 횡단보도. 이 앞에 서기만 하면 언제 함께했었냐는 듯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멀찍이 떨어진다. 누가 보면 금지된 사랑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데이트 마지막에는 항상 우리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된다. 이상하게도 데이트가 끝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동생을 내버려 두고 나 혼자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지금 상황이 안 좋은데 내가 태평하게 이러고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나도 내 생활이 있으니 가족한테만 얽매여 있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럴 수 없다는 양가감정이 교차한다. 항상 마음 안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어떤 게 정답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마냥 우울하게 있자니 아닌 것 같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니 이 또한 아닌 것 같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참으로 불편하리 만치 내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하는 게 맞는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들처럼 지내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가족이 아프니 나도 같이 아파하는 것이 맞을까. 이건 동생이 일어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동생 일은 잠시 잊고 내 시간을 즐기고 나면 항상 누군가에게는 하루에 한 번씩 연락이 온다. 나에게 연락한 사람들은 동생이 괜찮은지, 달라진 건 없는지, 병원에서 전화는 없었는지, 밥은 먹었는지, 엄마를 잘 챙기고 있는지를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보곤 한다. 내가 유일하게 동생과 가까이에 있으니 나에게 안부를 묻는 것이다. 이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전화가 끝나고 나면 항상 이게 네가 마주한 현실이라고 다시 상기시키는 것 같았다. 오늘 뭐 했냐는 가족의 질문에 남자친구를 만났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가족이 아픈데 너는 심각성이 없구나라고 말할 것 같았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말했고  엄마는 내가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괘씸하다고 했다. 그 말들이 나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왔다. 아무리 미워했던 아빠라도 괜찮을 리가 있나 미워도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준 아빠였다. 더 이상 그와 관련된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으니깐 괜찮다고 말하는 거지 그 상황에서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건 그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현실감각이 없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안 좋은 일들이 닥쳤을 때 슬프고 힘들다는 걸 알면서 괜찮냐고 물어본다. 일일이 내 감정을 다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괜찮다고 대답하면 그 말에 안도한다. 괜찮냐는 이 말이 누구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질문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되고 괜찮냐고 묻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쁜 마음은 안 들었다. 나 또한 누군가 힘들어 보일 때 그 질문을 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더욱이 사람들이 “괜찮아?”라고 묻는 말에 “괜찮다.”라는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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