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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0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7 - 생명의 나무

2023년 2월 8일 수요일


 오늘은 3주 만에 데이트가 있는 날이었다. 명절에는 본가에 내려가 있느라 만나지 못했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동생이 갑자기 쓰러져서 만나지 못했다.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장거리 커플처럼 지냈다. 그동안 못 만났던 만큼 이번주만큼은 시간이 될 때마다 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꾸미고 나갔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빛의 시어터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부리나케 나갔다. 약속장소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남자친구였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가벼운 포옹을 하고 난 뒤 지하철을 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거운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기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담아두기로 했다. 그렇게 서로 가벼운 대화만 주고받다 호텔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광나루역에서 내렸다.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산 뒤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힘든 걸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겉도는 대화만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창문에 비치는 내 얼굴을 마주했다. 애써 밝은 척해보지만 그늘진 모습이 보였다. 몇 주 만에 하는 데이트라서 좋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놀러 나왔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생각이 많아지려는 찰나에 호텔에 도착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전시회장 입구를 찾아다녔다. 바코드를 찍고 입장을 하니 어둡고 빈 공간이 나왔다. 마침 우리가 입장을 했을 때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이 상영 중이었다. 빛의 시어터는 빛과 공간을 활용한 입체적인 전시회였다. 사람들이 서있는 바닥과 천장 모든 벽면이 작품으로 빼곡히 들어찼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다가 작품명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지만 익숙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생명의 나무’


 황금나무가 땅속뿌리에서부터 가지까지 뻗어나가는 영상을 지켜보았다. 이상하게 그 작품을 보는데 자꾸만 동생이 떠올랐다. 작품명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생명의 나무였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자연의 이치는 맞지만 나는 기적을 기다린다.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진 삶. 동생이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바라봤다. 가만히 앉아 스쳐 지나가는 작품들을 보니 생명을 이야기하는 그림들이 많았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건 불변의 진리다. 죽음을 부정하는 건 자연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 한다. 제발 누군가 내 소원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다. 아직까지는 동생의 생명을 앗아가면 안 된다고 누구든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 죽음이 지금 당장은 아니라며 말이다. 아직 반 오십도 안 됐는데 데려갈 거면 60년이 훨씬 지난 후에 데려가라고 기도했다.


 남자친구와 같이 있는 시간이 좋긴 했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전시회 다 구경하고 구의역 근처로 가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주꾸미를 먹었는데 요즘 스트레스 때문인지 먹고 나니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저녁에 일이 있었기에 카페에 들렀다가 헤어지기로 했다. 역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서 메뉴를 골랐다. 위가 쓰라려 배에 손을 갖다 대고 있으니 카페 사장님이 내 상태를 눈치채고 마실만한 메뉴를 추천해 줬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와서 같이 있었던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다. 남자친구는 걱정하는 내색을 안 하다가 헤어지기 전에 약국에 들러 약을 사서 건네주었다. 이게 이 남자의 애정 표현이었다.


 이렇게 헤어지기는 아쉬워서 집 가는 길을 조금 돌아서 같이 걸어갔다. 하지만 비밀연애였기 때문에 동네에서는 아는 사람을 만날까 조심스러웠다. 횡단보도 앞에서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멀찍이 거리를 뒀다. 그렇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만나는 순간에는 좋았다가 헤어질 때는 늘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가 이상한 건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동생은 그러고 있는데 나는 한가롭게 데이트를 하고 있자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남자친구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집에 가서 마음을 추슬러보려 했지만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데이트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좋은 척, 밝은 척했다. 그 사람한테 내 우울한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지 않아서 하루종일 노력했다. 애써 내 마음을 외면한 채 괜찮은 척하다가 어느 순간 모르게 무너져버렸다. 나 지금 안 괜찮고 위로받고 싶다며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서로 만난 지도 얼마 안 됐고 아직도 알아가는 중인데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아직까지는 모든 걸 공유할 만큼 편하지도 않았다. 혼자 남겨졌을 때야 오롯이 나와 마주하게 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내 감정에 가장 솔직해진다. 한 동안 펑펑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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