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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1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 -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자정이 넘은 시간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내 방에서 물건들을 몇 가지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유리볼과 옷 그리고 성경책이었다. 무교인데 성경책이 왜 내 방에 있는지 말하자면 사연이 길다. 대학생 때 하마터면 사이비 종교에 포교당할 뻔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구매한 것이다. 포교 활동하던 사람은 자신이 심리상담사라면서 다가왔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간 만났었다. 처음에는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다. 만나서도 그림 테스트를 하며 심리를 설명해 주고, 영화 ‘인사이드아웃’을 보고 감상평 토론을 했다.  조금 귀찮았던 건 하루 3가지 감사한 것들을 문자로 보내야 했다는 거 말고는 별 다른 점을 몰랐다. 그러다 만남이 한 달 정도 되니 성경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성경책이 없어도 되지만 하나 정도는 개인 소장용으로 있는 게 좋다길래 의심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그 사람이 친절하게 성경책 보는 법도 알려줬던 것 같다. 이제 내가 넘어왔다 싶었는지 본격적인 세뇌를 위해 센터에 갈 것을 제안했는데 월, 화, 목, 금을 가야 한단다. 솔직히 일주일에 1번도 귀찮은데 4번이라고 하니 너무 귀찮았고 내가 그렇게 까지 할 정도로 신앙심이 강한 사람도 아니라서 거절하였다. 그냥 혼자 성경공부를 해도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추천해 줘서 감사하지만 사양하겠다고 했다. 그땐 왜 그렇게 의심을 안 하고 순순히 따랐을까 지금 생각하면 의문이다. 물론 그 이후로 성경책을 편 적이 없다. 아무래도 나의 게으름이 사이비 포교활동을 이길 정도로 강력했던 것 같다. 아무튼 엄마는 내 방 안을 뒤지다가 가족 앨범을 발견했고 구경을 하다가 나중에 잔다며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 안 봐도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릴 게 분명했다. 엄마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순순히 전화를 끊었다.  


 잠을 자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폰을 확인해 보니 엄마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퇴근을 하고 KTX를 타면 서울역에는 오후 9시 22분쯤 도착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문자를 받고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는 아주 단순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점심으로 간단하게 만두 5개를 먹었다. 무언가를 먹기도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럴 때일수록 억지로라도 더 힘을 내야 하는데 의욕이 안 생긴다. 그래도 무언가를 해보려고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 어쩌면 동생일을 핑계 삼아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요즘은 미친 듯이 캔디크러쉬 사가만 하고 있다. 캔디 크러쉬 사가는 유일하게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이다. 중학생부터 했으니 한 11년은 된 것 같다. 예전부터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때 사탕을 터트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내 속이 터지는 것보단 사탕이 터지는 걸 보는 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고 은근히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한 동안은 잘 안 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지금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긴 한가보다.


 시간이 흐르고 서울역으로 엄마를 만나러 나갔다. 동생 병원으로 면회 간 날 이후로는 외출이 처음이다. 그래봤자 이틀밖에 안 됐지만 왠지 시간이 많이 지난 기분이다.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쐬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아무 생각도 없이 무슨 정신으로 서울역에 도착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만나서는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늦을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들은 하나둘 마감을 하고 있었다. 우리 모녀가 가장 어려워하는 메뉴 선택하기. 한참 동안 식당 바깥에 있는 메뉴판을 보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겨우 고르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마감 시간이라서 돈가스도 안 되고 육개장도 안 되고 설렁탕만 가능하다고 해서 결국은 선택지에 없던 설렁탕을 먹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왜 그렇게 고민을 했을까. 종업원은 우리의 실망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설렁탕도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하였다. 메뉴는 정말 빠르게 나왔고 밥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내가 고민해 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나중에 정 안 되면 내가 병간호할게"

엄마가 내 말에 멈칫하더니 말을 꺼냈다.

"안 힘들겠나?"

"병간호 브이로그나 찍어보지 뭐."

"하다가 힘들면 안 해도 되고 꼭 안 해도 된다."

"백수가 해야지 어차피 몇 달 더 쉰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네가 안쓰러워서 그렇지. 한다고 하면 차라리 간병비를 너한테 줄게."

"그건 나중이고 만약 한다면 적금이랑 관리비만 해결해 줘."

"그건 당연히 해줘야지."


 엄마는 병간호를 하겠다는 내 제안에 선뜻 그러라고는 하지 못했다. 정말 괜찮겠냐며 힘들면 참지 말고 말하란 말을 여러 번 했다. 내 말을 듣고 고마워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해하며 복잡해 보이는 감정들이 엄마의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갔다. 참고로 설렁탕은 그저 그랬다.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먹는 맛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갔다. 쓰디쓴 하루를 달콤함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이제는 걸을 때마다 무릎이 아프다고 하는 엄마를 보니 새삼스레 엄마의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버린 눈과 며칠 새에 자라난 흰머리, 빠져버린 엄마의 볼살을 보니 각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엄마도 나도 힘든 상황으로 인해 많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우리의 몰골은 말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이 직접 이 모습을 봐야 한다. 그러면 불쌍하게 생각해서라도 빨리 의식을 차릴 텐데 말이다. 자기보다 늙은 누나와 엄마를 일부러 고생시켜서 지금 보다 더 늙어 보이게 할 심산이 아니라면 얼른 일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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