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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1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6 - 동생 생일 D-1

2023년 2월 17일 금요일


동생 생일 하루 전날


 오늘은 면회를 가는 날이다. 오전 10시쯤에 출발해야 병원까지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다. 주말에는 동생집에서 지낼 예정이기에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출발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하러 가는 길을 걷는데 세상만사 다 귀찮아진다. 걷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한 것도 없는데 오늘따라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니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열심히 달려가는 구급차가 보였다. 요즘엔 구급차만 보면 저 차 안에는 또 어떤 사람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겠거니.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별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환자실을 올라가기 전 병원 1층에 있는 스타벅스를 들렸다.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했는데 면회 시간까지 애매하게 남아서 매장에 잠시 앉아 있었다. 우리를 보고 직원이 다가와 머그컵에 담긴 음료만 매장 안에서 취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 앉아 있을 거면 머그컵에 다시 담아준다는 말을 듣고 어차피 금방 나갈 예정이었다고 괜찮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이러나저러나 우리가 주문한 음료는 이미 나왔는데 그걸 다시 또 머그컵에 담으면 두 번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매장 안에서 마시다가 테이크 아웃을 원하면 일회용 컵에 담아준다. 그렇다는 건 머그컵을 세척하느라 세제와 물도 낭비하고 테이크 아웃을 해주느라 결국 플라스틱도 사용하게 되는 건데 이게 더 환경을 파괴하는 것 아닌가. 이런 허술한 규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건지 세상에 자꾸 의문이 생기는 날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은 좋다. 문제는 막 쓰는 놈은 지금도 막 쓰고 있고 아끼는 놈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 운동을 취지로 하는 건 알겠는데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은 것을 보니 괜히 쓸데없는 불만과 의문들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요즘 내가 세상에 화가 많아졌나 보다.


 시간이 되어 중환자실에 올라가 보니 사람들이 가득하다. 의자는 있는데 앉을 곳이 없다. 의자 위에 가방을 두고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른 사람은 앉지도 못하게 사람대신 짐이 올려진 의자를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몸이 지치니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졌다. 그리고 동생이 수술실에 들어간 날 새벽에 사람이 없어서 의자에 짐을 잔뜩 올려놓았는데 면회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어떤 아주머니가 의자에 앉게 물건을 치워달라고 말을 한 것이 떠올랐다. 나를 향한 말투에는 상당한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그때는 그냥 화가 많은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주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내가 봐도 매너가 없었다. 그날은 밤을 새우고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물건이 의자에 올려져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경황이 없어서 미리 치울 생각을 못했는데 그날의 실수를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었다. 잠시 과거 회상에 빠져있다가 서 있을 힘이 없어서 그냥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니 빈자리가 생겨서 의자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다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면담실로 들어갔다. 교수님과의 면담이 진행됐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동생의 상태를 보니 다음 주 월요일에는 머리뼈 봉합술을 진행해도 될 것 같다고 한다. 교수님은 나에게 설명을 하다가 중환자실에 전화를 걸어 면회 중인 엄마를 면담실로 불러냈다. 겨우 20분 남짓한 시간이라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왔는데 그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보여 기분이 언짢았다. 면회가 끝나고 설명을 해줘도 될 텐데 굳이 도중에 불러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엄마가 면담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교수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동생을 중환자실에 계속 둘 순 없기에 자가호흡이 돌아오고 회복이 어느 정도 되었다면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도 일반병실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활훈련을 통해 차츰차츰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말에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동생의 식도에 튜브를 연결한 지 2주 정도가 되어 빼낼 시기가 되었지만 머리 봉합 수술까지 마친 다음 제거를 한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2차 수술을 하게 되면 다시 튜브를 연결해야 하는데 뺏다가 다시 넣는 것만으로도 식도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기관지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2차 두개골 성형술은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지만 뇌에 손상이 갈 수고 있고 부작용으로 뇌출혈, 경련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동생에게만 나타나는 부작용은 아니고 수술을 하다 보면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부작용의 가능성을 말한 거지 모든 사람한테 발생하지는 않는다며 걱정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긴 했다. 머리뼈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낮은 확률로 감염이 있을 수 있으며 감염 시에는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때는 본인의 머리뼈가 아니라 3D 프린터로 제작된 티타늄 소재의 인공막으로 머리뼈를 대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살면서 평생 들어볼 일 없었던 어마무시한 이야기를 듣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했다.


 혹시나 싶어 교수님께 미주 신경성 실신이 뇌출혈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전혀 관련이 없다고 했다. 실신이면 심장이나 신경 쪽에 문제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동생한테는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았고 미주 신경성 실신 자체로는 뇌출혈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했다. 굳이 따지자면 실신으로 쓰러지면서 2차 부상으로 인해 뇌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동생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뇌출혈이 일어났을 가능성에 대해 물었더니 영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명확한 인과관계 규명하기엔 한계가 있어 결론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동생에게 발생한 뇌출혈의 직접적인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면담이 끝나고 엄마에게 동생의 상태를 물어보니 눈을 깜박이긴 했지만 자신이 있는 쪽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쳐다보며 자극을 줄 때만 반응을 한다고 하였다. 엄마는 교수님과 면담을 하고 나서 많이 실망한 눈치였다. 나는 수술 첫날 최악 중에서 가장 최악의 경우만 들어서인지 오히려 교수님의 말이 긍정적으로 들렸다. 실망한 기색이 여력 한 엄마에게 죽을 고비를 넘긴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하며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하였다. 동생이 목숨을 건졌다는 것부터 다행이고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남았는데 벌써부터 실망하고 불안해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아서 다정한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엄마도 지쳤는지 병원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잠깐 쉬었다가 이동하자고 말했다. 그러고선 나에게 들려줄 것이 있다며 녹음파일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녹음한 것을 틀어보니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날 동생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니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자신은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세상을 즐기는데 혼자 있는 엄마를 생각하니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최대한 지원을 해줄 테니 앞으로는 엄마가 하고 싶었던 취미 활동을 하라고 했단다. 자기가 좋았던 경험을 엄마도 느껴봤으면 한다고 말이다. 아들의 말을 듣고 엄마가 당장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하니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하고 싶은 걸 미리 생각하고 있으면 나중에라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단다. 나한테 들려준 건 그 당시의 대화를 녹음으로 남긴 것이었다.  엄마는 아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을 보였다. 휴지를 꺼내 들고 눈물을 닦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아들이 딸보다 낫네. 근데 엄마 눈물 닦을 땐 핸드타월이 낫더라. 그게 안 찢어지고 흡수가 잘되더라고."

엄마가 울다가 내 말에 실소를 하며 말했다.

"아, 감정이 파괴됐어."


 실컷 쉬었으니 집으로 가기 위해 병원을 밖을 나섰다. 우선은 가까운 곳에서 점심부터 해결해야 했다. 입맛은 없었지만 밥은 먹어야 할 것 같아 동백역 근처에 있는 닭갈비집을 갔다. 원래는 장칼국수를 먹으러 갈 예정이었는데 식당을 찾아가는 도중에 우연히 맡은 닭갈비의 냄새에 유혹을 당해버렸다. 입맛은 없지만 냄새를 못 맡는 건 아니라서 말이다. 엄마는 기분이 꿀꿀했는지 막걸리를 마시자고 하였다. 대낮부터 무슨 술이냐며 질책을 했지만 어쩌겠는가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려면 같이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엔 대화를 하면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동생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받아들이라고 했다. 외면한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받아들여야겠지.


 밥을 먹고 수원에 도착해서는 미리 예약해 둔 미용실에 들렸다. 원래는 혼자 가려고 했는데 엄마도 머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함께 갔다. 지금 보니 엄마의 흰머리가 원래도 많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더 많아진 느낌이다. 엄마는 고민의 흔적을 덮기 위해  뿌리 염색을 하고 나는 펌과 커트를 하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커트만 했다. 커트만 하고 드라이를 잘하기만 한다면 내가 원했던 스타일이 나올 것 같다며 디자이너분이 커트만 추천했다. 뭐 나야 머리도 안 상하고 펌 비용까지 굳어서 좋다. 오랜만에 변화를 주니 기분전환이 되기는 했다.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었다.


 집에 와서 잠깐 쉬고 있는데 동생의 소식이 궁금했는지 할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전화를 안 해주냐고 해서 면회하고 볼 일 보다가 이제 집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월요일에 머리뼈를 닫는 수술을  한다고 말해주니 또 수술을 하는 거냐며 걱정을 하길래 별 일이 아니라며 한참을 안심시켜야 했다. 그 어떤 것보다 다른 사람을 안심시키는 게 가장 피곤한 일이었다. 엄마가 편의점을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나가 이것저것 골랐다. 오늘 이동거리가 너무 많았다. 나갔다 오니 피로가 쌓여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다.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흘러간다.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벌써 저녁시간이었다. 요즘엔 무엇을 먹어도 많이 들어가지도 않고 먹기만 하면 배탈이 자주 난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같은 증세였다. 입맛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면서 나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엄마가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었다. 입맛이 없어서 별 생각이 없다 하니 그래도 고르라길래 정말 가벼울 것 같은 타코랑 퀘사디아를 골랐다. 역시나 엄마는 또 술을 꺼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며 생소하다고 하며 소주랑 같이 먹기에는 별로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동생의 폰으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박범우’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동생 전화를 대신 받으니 내 목소리를 듣고 놀란 눈치다. 아직 동생의 소식을 모르는 것 같아서 동생의 상태를 이야기해 주었다. 전화기 너머로 한 동안 말이 없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했다. 말하지 않아도 적잖이 충격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유도 동아리 후배였다며 동생이 주변 사람을 잘 챙겨주는 정말 좋은 형이라고 말하며 울먹거렸다. 전화를 듣고 있는 엄마까지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나는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받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너무 밝게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며 시비를 걸었다. 그럼 같이 울기라도 하면서 침울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냐고 따졌고 서로의 감정이 상할 뻔했다. 아니 이미 살짝 상했지만 지금은 함께 해야 해서 서로 하고 싶은 말들을 각자 눌러 담았다.


 이번엔 내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연선이는 동생의 소식을 듣고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몰라서 2주가 지나서야 연락을 했다고 한다. 함께 한 세월이 13년이라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생각날 때마다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아주 뼛속까지 모태신앙 기독교 집안이라서 이것저것 물었다. 하물며 목사님의 딸인데 내가 집에서 막 하는 기도보단 신성하게 교회에서 치르는 친구의 기도가 더 효력이 있지 않겠냐는 나의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의 간절함이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믿음을 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보다 나와 엄마를 더 걱정했다.


“나는 너네 동생은 당연히 일어날 거니깐 걱정 안 하는데 너랑 너네 어머니가 더 걱정이 돼. 어머니는 괜찮으셔?”


당연히 엄마도 아는 친구였고 스피커폰으로 이 말을 같이 듣고 있었다. 친구의 말은 엄마의 눈물샘을 또 자극시켰다. 이건 실수다. 스피커폰을 꺼버렸어야 했다. 눈물이 나오기 직전인 엄마를 바라보았다. 불안해하는 내 눈빛과 마주치니 엄마가 머쓱해하며 웃음을 보였다.

“아니 또 눈물이 나?”

내가 놀리듯이 말을 하니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아니.. 저렇게 말을 하니까..”

친구에게 말했다.

“엄마가 네 말 듣고 울잖아.”

친구가 당황한 듯 사과를 했다.

”어.. 어머니 죄송해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

그러면서 친구도 엄마가 우는 소리에 덩달아 울었다. 그 사이에서 왠지 나도 같이 울어야 할 것 같았는데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나를 가운데 두고 엄마와 친구가 울고 있으니 이 상황이 어이가 없기도 한데 이게 뭐라고 위로가 되었다.

“둘이 날 두고 양 옆에서 뭐 하는 거야? 정작 친누나는 안 울고 있는데.. 나도 같이 울어야 하나.”

내 말에 둘 다 눈물을 그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날도 그렇게 엄마는 울다가 웃었다가를 수십 번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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