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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1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7 - 주인공 없는 생일

2023년 2월 18일 토요일


경오의 23번째 생일


 자정이 지났다. 오늘은 동생 생일이다. 12시가 되니 동생 생일을 축하한다는 연락들이 오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물샘은 마를 날이 없다. 세상 어느 곳에도 이렇게 슬픈 생일을 맞이하는 모녀는 없을 것이다. 오늘이 하필 아들 생일이라 마음이  심란했는지 아침이 되면 미역국이랑 케이크를 사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동생폰은 내가 가지고 있었지만 나도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보낸다고 하니 엄마도 따라 보내겠다고 했다. 뭐라고 보냈는지 보여달라고 하니깐 비밀이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동생폰은 내가 들고 있어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며 놀리니 굉장히 당황해하며 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시 엄마를 놀리는 건 재밌다. 문자를 확인하니 엄마가 보낸 내용은 이랬다.


아들 생일 축하해~~

빨리 일어나서 같이 케이크 자르자!

그리고 태어나줘서 고맙고 사랑해!  


 생일 축하 문자를 보고 나서 내가 아들인 것처럼 답해주면 되냐고 물어보니 한 번 보내보라고 하였다. 엄마가 소리 내어 시원하게 울고 싶다고 했으니 어떻게 해야 펑펑 울릴 수 있을지 골똘히 생각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동생으로 빙의해서 작성을 해보았다. 엄마는 아직 적고 있냐며 언제 보낼 거냐고 재촉을 했다. 문자가 도착하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하길래 집 안에서 읽으라고 하니 밖에서 읽고 올 거라며 집을 나가버렸다. 나는 최대한 동생이 적은 것 마냥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지금 꿈꾸고 있다~

근데 왜 자꾸 울고 있어?

내가 누워있기만 해서 우는 건가?

엄마가 울면 나도 속상하잖아.

내가 얼마 전에 말한 거 기억나?

엄마 취미활동 다 지원해 주기로 했잖아.

난 그 약속 꼭 지킬 거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예 울지 말란 말은 차마 못 하겠네.

힘들 땐 참지 말고 울어도 되는데 울다 지쳐서 쓰러지면 안 되니깐 건강만 잘 챙기고 있어.

내가 또 엄마 말은 잘 듣는 아들이잖아!

지금은 엄마랑 누나가 날 지키고 있지만 일어나면 앞으로 내가 옆에서 지켜줄게.

그리고 엄마가 나를 낳아준 덕분에 많은 걸 경험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었어.

힘들겠지만 나 믿고 조금만 기다려 줘.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내가 곧 갈게. 그때는 사랑한다고 직접 말해줄게.

항상 고맙고 사랑해.


엄마가 들어왔길래 어땠냐고 물어보니 눈물은 났지만 펑펑 울지는 않았다고 한다. 굉장히 아쉽다. 조금 더 감성을 자극해줬어야 했는데 능력이 부족했다. 다음을 기약한다. 그래도 아들이 답장한 것 같았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내 잠이 들었고 나는 준비하고 있는 기사 필기시험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았다. 역시나 책을 펴놓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아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밤낮은 또 바뀐 상태였기에 잠이 오지 않아 해야 되는 공부는 안 하고 딴짓만 하다가 오전 6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한창 잘 자고 있었는데 오후 12시가 조금 넘으니 엄마가 깨우기 시작했다. 더 자고 싶었지만 케이크와 미역국을 사고 와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억지로 일어났다. 우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중국집을 갔다. 엄마는 간짜장, 나는 한 그릇에 탕수육, 짬뽕, 짜장 세 가지가 나오는 세트를 시켰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식욕이 떨어졌다. 내 앞에서 간짜장을 깨작깨작 먹고 있는 엄마를 보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음식 맛없게 먹기 대회 있으면 엄마가 1등, 내가 2등 할 것 같다.”


 내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맛이 없는데 어떻게 맛있게 먹어.”


 밥을 먹다가 우리 맞은편에 앉은 대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보니 기념일이라 가족이 모여서 외식을 하러 왔나 보다. 그들을 보고  우리 집의 기념일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우리 테이블이 있는 곳만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묵직하고 어두운 공기가 엄마와  주변을 에워싸는 느낌이랄까. 남들이 보면 초상집 분위기라고 말할  같았다. 기분이 가라앉아서 입맛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먹어야 힘이 나니깐 억지로라도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섰다. 우선 카페부터 들리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주말인데 이렇게 한산할 수가 있나 싶어서 의아해하며 길을 걸어갔다. 케이크를 사러 카페에 가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다. 골목 사이마다 카페가 많아서 가까운 곳에 그냥 들어갈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생각을 접었다. 맛있는 케이크를 사기 위해서  정도는 걸을  있다. 다른 곳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동생이 일어나면 같이 카페 도장 깨기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건물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카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순식간에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바깥이 조용했던 이유가 있었다. 카페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의 말소리가 모여 시끌벅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또래로 보이는 20대들이 굉장히 많았다. 데이트를 하러 나온 연인부터 친구까지 다양했다. 엄마와 나는 케이크 하나만 재빨리 사들고 나왔다. 소란스러운 공간을 벗어나니 언제 그랬었냐는  주변이 고요해졌다. 원래라면 동생도 자기 생일이니 여자친구랑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보통 20대의 생일에는 가족보다는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물론 이번에는  누구와도 함께 하지 못하겠지만 생일은 매년 돌아오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거다. 이번연도는 엄마와 내가 대신 겨 줄 테니 동생에게 마음만이라도 전해졌으면 한다. 이제 케이크를 샀으니 미역국만 찾으면 된다. 반찬가게에는   같아서 들어갔는데 없어서 허탕을 쳤다. 아쉬운 대로 인스턴트 미역국이라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다행히 미역국을 발견했다. 이로써 생일 파티 준비는 끝났다.


 오늘이 동생 생일이라 그런지 동생폰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가 계속 왔다. 기프티콘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자들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상황을 설명하며 동생 대신 마음을 전했다. 생일 축하는 본인이 직접 받아야지 가족이 대신 받게 하면 어떻게 하냐라는 생각이 들어 따지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넘어가주기로 했다. 다음 생일은 동생이 직접 축하를 받고 답장도 할 거니깐 딱 한 번만 내가 대신해 주겠다. 엄마는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엄마가  울먹이면서 이야기했다.


“그래도 아들이 잘 살긴 했나 보다. 축하해 주는 사람이 많네.”


 저녁으로는 미역국을 먹고 케이크와 와인을 꺼내 들었다. 엄마는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주인공 없는 자리에 미역국과 수저를 두었다. 그 광경이 마치 제사상 같아서 몸서리를 치며 엄마를 질책했다. 너무 유난스럽게 느껴졌고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처럼 보여서 싫었다. 항상 생일을 각자 보냈었고 어차피 다음 생일에는 함께 할 텐데 무슨 제사상 차리냐며 엄마에게 불만을 내비치었다. 그러고는 음식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핑계로 치워버렸다. 나중에 동생에게 사진이나 보여줘야겠다. 너 없이 엄마랑 나랑 단둘이 네 생일파티했다고 자랑이나 해야겠다. 함께 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평소보다도 마음이 더욱 안 좋았던 날이었다.


 ‘야, 이경오 생일이다. 빨리 일어나라.’


 당장 답장이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동생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차피 나중에는 보게 될 테니 말이다. 자기가 누워있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날이 올 거다. 모두의 진심이 동생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경오야 23번째 생일 축하해. 내년 생일에는 꼭 셋이서 함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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