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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1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8 - 감정의 소용돌이

2023년 2월 19일 일요일


 일요일 새벽이다. 잠들지 못하는 우리의 새벽은 길었다. 엄마는 와인 2병을 마시고도 허기가 졌는지 막창과 염통을 시켰다. 배가 고파서 시키는 게 아니라 술을 마셨는데도 잠이 안 오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배라도 더 채우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다정한 딸이 아니라서 엄마가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걸 알면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못 건넨다. 오히려 더 현실을 직시하며 냉정하게 이야기해 버렸다. 엄마가 걱정되고 속상한 마음에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되고 내 말을 듣고 서운해할 걸 알면서도 못되게 행동을 하게 된다.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을 치며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엄마는 수원역에서 오전 10시 48분 KTX를 타고 내려갔다. 엄마는 내가 수원역까지 배웅을 하고 가면 집으로 가는 길이 번거로울까 봐 고민을 하는 듯했다. 물론 동생집 근처에 사당역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갈등을 했다. 엄마가 올 때마다 역까지 항상 마중을 가고 배웅을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서울까지 오느라 힘들 텐데 그래도 딸인 내가 가야지라는 생각들이 나를 힘겹게 하였다. 편함을 택하면 죄책감이 따라오고 불편함을 택하면 몸은 힘들지만 죄책감은 없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가방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면서 나에게 굶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며 10만 원을 건넸다. 그 돈을 받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는 이렇게 나를 생각하는데 잠시라도 저런 생각을 가졌던 내가 너무 싫었다.


 엄마가 기차에 오르고 자리에 앉아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이제 가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런데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기차가 떠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참 우리 모녀사이는 서로를 위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툴툴거리는 게 주특기이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 아닌 척 강한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참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4일 내내 같이 있을 때는 다행히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엄마가 눈물을 보일 때면 어떻게든 눈물을 그치도록 가볍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였다. 생각보다 잘 참아냈기에 더 이상은 흘릴 눈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눈물이 날까. 혹여나 누군가 이 모습을 볼까 창 밖만 쳐다봤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물, 콧물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버스는 동생이 사는 곳을 지나쳤고 동생의 집이 버스 안에서도 보였다. 주인이 없는 빈 방을 생각하니 여러 감정이 교차하며 눈물이 났다. 엄마가 걱정하는 걸 나도 똑같이 걱정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지금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걱정하는 모습에 화가 나서 일부러 공감도 해주지 않고 같이 슬퍼하지도 않았다. 한 명이 감정적이면 또 다른 한 명은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와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게 어색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억제했던 감정들이 올라오나 보다.


 내일이면 두개골 성형술을 한다는데 무사히  되기를 기도하면서도 혹여나 동생에게 무리가 되는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려운 수술아니라지만 그래도 수술을 하는 거라 뇌에 손상을   있다고 한다. 흔한 부작용으론 뇌출혈, 경련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웠지만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애썼다. 이번 수술도 무사히  버텨줄 거라고 믿는다. 당연히 믿고는 있는데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을 뿐이다. 앞으로  날이 많은데 부작용으로 고생을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평생의 장애가 생긴다면  사실을  받아들일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동생 성격이 순하다고  수는 없지만 나름 착하게 살았는데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제발   없이 기적처럼 건강하게 일어나서 일상생활을   있으면 좋겠다. 고작  21, 어제부로 생일이 지났으니 이제  22세다. 23살의 생일은 잠든 사이에 지나가서 기억을   것이다. 동생이 깨어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가  다른 생일 아니겠는가.  번째 삶의 기회가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날이 되면 성대하게 생일 축하해  테니깐 빨리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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