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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2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27 - 나에게 찾아온 행운 3가지

2023년 2월 28일 화요일


<힘들었던 연애와의 이별>


 오늘은 2월의 마지막 날이다. 2월을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남자친구와 이별을 했다. 아니 차였다는   정확한 건가. 나와 너무나도 정반대인 남자와 만나기에는  여건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다퉈서 헤어졌다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아닌 나의 말이 상대방의 발작버튼을 누른  같았다. 남들이 보기엔 그게 헤어질 문제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런 남자면 오히려  헤어졌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차였지만 말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친구들과 함께 먹으러  음식 사진을 남자친구에게 보내니 맛있겠다고 하길래 같이 가자고 말했다. 2시간  알았다는 표시의 이모티콘 하나만 달랑 보내놓고  이후로는 말이 없었다. 남자친구가 이모티콘만 하나 보냈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다. 어떤 답장을 해야 할지 몰라서거나  이상 이어나갈 말이 없다는 뜻이다. 연애 초에는 이모티콘도 없이 좋아요 표시만 붙였다.  카톡을 읽었는지  읽었는지 답장이 없어서 들어가 보면 좋아요만 붙어 있었다.  그렇게 하는지 물어보니 뭐라고 보내야 할지 모르겠고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그랬다고 한다.  말에 차라리 알림이라도 울리게 좋아요 말고 이모티콘 하나라도 보내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이에서는 대화를 하다가도 상대방이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면 암묵적으로 대화를 마무리하자는 것이 되어 버렸다.


 상대방의 성향이니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서운한  어쩔  없었다.  대답에 건성이다라는 말을 하니 이모티콘으로 하라고 해서 그러는 건데  그러냐고 답이 왔다.  대답에 나는 답을   있는 상황에도 이모티콘 하나만 보내고  이상 답하기 싫을 때도 그러지 않냐고 물었다.  말에 남자친구는 답장하기 싫을 때가 어디 있냐며  말이 없으니 응답하고 마무리한 거라며 고민하고 답장하는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문자를 보는데 문득  말이 없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의 대화를  이상 이어가기 싫다는 건지 의문이 들면서  말이 마치 우리가  말이 없을 정도로 얕은 관계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 대화를 이어갈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남자친구를 보고 마음이 식었다. 정작  마음은 떠났지만 대답은 성의 있게  주었다. 답장을 하는  고민될 수도 있으니 뭐가 힘든지  것도 같다며 공감해 주었다.  말에 그렇다고라는 답장이 왔길래 남자친구와 똑같이 알겠다는 표시의 이모티콘 하나만 보냈더니  뒤로 답장이 없었다.


 그러고 한참을 감감무소식이었다가 24시간 만에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한다는 말이 친구랑 좋은 시간 보냈냐며 친구랑 먹은 음식은 어땠었냐는 것이다. 이 질문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어제 한 얘기를 도대체 무슨 의도로 또 묻는 건지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었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싸우자는 건가 생각을 했지만 최대한 화를 가라않히고 맛있었으니 먹으러 가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말이 남자친구의 발작버튼이 됐던 것이다. 내 대답을 보고 생각하고 한 말이 맞냐면서 나에게 되물었다. 어떤 말이 문제가 되냐고 물으니 어이없는 답변이 왔다. ‘대화의 흐름, 말의 온도, 반응, 감정.’ 정말 딱 이 문장으로 왔다. 어젯밤 주고받았던 대화의 흐름과 연결해서 봤을 때 어제까지는 자기랑 가자고 해놓고 오늘은 혼자 가라고 하는지 자신이 왜 이런 대우와 대답을 받아야 하냐면서 따졌다. 그래서 나는 어제 일을 이야기하며 고민을 하고 답한 게 결국 할 말이 없다는 말이었어야만 했냐고 물었더니 결국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에게 복수를 한 거냐며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다면서 나에게 그만하자며 이별 통보를 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글로만 읽었을  이별을 말하기에는 너무 억지스럽고 말이  되는데 정말 이랬다.  문자를  친구들은 만나는 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했던  아니냐는 오해를 받긴 했는데 그건 확실하게 아니다. 나는 그렇게 고분고분한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불리한 요구를 들어줄 정도로 희생정신이 투철하지도 착하지도 않다나에게 맞춰주는  하지만 결국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이끌고 나가려고 했던 연애였다. 결국은 내가 자기의 방식에 순응하지 않으니 자기는 가만히 중간을 유지하는데 내가 문제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전부터  사람과의 연애에 항상 의문을 가지면서 마음이 점점 식고 있었는데 저런 태도를 보니 정신이  차려졌다. 확실하게  관계는 끊어내는  맞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만하자는  문자를 보는 순간 답답했던 속이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흔쾌히 이별통보를 받아들였다. 아쉽지도 않았다. 헤어지고 싶었지만 차마 헤어지자고 못하고 있었는데   대고 코를  기분이 이런 거구나. 이럴  알았으면 진작 헤어질  뭐가 아쉬워서 질질 끌었나 싶다.


 분명  공간에 같이 있지만 느껴졌던   없는 공허함과 감정의 교류 없이 이어지는 피상적인 대화가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27년을 살아가면서 이런  같지 않은 연애는 처음이기도 하고  정도로 연인과 거리를 두는 유형을 처음 접해보았다. 애초에 내가 선호하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는데 어떤 점에서 끌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결국은  죽일 놈의 호기심이 나를  힘들  만들었다. 퇴사하는  직장상사랑 헤어져도  당일만큼은 시원섭섭했는데 이건 그냥 후련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히려 좋다. 이것이 나에게   번째 행운이었다.


<일반병동으로의 이동>


 이별을 맞이한 아침 이제는 동생을 만나러 가야 한다. 오늘은 상태가 어떤지 자가호흡은 언제 돌아올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병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면회 시간이다. 동생이 있는 병실의 커튼을 치니 왠지 평소랑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원래는 가만히 천장을 보며 누워있는데 오늘은 침대 각도를 살짝 세워서 기대고 있었다. 눈을 뜬 채로 나를 맞이했고 자세히 보니 식도에 있던 튜브도 뺐다. 다행히 자가호흡이 돌아와 기관지 절개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잘 이겨내고 있는 동생이 너무 기특했다. 근데 내가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5분도 안 돼서 동생은 코까지 골면서 잠이 들었다. 그 전과 다르게 하품도 한다. 목에는 가래가 생기는지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아직까지는 의식이 없어서 스스로 가래를 뱉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그 덕에 목소리에는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곧 말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꾸 눈을 감아서 일어나라고 깨웠더니 내 기분 탓인가 굉장히 귀찮아하며 소리를 낸다. 이 은혜도 모르는 녀석같은이라고. 그리고 전해줄 소식이 있다며 동생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야, 나 남자친구랑 헤어졌다. 이야기 듣고 싶으면 빨리 눈떠라.”


 원래 남의 연애가 가장 재밌는 법이다. 내 말을 듣더니 눈은 움찔거리는데 잘 듣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귀랑 턱을 간질거리니 눈을 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감았다. 간호사 말로는 면회 전까지는 계속 눈뜨고 있었다고 했었는데 막상 내가 오니 잠만 자고 있다. 이 정도면 깨어 있는 게 분명하다. 지금 의식이 돌아왔는데 일부러 안 돌아온 척하는 것 같다. 아니면 내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편해서 잔다던지 그런 것 같다. 그냥 내가 좋을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교수님을 만났다. 동생 정도면 의식이 돌아올 것 같다고 하면서도 언제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일반병동을 옮겨도 될 것 같다며 슬슬 간병인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동생 상태를 보니 내가 간병을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처음에는 전문 간병인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의식이 없고 가래를 스스로 못 뱉어서 석션을 해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처음에는 옆에서 하는 거 보면서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면회가 끝나고 제일 먼저 엄마와 할머니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할머니는 너무 좋다며 눈물을 흘렸다. 일반병동으로 가면 면회를 할 수 있다는 거냐며 소녀처럼 기뻐했다. 나중에 나를 보면 고생했다며 제일 먼저 안아준다고도 말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도 기뻤다. 엄마가 간병인을 알아보니 동생은 중증환자로 분류되어 간병비가 하루에 14만 원이라고 했다. 간병비만 해도 액수가 상당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무리일 것 같아 동생이 어느 정도 움직일 수만 있게 된다면 내가 해도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일반병동을 간다는 건 안정권으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순간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것이 나에게 온 두 번째 행운이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 승인>


 작년 5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결과는 참혹하게도 미승인이었다. 내가 만만하게 생각을 했던  같다. 그렇게  번째 신청도 낙방하고  글은 세상 밖의 빛을 보지 못한 채로 서랍 속에 그대로 묵혀 두었다. 그렇게  개월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작년에는  해봤던 일들을 한창 도전하면서 실패를 많이 해서인지 무언가를  도전하기에는 탈진해 버린 상태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올해 9 퇴사를 하고 배워보고 싶던 것들을 도전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기나긴 휴식을 가지다가 2월에 취업을 하기 위해 1월까지 내달렸다. 그러다가 지금 돌부리에 걸려 모든  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에 당장 취업을 하자니 동생과 가족이 걸렸다. 갑자기 1월까지 샘솟았던 열정이 꺼져버리면서 무언가를  의지도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모든  부질없이 느껴졌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방황을 하다 글이라도 다시 쓰면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느꼈다. 피할 수도 없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사건 속에서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상황을   그대로 기록했다. 동생이 잠든 사이 잃어버린  시간을 조금이나마 글로 채워주고 싶기도 했다. 내가   있는  믿고 기다리면서  글을  내려가는  밖에 없었다. 그러한  진심이 통하기라도  건지 어젯밤에 신청했던 결과가 때가 돼서야 나타났다. 병원을 갔다가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낮잠을 자다가 하늘이 어둑해졌을 때쯤 일어났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열려고 보니 잠금화면에 이런 알림이 와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글 발행에 앞서 프로필에 ‘작가 소개’를 추가해 주세요! ’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했다. 신청하고 나서 5일 이내로 결과를 알려준다고 해서 어젯밤에 신청했던 게 하루 만에 승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안 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던 일이 벌어져서 얼떨떨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만은 않았구나 느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먹구름으로 가득했었는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시작이 좋다. 마치 안 좋은 일은 2월까지 만이라고 말하는 듯. 쾌쾌 묵은 불행과 감정들은 모두 2월 마지막날과 함께 보내주고 새로운 3월을 시작하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정말 시간이 약인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버티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오늘은 너무나 행복했던 날이었다. 이게 세 번째 행운이었다. 3월에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3월에는 열심히 브런치에 글도 발행하고 있을 것이다.




2023년 3월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지날 달을 되돌아보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는 3월이 다 끝나가지만 내 글에서는 이제부터 3월이 시작된다. 나는 글을 쓰며 과거와 현재를 여행하고 있다. 한 달 전 과거와 지금 현재를 마주하니 힘든 순간을 이겨내며 한발 한발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미래에는 지금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2월의 일기를 마치면서 지난달에 소망했던 것을 돌이켜보니 3월에는 그 소원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록을 통해 다시 한번 그날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2월 보다 3월이, 3월 보단 4월이 더 괜찮은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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