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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2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26 - 벗어나는 연습

2023년 2월 27일 월요일


 일어나 보니 여정이는 이미 아침 일찍 출근을 했고 나랑 민영이는 주인 없는 빈집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복도 밖에서는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굉장히 시끄러웠다. 5층에 화재가 났는지 확인해 보라는 무전소리도 들렸다. 비몽사몽 한 채로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해보려 했다. 화장실에서는 민영이가 씻는 소리가 나고 있고 밖은 소란스러웠지만 대피하라는 말이 없는 걸 봐서 별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민영이가 씻고 나오길래 방금 전 일을 얘기해 주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왜 이렇게 태평하냐고 물었다. 세상에 해탈이라도 한 거냐며 묻길래 뭐 큰일이었으면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씻으러 갔다.


 민영이는 12시 KTX를 타고 집으로 간다고 하길래 가까운 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열차 시간이 촉박해서 햄버거를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홍콩반점이 눈에 들어왔다. 홍콩반점을 가자는 민영이의 말에  버거킹을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가게에 들어갔더니 아쉽게도 11시부터 문을 연다고 했다. 어쩐지 계단을 내려가는데 불편하게  팻말을 왜 중간에 놓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잠깐 들었다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치우고 갔다. 우리 둘 다 눈을 얻다 뜨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바로 눈 뜬 봉사였다. 다시 보니 11:00 오픈이라고 적힌 조그마한 팻말이 정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황당해하며 다음 식당을 물색했다. 이번엔 지나가면서 국밥을 먹자고 하는 민영이의 제안에 걸어가 보니 문이 잠겼다. 이럴 줄 알 았으면 처음부터  그냥 햄버거를 먹으러 갈 걸 그랬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두 군데를 허탕치고 결국은 처음에 가자고 했던 버거킹으로 향했다. 둘이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어젯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햄버거를 다 먹어갈 때쯤 혹시나 하고 친구에게 물었다.


“나 괜찮아 보여? 나 보면 막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게 느껴져? “

“친구야, 전혀 그렇지 않아.”

“다행이네. 난 또 엄청 어둡고 무겁게 보일까 봐 조금 그랬었는데.”

“야 걱정하지 마. 절대 그렇게 안 보여. 괜한 걱정이야.”


 괜히 나의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저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민영이는 나랑 지하철 역에서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라며 신신당부를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다 엄마한테 걸려 온 전화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벌써 3시가 넘었다. 동생의 자취방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동생의 폰으로 연락을 해보라고 하였다. 동생 폰으로 전화를 해도 연락을 받지 않길래 엄마에게 이 말을 전하고 계속 누워 있었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또 슬슬 시간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감정이 밑바닥으로 가라앉으려고 할 때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친구들이 나에게 해준 말들을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서러워서 우는 건 아니었다. 평소처럼 두통을 유발하는 울음 또한 아니었다. 그냥 마음속 응어리가 눈물이 되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오늘만큼은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말처럼 스스로 자책하지도,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나를 괴롭게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나 잘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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