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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0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4 - 가족의 빈자리

2023년 2월 5일 일요일


 오늘은 유독 작년 10월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집을 떠난 자식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여 엄마가 동생 집으로 놀러 왔었다. 내 자취방은 세 명이 있기에 터무니없이 좁아 동생의 자취방에서 2박 3일을 지냈다. 동생은 수원이 제2의 고향 같다며 굉장히 흡족해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에게 수원을 관광시켜 주려고 화성어차를 태워주고, 수원화성 행카도 예매했다. 그 덕분에 걷지 않고도 알찬 코스로 놀았다. 행카는 자전거 택시로 성곽을 돌면서 수원화성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여름과 겨울에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2인용이라서 동생은 타지 않겠다며 코스를 돌고 올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매하기 어려운데 자신이 해냈다며 우쭐해하였다. 뜨뜻미지근한 칭찬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날 몇 번이나 엄마와 나에게 자신이 높은 경쟁을 뚫고 이 어려운 걸 성공했다며 자랑을 했다. 구경이 끝나고 내리자마자 어땠냐고 물어보길래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쳐다봐서 부담스러웠지만 재밌었다 말하니 굉장히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동생은 저 때 운동을 하다가 팔이 골절되어 팔꿈치 보조기를 차고 있었다. 차라리 다쳤을 때 그 이후로 운동을 그만뒀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기의 팔이 멋지지 않냐는 둥 실없는 소리를 해댔었는데 어떤 헛소리도 들어줄 테니 지금은 일어나기만 했으면 좋겠다. 동생과 함께 했던 행리단길을 걸으며 엄마와 함께 추억을 떠올렸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고 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점집이 넘쳐난다. 엄마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점집이라도 들어가서 아들이 살 수 있는지 묻고 싶은데 안 좋은 소리를 할까 봐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니 밤이 되면 달한테라도 소원을 빌어보기로 했다.


 점심으로는 순두부찌개를 먹고 팔달산으로 향했다. 하늘이랑 맞닿을수록 우리의 기도가 잘 들릴까 싶어서 서장대로 올라갔다. 화성행궁 앞에 있는 당산나무 앞에서도 기도를 하고 서장대에 올라가서도 기도를 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사물에는 죄다 염원을 담아 소원을 빌었다.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니니 말이다. 일단 사람부터 살려놔야 할 것 아닌가. 낮에 올라가 본 서장대는 저녁에 봤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이곳을 또 오르게 될 줄 몰랐다. 심지어 엄마와 단둘이서 말이다. 눈앞에 닥친 모든 상황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뜬금없이 수원에 있지를 않나. 분명 설날까지만 하더라도 셋이 함께 어울렸는데 갑자기 한 명은 온데간데없다. 답답하게도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 밖에 없었다. 걷기 싫어하는 모녀를 움직이게 하다니 내 동생은 대단한 놈이다.


 서장대에 올라가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무작정 기도했다. 제대로 된 기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박함만큼은 진심이었다. 제발 살아 돌아와서 이곳을 셋이서 다시 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내리막 길을 걷다가도 문득 동생 생각이 났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괜찮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냥 동생이 잠시 어디에 간 것 같은 기분이다. 곧 우리 앞에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만 같았다. 나는 동생이 잘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 다만 가족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힘을 조금 더 내줬으면 할 뿐이다.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함께 할 때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고 든든하다. 투닥거리고 아닌 척 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셋이 함께 할 때야 말로 가장 완벽했다.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그 순간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엄마와 나랑 단둘이만 노는 게 질투가 나서라도 일어난다. 언제나 그랬듯 자기 혼자만 빼고 다닌다고 서운해하며 같이 놀고 싶어서라도 깨어날 것이다. 동생은 절대로 세상에 엄마와 나만 남겨두고 떠날 애가 아니다. 나는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모두가 너를 그리워하고 응원하고 있어. 빨리 일어나서 엄마랑 나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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