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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0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 - 모든 게 이상한 하루

2023년 2월 6일 월요일


 오늘 하루도 바빴다. 동생이 몇 달 전에 다친 팔의 골절 진단서를 받기 위해 병원을 들렸다가 동생이 두고 온 신발과 도복을 챙기기 위해서 유도관도 방문해야 했다. 동생 폰으로 병원과 체육관 위치가 어딘지 찾아냈다. 병원은 자신의 대학교 근처에 있었고 유도관은 집에서 가까웠다. 일단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봤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에 유도관에 전화를 해보니 보통은 2시에 오픈을 하는데 1시쯤에 갈 것 같다며 도착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오늘 일정을 처리해야 하니 나갈 준비를 했다.


 외출을 하기 전 샤워를 하는데 아무리 물을 틀어봐도 따뜻한 물이 안 나왔다. 온수로 바꿔도 냉수만 나와서 화장실에 본의 아니게 갇혀버렸다. 다시 옷을 입고 나가기 귀찮아서 오들오들 떨면서 화장실에서 10분을 넘게 기다렸다. 보일러를 틀어봐도 따뜻한 물이 10초 정도 잠깐 나오다 말 뿐이었다. 샤워기를 잠갔다가 틀었을 때 잠시 나오는 따뜻한 물로 재빨리 헹궈내기를 반복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어 짜증이 올라왔지만 액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믿거나 말거나 액땜 3번이면 큰일은 면한다는 나의 징크스가 있었기에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계속 있다 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 동생이 쓰러졌던 장소가 체육관 화장실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곳 자기 집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 누군가 쓰러진 동생을 발견한 덕분에 수술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감사했다.  


 3일째 계속 입던 옷을 대충 걸치고 서둘러 나갔다. 점심시간이 겹치기 전에 병원부터 방문해야 한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다른 버스를 탔다. 환승을 한번 해야 돼서 번거롭긴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도를 보며 열심히 찾아갔다. 원래 이런 건 동생 담당이었는데 빈자리가 절실히 느껴지는 시점이다. 엄마와 나는 성향상 계획적으로 일정을 짜고 체계적으로 행동하는 걸 어려워한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엄마와 단둘이 있을 땐 계획을 짜고 일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내가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일정을 짜다 보니 그동안 했을 동생의 수고를 알게 되었다. 의지를 할 데가 있다는 게 든든한 거였구나. 그때가 좋았다.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동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 와중에 내가 살고 있는 집 보일러에 물이 새서 누수공사가 있을 거라는 집주인의 문자가 왔다. 그냥 내가 사는 층이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 걸 우리 집 옷장 바닥을 작업해야 한다고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당장 갈 수가 없었기에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보일러에 물이 새서 확인하니 배관 구멍이 뚫려있어서 선을 연결했다고 한다. 대신 행거에 있던 옷 순서가 조금 바뀌었을 거라고 했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 처음부터 싹 다시 정리해야 했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액땜이었다.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원에 도착해서 진단서를 끊고 바로 앞에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막국수집을 갔다. 월요일 점심시간이라 직장인이 많아서인지 웨이팅이 있었다. 어딜 가든 기다려야 할 게 뻔해서 천막이 쳐져있는 대기 장소에서 기다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리니 자리가 났다. 엄마는 옹심이를 먹고 싶다고 했지만 조리시간이 15분에서 20분이란 말에 또 기다리기 싫었는지 나랑 같은 메밀막국수를 시켰다. 대화를 하며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엄마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러더니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다가 말을 했다.

 

"우리 테이블 주문 누락된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아니야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테이블 음식도 다 나왔어."


확인해 보니 정말 우리 것만 주문이 안 들어갔단다. 주인이 나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빨리 음식을 주겠다고 한다.

 

"어떻게 알았대?"

"나는 음식점만 가면 이런 일이 계속 생겨서 우리 테이블보다 늦게 온 테이블에 음식이 먼저 나오는 걸 보면 예민하게 반응하게 돼."


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면 예민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미안하다고 서비스 주려나? 아, 안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액땜이 안 되거든. 이것까지 치면 세 번이야."


다행히 서비스는 따로 없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예상했던 대로 우리가 주문한 음식만 나왔다. 이로써 세 번째 액땜을 치렀다.


 폰을 확인하니 집으로 가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에 숨 가쁘게 달렸다. 정류장까지 정신없이 뛰어가서 보니 도착예정시간에 속았다. 4분 후에 온다더니 4분이 언제부터 8분이었을까. 괜히 힘들게 뛰었다는 생각에 허탈감을 느꼈다. 아니다. 그래도 놓칠까 봐 불안해하는 것보단 여유롭게 기다리는 게 더 낫다고 마음을 바꿨다. 마침 우리가 탄 버스가 체육관까지 가는 노선이다. 이왕이면 버스에 타고 있을 때 체육관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버스에 있을 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릴 곳에 다다를 때쯤 시계는 12시 40분을 가리켰다. 집에 들렀다가 나오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그냥 체육관 근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15분 정도 지났을 때쯤인가 체육관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남아 있는 커피를 후딱 마시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에 있는 코인 노래방을 지나쳐 계단을 오르다 보니 체육관 화장실이 있었다. 이곳이 동생이 발견된 곳이라는 생각을 하니 순간적으로 마음이 안 좋아졌다. 문을 열어보니 어두컴컴하고 좁은 화장실이었다. 착잡한 감정을 뒤로하고 체육관으로 올라갔다. 문을 여니 관장님이 엄마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문 앞에 서있나 생각했는데 CCTV를 보고 있다가 화장실로 들어가길래 동생의 가족이라는 걸 예상했다고 말했다. 관장님도 마음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간단하게 동생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그 당시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동생이 쓰러진 당일 날 혼자 여행을 갔다가 체육관으로 왔던 걸로 보인다. 힘든데 집에 쉬지 왜 왔냐는 관장님의 말에 젊으니깐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며 호기로운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운동이 한창 끝날 무렵 동생이 보이지 않아서 집으로 갔거나 탈의실에 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시각이 9시 40분쯤이라고 했다. 10시에 마감을 하려 보니 동생 신발과 겉옷만 있고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는 관장님의 말에 관원 한 명이 화장실에 있나 싶어서 내려갔다가 쓰러져 있는 동생을 발견했다고 한다. 발견 당시 소변기 앞에 있는 벽 쪽에 기댄 채로 의식 없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어서 바로 119에 신고를 했고 운동을 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다고 전했다. 오늘 저녁에 업체가 체육관을 방문하여 CCTV에 저장된 영상을 확인한다고 하였으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다. 그 말에 감사인사를 전하고 카운터 구석에 보관되어 있던 동생의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우선 내려가면서 화장실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가 말했다. 자기는 그래도 아들이 화장실에서 발견됐을 때 조금 더 깨끗하고 밝은 곳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더 좁고 더러운 곳이라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30분 동안이나 혼자 있었다니.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라서 너무 충격이다. 내 아들 불쌍해서 어쩌냐."


나 또한 마음이 안 좋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뭐 어때. 그래도 발견된 게 어디야. 너무 많은 걸 바라네."


 나한테는 동생문제뿐만 아니라 연애 문제도 존재했다. 이 와중에 내 연애를 걱정해야 한다는 현실에 피로감을 느꼈다. 동생의 수술실을 들어가고 나서 텅 빈 병원에 홀러 서 있었다. 그 두려움에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고 끊어버렸다. 원래 전화를 싫어한다고는 했었는데 이 상황을 알면서도 전화를 받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다. 그 후로도 전화는 한통이 없고 카톡으로만 간간히 연락 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식어갔다. 그렇기에 내 인생에서 무섭고 힘들 때 의지가 되어주지 못한 남자친구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사실 취업 고민만으로도 벅찬 상황에 연애까지 나를 힘들게 하여 동생이 쓰러진 날에 만나서 헤어지려고 했다. 그날 저녁에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고 있었는데 하필 동생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서 끝낼 기회를 놓쳤다. 동생이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연애 걱정이라니 나도 제정신이 아니다.


집으로 도착했을 때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한테 우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 옥상으로 올라갔다. 찬바람을 맞으며 전화를 하는데도 답답한 마음 때문인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물론 자발적으로 전화를 한 건 아니었다. 오늘 전화가 가능하냐는 나의 질문에 연락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동생의 여자친구와도 전화를 하느라 옥상에 2시간 넘게 서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싶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왔고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시련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과 전화하면서 위로를 받고 울다 보니 내 감정을 마주하게 됐다. 복잡한 생각이 차츰 정리되었다. 남자친구와는 타이밍이 어긋나서 발생한 해프닝이었던 걸로 결론을 내렸다.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었기에 이별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받았던 마음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앞으로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이의 고질적인 연락문제는 관계를 지속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노력하면 맞춰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난관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다. 서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니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나는 그런 상황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래도 일단은 이별을 보류하고 잘 맞춰서 노력해 보기로 했다.


 세상에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다. 왜 나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는지 말이다. 차라리 내가 아프면 내가 의지를 가지고 이겨내면 되는 문제인데 가족이 아픈 것을 옆에서 손 놓고 지켜보는 것만큼 무기력하고 절망스러운 게 없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동생이 잘 이겨내고 버티리라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이번 생은 고통에 인내하며 무력감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게 내 소명인 건가 생각하게 된다. 진짜 신이 존재한다면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멱살 잡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나한테 왜 이렇게 어려운 숙제만 내주냐고 이건 무언가 잘못됐다고 말이다. 아빠의 죽음에 대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번 일까지 우리 가족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도대체 어느 벼랑 끝까지 몰고 가야 직성이 풀리겠냐고 따졌다. 우리 집안 남자들의 씨를 말릴 작정이 아니라면 당장 동생을 깨어나게 하라고 협박도 해보고 회유도 하면서 기도했다. 제발 동생까지 데려가지 말라고 빌었다.


 전화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와 보니 내가 옥상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 엄마는 다른 사람들과 전화를 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동생의 중학교 친구들에게도 소식을 전하게 되었는데 동생 친구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자기 아들이 4차원이라서 친구가 많이 없는데 경오가 옆에 있어줘서 너무 든든했다며 키도 크고 잘생겨서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선 혹시 자기 뭐 하는 사람인지 아냐고 묻더니 모른다는 말에 조심스럽게 자신이 무당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엄마가 놀라니 경오랑 친구들은 알고 있었을 텐데 내색을 안 해서 몰랐던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렴풋이 보이는 걸 이야기해 주셨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쓰러지기 전부터 이미 두통을 있었고 어딘가에 살짝 부딪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경오는 운동을 안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수원 화성에는 유난히 점집이 많다.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점집이라도 찾아가서 묻고 싶지만 안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될까 봐 무서워서 가지는 못했다. 엄마가 점집이라도 가야 하나 생각했다 하니 지금 상황에 점집은 안 가는 게 좋을 거라고 이야기도 해주었다. 가면 또 부적을 쓰거나 굿을 하라고 할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신당에 촛불을 올려놓고 무사히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라도 드리겠다고 했다. 그 말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지금은 정말 길에 있는 돌멩이한테라도 소원을 빌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이다. 미신 이야기이다. 엄마와 같이 근무했던 동료 중 한 명이 점집을 차렸다고 한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세상에 오만 신들에게 다 기도를 드리자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무당이 되기 전에 신기가 살짝 있었고 자신의 딸에게 대물림될까 봐 자신이 신을 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다니던 점집에 어마무시한 돈을 쓰게 되며 횡령을 하고 소송에 휘말리며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한테서도 3000만 원을 빌리고 아직도 갚지 않았다고 하는 말에 믿어도 되는지 의심이 되었다. 한번 사기 쳐본 사람이 두 번은 못 칠까 엄마는 그 동료에게 협박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자신한테 갚을 게 있을 테니 지금 당장 내 아들부터 살려내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런 문자를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사주나 점집 이런 영성과 관련된 것을 재밌어한다. 그래서 작년에 신점과 사주를 보러 두 군데를 갔는데 공통적을 하는 말이 엄마는 상문살을 맞을 수도 있으니 초상집을 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가게 되면 건강이 악화되고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 엄마한테 전했더니 이미 장례식장을 갔었다고 하길래 더 이상은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냐라는 말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는 믿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문자를 받은 옛 동료가 동생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가져가더니 자기의 스승과 의논해 본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엄마에게 혹시 장례식장에 갔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 말에 그 동료는 혹시 장례식장을 금요일에 갔었는지 물었다. 소름 돋게도 엄마는 1월 20일 금요일에 동생과 함께 장례식장을 갔었고 동생은 주차장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고 엄마는 절은 하지 않고 복도에만 있다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고 나선 불안하게 동생이 수술한 날이 금요일이냐고 물어보았다. 동생이 목요일에 쓰러진 것은 맞지만 금요일 새벽에 수술을 들어갔다. 그 말을 듣더니 장례식장에 왜 갔냐며 상문살이 들었다고 엄마를 질책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그러면서 이번 달을 잘 넘겨야 한다며 2월이 가장 고비라고 하였다. 생일이 있는 달이 특히나 더 위험하다며  그때만 무사히 지나면 될 것 같다며 동생 집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동생이 쓰러진 것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질문들을 이어나갔다. 그 이후에 동생이 설날 이후로 중고 물건 하나를 들이지 않았냐며 물었고  엄마가 없다고 하니 혹시 집에 중고 물건이 있지 않냐 물었다. 엄마는 그 말에 옷장이라고 대답했고 그 말을 듣더니 일단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전화를 받고나서부터 엄마는 스스로를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두려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나 때문인가 봐. 내가 내 아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봐."

"아, 무슨 소린데 말도 안 된다. 내가 점 같은 거 좋아하는 거 알지? 근데 여긴 아닌 것 같아. 끼워 맞추기야."


엄마를 일단 진정시켰다. 점집에 거부감이 없던 나로서도 이번 일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쓸데없는 말을 꺼낸 무당에게 화가 났지만 마음을 가라앉힌 후 엄마에게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우선 동생의 폰을 뒤져 중고거래한 내역을 살펴봤다. 한참을 보다가 엄마에게 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 이거 봐. 얘는 협탁, 렌지대 전부 당근마켓으로 샀어.”


그렇다. 내 동생 집안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당근마켓을 이용한 것으로 이 집 자체가 중고나라였다. 내 생각엔 중고 물건 이야기는 너무 끼워 맞추는 느낌이 강했다.


"그 무당한테 다시 전해. 이 집은 옷장뿐 아니라 다른 물건들 싹 다 중고라고 그냥 중고나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그리고 난 믿음이 안 가. 이러다가 나중에는 엄마한테 굿해야 한다고 할걸? 원래 사기꾼들은 가까운 사람들한테 사기를 더 잘 치는 법이다. 약점을 잘 아니깐."


 일단 엄마를 안심시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가뜩이나 자신이 전생에 죄를 얼마나 지었으면 자식한테 이러는지 자책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 무당의 말은 아주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우선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정리해야 했다. 왜 그 말이 흘러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나가며 엄마에게 설명했다. 이대로 놔두면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혹여나 자기 탓이라 여기며 나쁜 생각을 할까 봐 불안했다.


“내가 돈이 많았으면 아들이 중고로 옷장을 안 사도 됐을 텐데. 나도 옷장은 중고로 사지 말라고 했었는데 기어코 저 무거운 걸 가져오더니 괜히 내가 돈이 없어서 이렇게 됐나 싶다. 그렇게 치면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람들 장례식장도 가지 말란 말인데. 그럼 나는 사회생활이 안 되잖아.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란 거냐.”

"뭘 신경 써. 아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은 무시하고 당연히 일어난다고 믿어야지. 엄마가 흔들리면 안 돼. 이건 엄마의 잘못이 절대 아니야. 그렇게 치면 장례식장 다녀온 세상 사람들은 전부 이렇게 됐겠지. 그건 진짜 아니다. 난 다른 건 다 믿어도 이건 못 믿겠어."

"우리 딸 엄마 안심시키려고 노력하네."

"안심이 아니라 정말 아니니깐 말하는 거야. 이경오 2주 안에 눈 뜰 거야. 내 말을 믿어봐. 나 감 좋아."


 이상한 소리는 믿지도 듣지도 말라고 엄마를 최대한 진정시켰고 나는 동생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한다고 내 직감을 믿으라고 했다. 한 순간에 집안이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괜히 안 들어도 될 이야기를 들어서 심란해졌다. 세상 다 잃은 것 같이 절망스러운 엄마의 표정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엄마마저 잃을 것 같다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 지금 이 일은 확실하게 말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저녁을 먹는데도 이미 입맛이 떨어져서 깨작거리던 와중에 그 말까지 듣고 더 먹다가는 체할 것 같아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늘 하루 끝은 너무나도 이상하게 흘러갔다. 동생이 일어나서 이 소리를 들었다면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볼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미 동생 대신 우리가 액땜을 3번 치렀으니깐 동생은 무사할 것이다. 불행은 내가 감당할 거니깐 동생한테는 행운이 갈 거다. 분명히 그럴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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