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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1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42 -존재의 가치


2023년 3월 15일 수요일


 이번주에는 약속이 많다. 아무래도 주말부터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다 보니 이번주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은수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2월 2일이다. 그날은 동생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날이기도 했다. 평일 낮까지만 해도 백수 두 명이 만나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저녁이 되자마자 낮에 만끽했던 여유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날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날 하루가 꿈같이 느껴졌다. 그 사건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거였지만 자주 전화를 해서 그런지 계속 함께 한 기분이었다. 은수는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다며 그 일이 꿈만 같다고 말하며 마치 이 모든 게 거짓말처럼 느껴진다고 하였다.


 수술 당일 날 그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울었던 친구였다. 내 동생이 걱정된 것도 있겠지만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20살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였기에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대학교를 함께 다니며 연애부터 가정사, 취업까지 서로에 대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옆에서 지금까지 지켜봐 왔다. 내가 시험을 망쳐서 우울해할 때면 기분전환을 해야 한다며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내가 울 일이 생길 때면 항상 옆에서 같이 울어주었다. 보통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교로 가기 전에 이런 말을 무수히 들었던 터라 솔직히 대학에 가서는 평생 함께할 친구를 만들겠다는 기대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 만난 친구들만으로도 만족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은수는 내가 전해 들었던 속설을 무색하게 만든 친구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이상하게도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다를 게 없이 편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성향이나 가치관이 비슷해서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은수랑은 대학교 오티 때 처음 만났는데 첫인상은 단발머리에 교정기를 하고 있는 조용한 아이였다. 대강당에 모여 각 과별로 일렬로 앉아 동기들은 한창 서로를 알아가는 중인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길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중에 친해져서 들은 말이지만 은수는 내 첫인상을 보고 활달하고 성격 좋은 양아치인 줄 알았단다.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이미 다른 사람들과 서슴없이 친해 보이고 심지어 탈색 머리였던 터라 반에서 좀 놀았던 아이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물론 나와 지내보니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어쩐지 처음 말을 걸었는데 경계하면서 낯을 가리더라니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어서 어이가 없었다. 내가 황당해하니 그런 오해를 했다는 것 자체에 본인이 제일 황당함을 느꼈다고 했다. 자기와 비슷한 부류인 걸 알고부터는 내가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함께 지내면 지낼수록 지역은 다르지만 이미 알고 지낸 고등학교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벌써 알고 지낸 지가 7년이라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만큼 같이 있으면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20대 중에 내가 제일 다사다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물론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더 많겠지만 어디까지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라는 가정하에 그렇다고 인정했다. 얼마나 큰 복을 주려고 이러냐며 서로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실없는 농담을 해대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조만간 서울에서 다시 고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나보다 더 속상해하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예전부터 서울을 얼마나 오고 싶어 했으며,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를 전부 알고 있다 보니 내가 느낀 감정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아는 듯했다. 서로의 곁에 있다 보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느껴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굳이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준다. 내가 슬퍼할 때도 기뻐할 때도 진심으로 함께 해준다. 나와 함께 하는 존재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는 것 같다.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타인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기분전환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친구도 있으니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카페에 앉아 친구와 나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바뀔 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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