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의 일기 45 -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2023년 3월 18일 토요일
동생 간병 첫날
무거운 가방과 짐을 한가득 지고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병원에 들어섰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병원으로 가는 것부터 일이었다. 이미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힘들었다. 오늘부터 간병인과 교대를 하기 위해 원무과에 가서 상주 보호자로 등록을 했다. 모바일 출입증도 생기고 팔찌도 받았다. 이제 병실 프리패스 티켓이 생겼다며 엄마에게 자랑을 했다. 아둔하기 짝이 없는 나란 인간은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모른 채 마냥 해맑기만 했다.
올라와보니 동생이 눈을 뜨고 누워 있었다. 내가 왔는데도 아는 척도 안 하고 말을 걸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자주 보니깐 마음이 식었다 이거지. 간병인은 오늘 바로 옆 병동으로 이동하여 다른 환자를 돌본다고 했다. 나에게는 비위관을 통한 경관급식에 대한 방법을 알려줬다. 병원에서는 친절하게 병원 생활에 관한 동영상까지 보내줬다.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데 역시 모든지 눈으로 보는 건 쉽다. 막상 하려니 내가 제대로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간병인에게 대략적으로 정보를 들었을 때 동생은 하루에 대변을 1-2번 정도 누고, 몸은 닦는 건 이틀에 한번 정도, 머리는 매일 감을 수가 없어서 컨디션을 보고 감긴다고 한다. 말로만 들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병인이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내 옆에서 잘하고 있는지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는데 이제 나 혼자 남겨졌다. 처음이니깐 간호사들이 와서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나는 설명해 주는 영상을 찍기 바빴다. 나중에 복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만만했다.
잠시 후 엄마가 병실에 왔는데도 동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내 전화를 받고선 누나 고생 적당히 시키고 일어나라고 말하니 동생이 웃음을 보였다. 오늘 우리가 본 첫 웃음이었다. 내가 동생의 수염을 보고 무슨 머리카락 마냥 길게 자랐다는 말에도 웃었다. 아무래도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 것 같다. 자꾸 자기가 웃기다고 생각하는 말에만 반응을 보여서 동생 앞에서는 광대가 되어야만 했다. 한참 동안 옆을 지키다 보니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 콧줄을 통해 영양식이 잘 들어가는지를 확인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처음에는 간호사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두 번째는 내가 해보기로 했다. 일단 엄마와 나도 밥을 먹어야 하기에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웃기게도 무겁게 짐을 싸와놓고 그 안에는 정작 내가 먹을 식량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근처에 이마트가 있어서 배송을 시키려니 수요일에 온다고 했다. 차라리 쿠팡 로켓배송으로 시키는 게 더 빠르게 도착할 것 같아서 먹거리를 주문하는 건 잠시 보류해 두고 눈앞에 나온 밥부터 먹었다.
병원은 여전히 코로나의 여파로 면회가 어려웠다. 일반 병동도 상주 보호자 1인 외에는 면회가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층마다 분위기가 다른 듯했다. 10층에서는 2명이 들어왔어도 융통성 있게 넘어가주기도 했지만 8층에서는 얄짤없다. 엄마는 결국 눈치가 보여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잘 찾아가라고 신신당부하며 엄마를 보냈다. 이제 진짜 나 혼자 남았다. 처음이라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유튜브로 찾아봤을 때는 욕창방지를 위해서 체위변경도 매 시간 해주고 피부 보습도 해주라고 했지만 내가 함부로 손을 댔다가 큰일이 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들었다. 일단 짐부터 풀자는 생각에 바삐 움직였다.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많은 짐들을 꺼내서 정리를 하려니 막막함이 몰려왔다. 동생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길래 닦아주고 선풍기도 위치를 바꿔가면서 바람을 쐬어 주었다. 그러고 나선 동생의 여자친구한테 처음으로 영상통화를 걸었다. 자기 여자친구라고 알아보는 건지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빨리 안 일어나면 여자친구를 다른 남자한테로 보낸다고 협박했더니 웃는다. 그 상황에 웃기만 하면 어떡하냐 벌떡 일어나야지. 둘의 알콩달콩한 연애를 지켜주기 위해 동생의 얼굴을 비춰주기 위해 폰을 계속 들고 있다가 내 팔 감각은 점차 잃어갔다. 그들이 달달한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아픈 팔만 매만져가며 씁쓸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정말 시작은 이제부터다.
동생의 병원복이 심상치 않다. 축축하고 노랗고 분명히 소변줄을 달고 있을 텐데 설사인지 소변인지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침대시트까지 번져 있었다. 나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과제는 기저귀와 시트를 갈고 새로운 병원복으로 환복 시키는 것이었다. 기저귀 가는 건 본 적도 설명을 들은 적도 없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일단 바지부터 벗겼다. 바지 하나를 벗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에는 힘이 없고 무릎은 뻣뻣하게 펼쳐져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발뒤꿈치 욕창을 방치하기 위해 발에는 쿠션을 감싸 놓아서 그것부터 풀어야 했다. 난관 속 또 다른 난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바지를 벗기고서는 그다음은 기저귀와 침대시트를 갈아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려니 많은 힘이 필요했다. 요령을 터득하면 할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무작정 힘으로 하니깐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기저귀와 사투를 하고 옷을 다 갈아입히는 것까지 한 시간이 소요됐다. 시작부터 손목과 허리 모든 관절이 나간 것 같다. 패기만만하게 시작한 병간호는 그렇게 첫 판부터 무너졌다.
동생도 같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숙련된 간병인에게 케어를 받다가 미숙한 보호자한테 케어를 받으려니 말은 못 하고 굉장히 불편할 것이다.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동생도 내가 기저귀랑 한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는지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아직까지 짜증을 안내서 다행이다. 혼자 악으로 깡으로 미션 하나를 마쳤다. 그런데 이게 끝이었을까. 아니다. 경관급식이 한 시간 안에 끝나야 하는데 무엇이 잘못 됐는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다 들어가지 않았다. 밥을 다 먹어야 약을 먹고 침대의 각도도 바꾸고 할 수 있는데 굉장히 꼬였다. 그 와중에 석션과 네블라이저를 하는 법을 배우느라 바빴다. 소변 주머니도 비워주고 용량을 작성해주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첫날이라서 그런지 쉬운 일이 없었다. 아무래도 환자를 다루다 보니 내가 하는 것들이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라 실수할까 봐 너무 무서웠다.
콧줄에 물을 넣는 것도 그렇고 체위변경을 위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동생이 불편하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가 없으니 더 막막했다. 기저귀를 한 번 갈아보니 다시 갈 수 없을 것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시로 확인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엉덩이를 드는 것과 몸을 옆으로 눕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더 무거웠고 심지어 쓸데없이 키까지 커버리는 바람에 동생을 나 혼자 움직이게 하는 건 벅찬 일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힘들 줄 몰랐다. 이게 생각과 다르게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따라준다. 동생을 봐주던 간병인은 우리가 걱정이 되었는지 감사하게도 수시로 확인을 하러 왔다. 너무 피곤했지만 쉴 수는 없었다. 계속 동생 옆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며 움직였다. 2시간마다 체위 변경도 해주는 게 정석이라고 했는데 경관급을 할 때에는 30-40도 정도 침대 각도를 세워놓고 있어야 해서 자세를 바꿔주지도 못한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지탱할 힘이 없으니 몸이 밑으로 내려와 발이 침대 끝에 닿여서 무릎이 굽혀진다. 불편해 보여서 다리를 펴주고 싶어도 경사각이 세워져 있어 동생을 위로 올릴 수가 없다. 그냥 망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한테 간병을 받을 바에 지금라도 전문 간병인이 케어를 해주는 게 동생한테도 나한테도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엄마가 간병 상황이 궁금한지 집으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내가 기저귀와 기나긴 사투를 벌인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처음인데도 그럴싸하게 했다며 동생이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고 말하니깐 그 말을 듣고 있던 동생이 어이없어하며 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그래 본인도 내 노고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이 자식 이거 누워서 우리 이야기 다 듣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반응을 보이니 다행이긴 하다. 그냥 여기서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자극을 주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영양식이 들어가고 있어 하루 할당량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석션도 한 번 밖에 못했다. 이러다가 나로 인해서 동생이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간병을 하기 전에는 힘찬 포부를 가지고 들어왔었는데 자신감을 상실했다. 잘하는 게 없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더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달 넘게 면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었는데 지금 보니 그건 일도 아니었다. 오늘 하루 간병을 해봤지만 그 힘듦은 세발의 피였다. 몇 시간 만에 바로 깨달았다. 피곤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 놓고 잠을 자지도 못하다가 동생이 잠이 드는 것을 확인하고 옆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그 사이에 할머니와 엄마한테 어찌나 전화가 오던지 받을 정신이 없었다. 일단 피로가 쌓여 20분 정도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서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벌써 10시가 다 되어간다.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지치고 시간이 없어서 저녁도 못 먹었다.
9시가 되니 모든 병실이 소등을 하기 시작했다. 불이 켜진 곳은 동생의 침대밖에 없었다. 동생도 자다 깨서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었다. 평소에 이 시간에 잘 리가 없었으니 병원에서도 잠이 안 와서 고생 꽤나 했을 것이다. 일단 동생에게 샤워를 하러 간다고 말하고 샤워장을 들어갔다. 이용안내를 살펴보니 환자의 안정을 위해 저녁 10시 이후에는 샤워실 이용을 자제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오늘은 부딪히면서 배우는 날 인가보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실수투성이다. 오후 11시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함이 병원 건물을 뒤덮었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휴게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너무나도 가사가 와닿는다.
‘고갤 들고 버틸게 끝까지.’
하이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원래 모든 지 첫날이 가장 힘든 법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수월해진다. 간병에 요령이 생기고 익숙해지면 그나마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동생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호전이 될 것이기에 매일이 오늘 하루같이 힘들지만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모든 게 낯설었고 아찔함의 연속이었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해낼 것이다. 부디 하루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