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46 -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일

by 덤벙돈벙

2023년 3월 19일 일요일


병원에서의 두 번째 날


병원 간이침대에 몸을 꾸기고 잠을 잤다. 어제 하루가 너무 고돼서 그런지 불편하고 좁은 침대였지만 기절한 것처럼 잠이 들었었다. 그랬지만 새벽마다 간호사가 들락날락거려서 중간에 잠을 깨긴 했던 것 같다. 병원은 새벽 6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그 하루는 가래를 묽게 해주는 네블라이저와 가래를 빼는 석션의 기계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동생도 나도 평상시에는 6시에 기상을 하지 않았던 인간들이라서 그런지 이 시간대에 일어난다는 게 적응이 안 되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내가 누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더 이상 잠이 오지도 않아서 병실 사람들과 함께 일과를 시작했다. 7시에 영양식이 나온다고 하니 그전에 동생한테도 네블라이저와 석션을 해줘야 한다. 네블라이저는 하루 만에 곧잘 따라 했지만 석션은 아직까지 힘들었다. 혹시나 잘못해서 기관지를 상하게 할까 봐 겁이 나서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무 석션기를 코와 입에 넣는데 동생이 헛구역질을 하며 괴로워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못하겠다. 나도 같이 괴로워지는 것 같다. 고통스러워하는 걸 지켜봐야 하고 앞으로 내가 그걸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순간 아찔해졌다. 간호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며 나는 그런 직업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이틀 만에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동생이 움직이지 못하니 욕창을 방지하려면 2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해주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경관급식을 하는 경우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동생은 20대이기도 하고 키도 커서 하루에 1800칼로리를 공급해줘야 했다. 그러려면 영양식을 매 끼니마다 두팩씩 챙겨줘야 한다. 보통은 한 시간이면 영양식이 다 들어간다는데 동생은 다 들어가는 데까지 2, 3시간이 걸렸다. 들어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느려도 안된다고 하여 간호사가 알려준 적당한 속도에 맞춰서 줬는데도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다고 속도를 높이자니 소화가 되지 않으면 토를 할 수도 있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문제는 경관급식 때는 체위변경도 불가능하고 기저귀도 못 갈아준다. 급하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경관급식을 잠시 중단해야 한다. 심지어 시간은 또 어찌나 순식간에 지나가던지 밥을 먹고 소화시킬 시간을 가지고 나면 또 밥시간이 돌아온다. 미쳐버리겠다. 이렇게 하다가는 제대로 케어를 못 할 것 같다.


대충 하루 일과가 이렇다. 뇌출혈 환자들 특히, 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일어나자마자 네블라이저로 가래를 묽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네블라이저는 5시간마다 하루 4회를 진행한다. 그다음은 석션이다. 아무래도 의식이 없다 보니 가래를 스스로 뱉어낼 수가 없어서 석션은 수시로 해줘야 했다. 그러고 나서는 경관급식 시간이 되면 영양식을 넣기 전 소화가 잘 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주사기를 콧줄에 연결하여 피스톤을 당긴다. 소화가 안 됐다면 내용물이 나오고 소화가 다 되었다면 딸려 나오는 내용물이 없을 것이다. 소화된 걸 확인하지 않고 영양식을 주면 토를 하거나 설사를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했다. 영양식을 넣기 전에 물 150ml를 주고 다 넣고 난 이후에도 150~200ml 정도 물을 줘야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동생이 아픈 환자이다 보니 먹을 약이 정말 많았다. 먹이는 방법은 가루약을 물에 타서 콧줄로 넣어주면 된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얼추 간병인의 느낌이 난다. 그리고 침대각을 세운채로 잠시 앉혀놔야 한다. 그다음에는 토닥이라고 하는 심장재활치료를 20분간 해준다. 심장에 조끼를 착용하고 시작을 누르면 공기주머니가 부풀어 올랐다 빠졌다를 반복하면서 진동을 일으킨다. 마치 그 모습이 누군가 손으로 토닥토닥해 주는 것처럼 보여 토닥이인가 보다. 평일에는 재활치료실을 가서 재활훈련을 받지만 주말에는 따로 재활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망의 기저귀 교체와 체위변경 이 두 가지가 가장 체력을 많이 요구한다. 오늘 아침을 먹던 중 동생한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됐다. 느낌이 싸했다. 확인을 해보니 사타구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갈색물체가 보였다. 당장 갈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경관급식 중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그런 경우는 식사가 끝나고 교체를 해주면 된다고 했다. 30분에서 1 시간 까지는 내버려 둬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너무 심한 경우면 식사를 중단하고 갈면 된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갈고 싶어서 신경이 쓰였지만 괜찮다고 하니 그 말만 믿었다. 하필 이때 사촌언니가 내가 먹을 반찬을 가지고 왔다고 하여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언니한테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언니는 카페에 있을 테니 천천히 나오라고 하였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경관급식의 시간은 생각보다 더 길어졌고 간호사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은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동생의 용변이 새기 시작했다.


시트를 물들이는 갈색 색깔의 무언가를 보니 내 마음은 까맣게 물들어갔다. 아무래도 급식을 잠시 중단하고 해결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간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동생의 바지부터 침대시트까지 다 갈았다. 설사가 묻은 바지를 벗기려니 침대 여기저기에 다 묻어버렸다. 다리에 차고 있는 압박용 의료기기부터 빼야 했다. 그리고 발에 있는 발꿈치 욕창 방지 쿠션도 제거를 했다. 겨우 바지를 벗기고 나니 이제는 설사가 덕지덕지 발려져 있는 기저귀와 방수 시트를 빼내야 한다. 일단 대충 제거를 하고 기저귀를 제거했다. 그러고 나서는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물티슈로 열심히 닦아주었다. 끝이 아니다 침대 시트가 남았다. 앞으로 대변을 볼 때마다 이 일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설사가 묻은 것을 다 치웠으면 이제 새로운 시트와 옷으로 교체해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동생을 오른쪽, 왼쪽으로 굴려가며 침대시트와 방수포, 깔개매트, 기저귀까지 겨우 갈아 끼웠다. 마지막 새 바지 착장까지 완료하니 수습이 되는 기분이었다. 동생은 보송보송해졌지만 나는 기저귀에 또 탈탈 털려버렸다. 둘이서도 감당이 안되는데 나 혼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몇 번을 해야 익숙해질까. 다음에 이런 사태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저귀를 단단하게 봉인해 놓았다. 그런데 또 너무 감싸놓으면 습해져서 욕창이 생길 수도 있다는데 진짜 뭐가 좋은 방법인지를 모르겠다. 언제쯤 요령을 터득하게 될지 까마득하다.


아침부터 거사를 치르고 두 번째 영양식을 넣을 때쯤 언니를 만나러 내려갈 수 있었다. 언니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침은 먹었냐고 묻기에 단백질 셰이크를 먹었다고 하니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사주었다. 메뉴를 고르고는 잠깐 카페에서 숨을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간병을 하러 가야 해서 긴 시간 동안 함께 하지는 못하고 짧은 만남을 가졌다. 언니는 자기 요리 실력이 형편없어서 반찬을 만들 수는 없고 반찬가게에서 사 왔다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중에도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헤어졌다. 먼 걸음까지 달려왔는데 면회 한 번 못하고 돌려보내야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병실로 가니 아쉬울 틈도 없이 또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소변 주머니도 비우면 용량을 작성해야 한다. 아무래도 영양식이 액체이기도 하고 수액을 맞고 있어서 소변도 수시로 비워줘야 했다. 틈나는 대로 체위변경도 해줬다. 몸도 한번 닦여야 할 것 같은데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보이는 부분만 닦아주었다. 아무래도 자세를 바꾸는 게 힘들다 보니 등이나 엉덩이 쪽은 확인도 못했다. 두피를 보니 기름진 비듬이 두텁게 쌓여있다. 머리도 감기고 싶고 샤워도 시키고 싶었지만 할 줄 아는 것도, 아는 것도 없어서 답답했다. 할 건 많은데 경관급식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속이 타들어갔다. 그나마 내가 제일 잘하는 거라고는 옆에서 재잘재잘 이야기 해주는 것 밖에 없다.


동생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는 광대가 되어야 했다. 티비를 틀어놓고는 있지만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노래를 틀어주었다. 듣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똘망하게 뜬 채로 창 밖을 바라보며 음악을 감상 중이다. 그리고 추억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주도의 푸른 밤’이 흘러나왔다. 작년 7월에 가족여행으로 제주도 가서 이 노래를 들었는데 기억나냐면서 그때를 회상했다. 동생도 기억이 나는지 내 말에 히죽히죽 웃었다. 그렇게 동생이 기억할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사진도 보여주었다. 우스꽝스럽게 나온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오랜만에 듣는 할머니의 잔소리에도 웃었다. 엄마와 나의 대화를 듣고 웃기도 했다. 근데 이 자식 자기 칭찬하는 거에 특히 더 반응을 크게 보인다. 조만간 의식이 확실하게 돌아올 것 같다. 동생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는 나의 수다를 듣다 지쳤는지 눈이 풀렸다. 그래도 오늘 눈빛이 또렷해 보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름 반응도 잘하는 것 같다. 자기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아 답답해 보이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어나는 건 스스로 해야 할 몫이다. 나는 옆에서 동생이 악착같이 일어날 수 있게 자극을 주는 것 밖에 없다. 숙련된 간병인이랑 비교했을 때 나의 강점은 동생의 감정선을 잘 건드린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가족이다 보니 함께 쌓아온 추억이 많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동생의 귓가에 대고 이야기하느라 몇 시간을 서있었더니 다리가 부었다. 벌써부터 몸이 아프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가족들은 오늘도 돌아가면서 전화를 했다. 삼촌과 엄마는 너무 힘들면 억지로 하지 말고 꼭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2주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기저귀만 아니면 나름 병원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병원체질 일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옆에서 귀찮게 해서 동생이 곧 의식을 회복하지 않을까 싶다. 동생 성격이면 일어나고도 남는다. 돌이 되기 전부터 걸어 다니고 기저귀가 갑갑하다고 길거리에 냅다 벗어서 던져버리는 녀석이었다. 그때도 그랬는데 지금이라고 못할까. 동생에게 이 말을 들려주니 아주 크게 웃어 보였다.


“야 네가 돌이 되기 전부터 걸어 다니고 기저귀 차면 갑갑하다고 길거리에 벗어던진 놈이야. 그때 조그마한 아기가 그럴 수가 없는데 너 알고 보니 인생 2 회차인 거 아니야?”

“그리고 네가 중학교 때는 뒤에서 1, 2등을 다투던 놈이었잖아. 그런데 고등학생 되더니 반에서 1, 2등 했었나. 그런 놈을 뭐라고 하는지 아냐? 독종이라고 한단다. 네 타고난 기질이 어디 가겠냐. 그러니깐 지금도 악착같이 이겨내야지. 저때도 해냈는데 23살이면 충분하지. 한 일주일? 아, 너무 짧나 그럼 2주 정도 줄게. 내가 최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야그 안에는 의식도 차리고 재활도 열심히 해서 움직여야지.”


뭔가 내 이야기에 계속 반응을 보였다. 오늘은 잠도 안 자고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 2회 차와 독종이라는 단어를 듣고 피식 웃었는데 이 정도면 의식이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자기를 대단하게 여기며 치켜세워주는 말에 반응을 하는 거보니 정신은 멀쩡한 것 같이 보인다. 몸만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다면 많은 약도 안 먹어도 되고 조금 더 수월하게 간병을 할 수 있을 텐데 동생이 내가 하는 고생을 봐서라도 의식을 빨리 되찾으면 좋겠다. 정신 차리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