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30 - 이사하는 날

by 덤벙돈벙

2023년 3월 3일 금요일


오늘은 동생이 수술을 한지 한 달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직까지는 의식이 없는 상태라 완전하게 안심을 할 순 없었지만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옮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병원에서는 일반병동 생활을 할 때 욕창방지용 에어매트와, 토닥이라고 불리는 흉벽진동기용 에어조끼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지하 2층에 들려 의료기기를 사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면회를 하기 전 동생을 돌봐줄 간병인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원무과에 가서 퇴원수속을 밟고 입원수속을 한 다음 보호자 출입증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일반병동으로 올라가기 전에 침대에 에어매트를 미리 깔아놓으라는 지시도 받았다.


동생이 일반병동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에 내 친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 내가 어떤지도 확인할 겸 자기가 지방에 있는 친구들 중 대표로 왔다고 한다. 커피까지 사들고 온 친구를 보니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일반병동도 마찬가지로 보호자 1명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간병인분이 에어매트를 가지고 먼저 올라간다고 하셨다. 친구와 나는 갈 곳이 없어 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동생은 1시가 되기 전에 일반병동으로 이동할 것 같다며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하였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1층 원무과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5분 후에 병실을 이동한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중환자실 앞으로 갔다. 동생이 나오길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 위급환자가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그 환자의 가족이 우는 것을 지켜보고 남일 같지 않았는지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에 당황해서 엄마가 왜 우냐고 하니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그냥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드디어 동생이 나왔다. 동생을 실은 침대는 곧장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반가운 마음에 동생 이름을 연신 외쳐댔다. 머리를 보니 세로로 크게 상처가 나있었고 마스크를 낀 채로 눈만 멀뚱멀뚱하게 뜨고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눈만 깜박거릴 뿐이다. 이동을 하면서 처음 뵙는 교수님이 동생의 간병은 누가 할 것인지 물었다. 우선은 간병인을 쓸 거라고 하니 의식을 회복하려면 가족이 옆에 있어주는 게 좋지만 1, 2주 정도는 전문 간병인에게 맡기는 것도 괜찮다고 하였다. 아직은 스스로 가래도 못 뱉고 움직일 수가 없어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할 듯싶다. 그래도 2주 정도 지나면 동생의 상태가 지금보다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때는 내가 간병인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됐지만 무엇이 더 필요할지는 가봐야 알 것 같다.


일반병동에는 한 명만 올라갈 수 있어서 동생과는 아쉽게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면회를 하려면 72시간 내로 검사한 코로나 PCR 음성 확인지도 필요했다. 병원은 아직까지 코로나의 영향으로 일반병동도 면회는 쉽지가 않았다. 친구와 로비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렸다. 병원은 넓은데 기다리고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나중에 다른 가족들이 면회를 온다고 해도 대기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불편할 것 같았다. 너무 섣부른 걱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엄마가 일반병동에서 내려왔다. 병원에서는 오늘 동생을 담당할 교수와 면담을 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4시쯤이 돼야 만날 수 있다 하여 우선은 밥부터 먹기로 했다. 병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나는 점심으로 비빔밥을 시켰다. 밖에서 비빔밥을 돈을 주고 사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끌렸다. 평소에 하도 이상한 것만 먹어서 몸이 본능적으로 식이섬유가 필요하다 느꼈나 보다. 밥을 먹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앉아 있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교수님과 빨리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3시 정도에 면담이 가능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고 엄마는 교수님을 뵙기 위해 병실로 올라갔다. 병원에 방치된 나와 친구는 괜히 복도만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어디 쉴 곳이 없나 찾아보다 4층에 예배실이 있었다. 문이 열려있길래 살짝 들어가 보니 분위가 심상치 않다. 빈 공간이었는데 불구하고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이러한 공간에서는 졸면 안 될 것 같아서 재빨리 나와버렸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과 면담을 함께 들어도 된다고 하면서 일반병동으로 올라오라는 소식이었다. 친구는 그 전화를 듣고 자기는 먼저 가보겠다며 얼른 올라가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10층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복도로 들어서니 나를 알아본 간호사가 교수님과 엄마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동생의 수술 첫날부터 현재까지의 경과를 알려주셨다. 교수님은 친절하게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이해하기 쉽게 30분 동안이나 설명을 해주셨다. 정리하자면 동생의 상태는 이랬다.


병원으로 실려왔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였다. 오른쪽눈은 동공이 다 열려 있었다. 뼈와 뇌 사이에는 3층으로 이루어진 뇌수막이 있는데 뇌와 가까운 부분부터 연막, 거미막, 경막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뼈와 밀접하게 붙어있는 경막과 가운데에 위치한 거미막 사이에서 출혈이 발생한 것을 ‘급성 경막하 뇌출혈’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보통의 경우는 외상으로 인해 발생된다고 하여 외상성으로 불리는데 충격이 가해졌어도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 않고 20분 정도 후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생은 운동을 하다가 어딘가에 부딪히면서 출혈이 발생한 것 같다고 하였다. 뇌에 출혈이 발생한 경우 약물과 수술 이 두 가지 방법으로 뇌압을 낮출 수 있는데 동생은 출혈량이 많아서 두개골 절제술과 혈종 제거술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수술을 하고 나서는 7~10일 정도가 가장 위험한 고비라고 한다. 이 시기에 뇌부종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다행히 동생은 뇌압이 높아지지 않아서 수술한 지 17일 만에 머리뼈를 닫는 두개골 성형술을 진행했다고 한다. CT결과 일부분에서는 뇌경색도 발견이 되었는데 더 자세한 건 뇌파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동생 머리에 생긴 절개 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회복이 되는대로 빠르게 검사를 실시한다고 하였다.


여기까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심장 검사를 실시했는데 WPW 증후군이라고 하는 부정맥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마 평상시에는 증상이 미미해서 본인도 몰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경우는 동생이 회복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전극도자절제술을 이용해 부정맥을 유도하는 부분을 절제하면 된다고 하였다. 문제는 동생의 심장을 확인했을 때 엡스타인 기형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선천성 심장질환이라고 하는데 흔치 않은 경우이기도 하고 아직은 정확한 게 아니라 더 자세한 사항은 심장 초음파를 통해 확인을 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선천성이면 신생아 때 발견이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 큰 성인이 돼서야 문제가 있었다는 걸 눈치채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일단 심증이라고 하니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위험성을 유발할 수 있는 부위는 폐라고 했다. 그 당시 쓰러지면서 폐렴이 생겨 항생제를 계속 투여 중인데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다 보면 폐질환의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고 하였다. 현재는 소변감을 느끼지 못해 스스로 배출이 불가능하여 소변줄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줄을 통해 감염이 되면서 소변염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움직이지 않기에 욕창이 생길 수 있으며 더욱이나 다리에 혈전이 쌓여 폐색전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누워만 있는 환자들이 더 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한테는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할지 겁이 났다. 동생이 쓰러졌던 날에 혈종제거술을 할 때도 출혈량이 많아서 평소에 먹는 약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했는데 성형술을 했을 때도 출혈량이 많아서 의아했었다고 말했다. 혈액검사를 했을 때는 모든 수치가 정상이고 지혈을 담당하는 혈소판의 수치도 정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절개부위에 출혈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멈추지 않고 조금씩 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동생은 어릴 때부터 조금만 피곤해져도 코에서 피를 자주 쏟곤 하였다. 엄마가 이 이야기를 하니 아무래도 타고난 체질인 것 같다며 정확한 건 혈액종양내과에 의뢰해서 제대로 된 검사를 진행해 보겠다고 한다.


기나긴 설명을 마치고 교수님의 입회 하에 동생을 얼굴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마침 간병인이 동생 팔을 닦아주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동생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동생 곁으로 다가가 한참을 서서 지켜보다가 나를 보더니 가까이에서 동생을 보라며 자리를 바꿔주었다. 다행히 우리가 보러 왔는데 자고 있지는 않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냐며 인사를 했다. 동생 이름을 부르며 내가 보이냐고 물었다. 내 목소리에 눈동자가 반응했다. 동생은 마치 나랑 눈을 똑바로 마주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이경오 내 목소리 들려? 들리냐고. 나랑 놀자.”

간병인분이 옆에서 동생이 내 목소리가 들리는지 눈을 계속 깜박거리는 것 같다고 해서 질문했다.

“야 나 누군지 알아보겠냐? 내 목소리 들리면 눈 두 번 깜박거려 봐.”


그 순간 거짓말처럼 동생의 눈이 두 번 깜박거렸다. 정확히 봤다. 그 모습에 눈을 두 번 깜박였다며 간병하시는 분도 놀란 눈치였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한 번 더 해보라고 하니 내 요구를 또 들어주진 않았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만큼은 잠깐이라도 의식이 돌아온 것 같아 보였다. 교수님도 심장 박동기를 확인하면서 박동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 가족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역시 동생은 나를 좋아하는 게 맞다. 부정하고 싶으면 일어나서 따지던가. 다 받아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동생을 약 오르게 하고 얄밉게 행동하면서 승부욕을 자극시키는 건 내 전문이다. 그 점은 동생도 인정했다. 드디어 나의 능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 거의 뭐 눌렀다 하면 동생의 발작버튼이 된다. 그 점을 잘 이용해 보겠다. 아직은 몸이 성치 않으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만 해야겠다. 막막했던 앞 날에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