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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1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76- '지금'이라는 시간

2023년 4월 18일 화요일


 오늘 새벽에 자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 동생을 두고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다는 생각에 놀라 헐레벌떡 일어났다. 지금 무얼 하는지 보려고 주변을 살피는데 동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변은 어두웠고 나도 모르게 자고 있는 사이에 검사를 받으러 간 건지 그게 아니라면 잠을 자다가 나도 모르게 동생을 깔고 누운 건지 옆에 있어야 할 동생이 보이지가 않았다. 두려운 마음에 이불을 걷어내면서 동생을 찾으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다. 주위를 살펴보니 여기는 분명 병원인데 왜 내가 동생의 침대에 누워있는지를 모르겠다. 불안하게 이 상황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있는 곳은 병원이 아니라 자취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어제 엄마와 교대를 한 사실이 생각나서 마음을 놓고 다시 잘 수 있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자고 있을 때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지 오른쪽 다리에 경직이 생겨서 고통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전 8 반으로 알람을 맞췄는데  사이에  번이나  지를 모르겠다. 예전에는 한번 자면 누군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깨지 않고 잠들었었는데 지금은   수가 없었다. 누워있다가도 동생이 앓는 소리들리면 바로 일어나야 해서 마음 놓고 잠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탓에 집에 와서도 깊게 잠들지 못했다.   동안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해서 이상증세가 나타난 듯하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오전부터 준비를 했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소리를 보니 비가 오는 것 같다. 원래라면 비 오는 날 외출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비 오는 날마저 지금 나에게는 소중했다. 감히 비 따위가 내 약속을 막을 순 없다. 무조건 한 번은 먹으러 가봐야겠다고 했던 식당의 오픈시간에 맞춰서 찾아갔다. 맛집이라고 해서 비를 뚫고 찾아갔는데 주문한 음식은 SNS에서 봤던 사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칼국수 위에 수육이 같이 나온다고 해서 먹으러 갔는데 막상 음식을 받아보니 칼국수에 안에 고기 살점은 몇 개 안 된다. 완전히 속은 기분이었다. 맛은 있었지만 일부러 재방문을 할 정도로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그냥 먹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겠다.


 혜화 보통 연극을 보러 많이 갔었는데 이번에는 색다 수학여행으로 다닐 법한 코스인 창경궁으로 향했다.  그래도 힐링이 필요했는데 시끄러운 도심  고즈넉한 풍경과 맑은 하늘을 비추는 연못을 보고 으니 마치 다른 시공간에  듯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면서 산책을 하였다. 주변을 보니 오색빛깔의 철쭉들이 거리를 감싸고 사람들은 너나   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냥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숨만 쉬어도 행복했다. 항상  끝에 스치던 소독과 오물냄새에서 벗어나 싱그러운 풀내음을 맡고 있으니  시간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은 누가 나에게 어떤  요구하든  들어줄  있을 정도로 기분이 날아다녔다.


 평상시에는 짜증을  법한 일상들도 나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오래 걸어야 하는 거리는 오랜만에 산책을   있다는 생각에 좋았고,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실망스러워도 여유롭게 식사를   있다는 상황이 그저 좋기만 했다. 아마 지금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너무 무뎌져서 몰랐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전에 나였다면 마냥 편하게 놀지만은  했을 것이다. 항상 놀고 나서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지는 않은지 불안해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어진 시간을 온전하게 즐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괜한 불안감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살면서 주어진 시간을 생산적으로 발전하는 일에 써야 하고 배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을 한심하게 여기고 세상은 ‘개미와 베짱이’와 같은 동화를 만들어 열심히 일하는 개미처럼 살지 않으면 언젠가는 베짱이처럼 후회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가 과연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나도 개미처럼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미래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개미처럼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건 참아왔다. 그런데 행복하지는 않았다. 늘 궁금했다. 나는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는 건지를 말이다. 얼마를 벌어야 만족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이 나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지 찬란한 미래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가 되어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데 애타게 기다렸던 행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하염없이 미래에 대한 행복을 꿈꾸느라 지금 누리고 있는 시간을 고통으로만 생각했다. 그 속에서도 분명 행복이 존재했을 텐데 내 마음이 그 자리에 있지 못해서 온전하게 행복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놓치고 살았던 중요한 것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 같아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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