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와 도리짓고땡
“팍팍새 짓고 이땡이네.”
“저건 쭉쭉팔 짓고 갑오.”
“삥쌔오 짓고 장땡이다!”
운전만 하면 남편은 앞차 번호판으로 도리짓고땡을 한다.
6~7자리 숫자 중에 두 개는 버리고 다섯 개만 골라서 세 숫자로 10이나 20을 만들고, 남은 두 숫자로 점수를 본다. 같은 숫자 두 개면 땡. 다르면 끗수.
예를 들면,
팍팍새는 884
쭉쭉팔은 668
삥쌔오는 145
노름꾼들 말 몰라도 나도 덩달아해 본다.
10 만들 숫자 고르고, 나머지로 땡이나 끗 계산하는 건데,
순식간에 판단해야 해서 어렵다.
“아, 몰라 몰라.”
나는 금세 포기한다.
남편은 옆차 번호판도 보고, 지나가는 차도 보고
눈 깜짝할 사이에 도리짓고땡을 외친다.
진짜 빠르다. 어느새 외워서 외친다.
“아, 그만해. 운전 중에 딴짓하는 게 제일 위험하대!”
깔깔 웃으며 말리면, 더 신나서 외쳐댄다.
남편의 치매 예방법이란다.
또 있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앉아 있는 사람들부터 훑는다.
‘와, 저 아줌마 팔뚝 좀 봐. 한 대 맞으면 픽 쓰러지겠네.’
‘허름한 점퍼 입은 저 남자는 형사 같군.’
‘노인네가 하얀 구두를 신었어. 음, 튀지만 어울려.’
바로 스파이 전법이다.
영화에서 배운 거. 스파이처럼 주변을 스캔하며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거란다.
나는 분위기부터 보는데, 남편은 사람들부터 훑는다.
심각한 얼굴로 메뉴판 들여다보는 사람은,
‘마음에 없는 약속이었나 보군.’
카페 한구석에서 노트북 붙잡은 청년은,
‘프리랜서나 백수’
커피 식어가도 서로 눈빛 교환하는 커플은,
‘만난 지 석 달 이내’
웃기고도 진지하다.
관찰력은 거의 탐정 수준.
남편 말로는 “상황 판단력과 인물 분석 능력은 치매 예방에 딱”이란다.
치매 예방법 세 번째는 노래하기다.
뽕짝이랑 아이돌 노래 빼고는 다 좋아한다.
사실 음치에 박치다.
근데 자기는 노래 잘한다고 믿는다.
교회 찬양대에선 테너,
노인들 모임 합창단에선 베이스를 맡았다.
유튜브로 악보 찾아서 날마다 연습하고
박자 틀리고 음정도 나가지만 열정 하나는 진짜다.
노래 들려주고 평가해 달라 할 땐 곤란하다.
한 번은 내가 못 부른다 했더니 삐쳐서 하루 종일 말도 안 했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잘한다고 한다.
진심 70%에 거짓말 30% 섞어서.
악보 외우고, 반주 맞추고, 가사 기억하고, 노래 부르는 게
머리 쓰는 거 맞긴 하다.
아, 또 있다.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마당으로 나간다.
텃밭 작물을 돌보고, 잔디에 난 잡풀을 뽑고, 삐죽 새로 솟은 나무순을 자르고,
뭐 더 할 거 없나 두리번두리번.
이젠 아예 교회까지 가서
아침저녁으로 농작물에 물 주고, 풀 뽑고, 정원수를 돌본다.
교회 사모가 산책하다가 남편 있는 거 보면 미안해서 돌아간다더라.
내가 말한다.
“거꾸로 생각해 봐. 어떤 노인이 우리 집 와서 날마다 일하면 내 마음이 편하겠어?”
그러면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성전 가꾸는 일이야. 미안하거나 말거나.”
나는 올빼미형이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아침 설핏 잠 깼는데 마당에서 음악이 들린다.
시계 보니 7시도 안 됐다.
여름이라 창문이 열려 있어 더 잘 들린다.
“음악 좀 줄여!”
소리치면 남편은 풀이 죽어 얼른 줄인다.
안 봐도 안다. 음악 크게 듣는 게 취미인 사람이니까.
나는 아홉 시 넘어 느지막이 마당에 나간다.
선크림이 허옇게 발린 남편 얼굴엔 땀이 송송.
어느 날 TV에서 선크림 발라야 된다는 말 듣고
다이소에서 사다가 하루도 안 빼놓고 바른다.
난 한 번도 안 발랐는데.
머리 쓰고, 몸 쓰고, 수영으로 운동하고.
어떻게든 치매 안 걸리고 건강하게 살다가
심장마비로 딱 죽는 게 남편 소원이다.
가족한테 폐 끼치지 않고, 자기도 고통 없이.
교회 가서도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한단다.
눈물 난다,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