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티셔츠
밤에 입고 자는, 낡았지만 편했던 티셔츠가 있다.
목이 늘어나고 여기저기 실밥이 튀어나왔다.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도,
낙낙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다.
빨래해 건조대에 걸 때마다 좀 민망했지만,
입을 때는 마음이 가벼웠다.
버리지 못하고, 결국 뜯어진 데를 꿰매서 다시 입곤 했다.
누가 볼 것도 아닌데
‘이젠 버리고 새 옷으로 바꿔야지’
다짐하면서.
마음먹고 새 옷을 샀다.
보기엔 말끔하고 재질도 좋았다.
막상 입어보니 몸에 착 붙고, 어딘가 조이는 느낌.
예전 같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나이도 있고, 취향도 변했는지 그 딱 맞음이 불편했다.
숨을 쉬는 것도, 뒤척이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몸도, 마음도, 기준도
예쁘고 완벽해 보이는 것보다
조금은 낡고 느슨해도
내가 편한 게 더 소중해진 거다.
결국 옷장에 처박아두고 언니한테 입던 티셔츠 하나 얻어왔다.
입는 순간 느껴졌다.
아, 이게 내가 원하던 거였구나!
외출복은 몇 벌 있어도 잘 때 입는 옷은 또 다르다.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내가 나로 돌아오는 그 순간엔 편안한 옷이 필요하다.
헐렁하고 낡았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옷.
그런데, 나는 너무 자주
새 옷 같은 사람을 좋아했던 건 아닐까.
반짝거리고, 완벽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사람.
내가 쪼그라들어도 괜찮다며
억지로 맞춰 입으려 한 게 아니었을까.
내가 누구였는지 잊은 채 예뻐 보이려 하고
불편함을 참고 웃으며.
그때 내 진짜 마음은 어디 있었을까.
사람도, 관계도, 나도
딱 맞는 것보다
느슨하게 흐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어디 하나 삐뚤어져도 괜찮고
조금 낡아도 익숙한 마음이 더 소중하다.
그렇게 사람 사이 온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일 거다.
이제 낡은 티셔츠는 보내야겠지만
그 옷이 내게 가르쳐준 편안함과 너그러움은
오래오래 내 안에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