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닭장은 아버지의 손길로 지어야 한다

마지막 닭장

by 루씰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손녀들이 기억할 닭 울음소리와

그 소리를 품은 넓은 마당.

그 마당 한쪽에 아버지가 지어준 닭장이 남을 것이다.


“당신, 7킬로 배낭 메고 걸을 수 있어?”

“그럼.”

남편은 주저 없이 대답했지만, 나는 모르는 척 그의 다리를 흘끗 본다.

몇 해 전부터 집 밖을 나설 땐 지팡이를 짚는 다리.

7킬로면 가벼운 무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고 낯선 길 위에서,

그 다리가 버텨줄까 하는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비행기는 7킬로까지만 가능하대. 넘으면 돈 내고 부쳐야 하고.”

캐리어는 무게만 해도 제법 나가니 배낭을 떠올렸지만,

남편을 생각하면 그 선택이 맞는지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근데, 미국 갈 땐 몇 킬로까지 가져갈 수 있지?”

“한 20킬로 캐리어도 그냥 부쳤던 거 같은데. 왜?”

“작은 연장들 챙겨가서 다솔이네 닭장 지어주려고.”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거 흉기 아냐, 흉기?”

남편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비행기 안에 들고 타는 것도 아닌데, 그게 왜 흉기야.”



작은딸이 미국에서 도시를 떠난다.

다섯 살에 강화도로 이사 와서 흙먼지 날리는 들길을 뛰어다니며 자란 아이.

도시보다 시골의 시간이 더 익숙했다.

신혼도 미국 시골에서 시작했지만, 남편 직장 때문에 일 년 전부터 도시에 살았다.

그 일 년이, 딸에게는 너무 길었다.

이번에 이사할 집은 시댁과 가깝다.

깊은 숲, 드넓은 정원.

딸은 그곳에서 퍼머컬처를 꿈꾼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닭이 알을 품고,

텃밭에서 채소가 자라는 마당.



아빠가 길러준 유기농 채소,

엄마가 생협에서 사 온 조미료와 세제.

그렇게 자란 딸은,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 했다.


시댁 가족 모임에 가면 곤란했다.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

설탕과 색소가 가득한 쿠키와 케이크,

깡통에서 쏟아낸 수프와 스튜.

딸은 전화를 걸어와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엄마, 캔을 따서 끓이면 그게 미국 가정식이래.”


딸이 닭장을 짓고 싶다는 말에 남편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밭을 갈고 울타리를 세우는 건 그의 손이 가장 자신 있는 일이다.

삼 년 전 미국에 갔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12시간 넘게 비행하고, 시차와 낯선 환경에 시달려

일주일 내내 집 안에만 있던 그 시간.

그때 그는 말했다.

“다시는 안 간다.”

하지만 마음이 변했다.

딸이 시골로 간다는 소식,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의 솜씨를 기다릴 거라는 혼자만의 헤아림으로.



처음엔 ‘가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언제 가면 좋을까’로 이야기가 번졌다.

올해는 어렵다.

고추와 깻잎, 오이, 방울토마토까지 거둘 게 많다.

김장 무와 배추도 심어야 한다.

겨울엔 땅이 얼어 아무것도 못 하니 시기가 맞지 않았다.

“내년 3월이나 4월이 좋을까?”

“우리 농사는 어떡하지?”

“5월에 모종 사서 심으면 충분해.”


돈 문제도 있었다.

비행기값과 머무는 경비까지 합치면 최소 500은 필요했다.

딸에게 비행기표를 사달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모기지를 안고 산 집이라, 매달 대출이자 내기도 빠듯할 테니.

“다솔이가 언제 이사 간다고 했지?”

남편이 갑자기 묻는다.

“8월 말.”

“아무래도 9월에 가야겠어.”

“뭐? 9월에 말레이시아 가기로 했잖아!”

“그럼 10월. 추워지기 전에 가야지.”

“우리 배추랑 무 심어놨을 텐데, 그건 어쩌고?”

“안 심으면 되지. 사실… 씨앗은 이미 사놨어.”

김장 채소는 6월 윤달이 지나 심어야 한다고 했다.

올해는 날이 너무 뜨거워,

작년처럼 일찍 심었다간 말라죽을 게 뻔했다.

그래서 날짜만 재고 있었다.


남편은 삼 년 전 미국을 떠올린다.

몸을 푼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딸이 차를 몰고 마트로 향하던 길.

끝없이 펼쳐진 벌판과 맑은 하늘 아래 하늘보다 더 맑은 호수.

그리고 시골집 앞마당을 서성이던 딸의 웃음.

“아빠, 여기 닭장 하나만 지어줄래?”

그때는 농담처럼 흘려듣던 말이었다.

이제 그 말이 남편의 가슴에 깊이 박혀 있다.

“진짜 갈 거야?”

나는 다시 묻는다.

남편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래 숨겨둔 답을 꺼내듯, 단호하게 말했다.

“진짜 갈 거야.”



버디패스는 이제 없다.

항공사에서 퇴직한 바깥사돈 덕분에 편히 오갈 수 있던 비즈니스석.

그 기회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번엔 일반석에서 12시간을 버텨야 한다.

딸이 언제 오라고 답을 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흔들리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여행이 코앞인데도,

마음은 이미 미국 숲과 정원을 헤맨다.

내가 큰딸에게 전해 들은 여행 체험 이야기를 해도

그저 듣는 듯 마는 듯, 대답이 없다.


거실 식탁에 낯익은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다.

연필로 그린 직선과 사선,

작은 네모와 동그라미들이 규칙을 이루고 있다.

“이게 뭐야?”

“닭장 설계도. 닭이 몇 마리쯤이면 좋을까, 생각 중이야.”

종이 위에는 닭이 들어갈 칸, 알을 낳는 둥지,

비 오는 날을 대비한 지붕 구조까지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선들을 바라보다가 울컥한다.

그건 그냥 설계도가 아니라,

딸과 손녀들을 향한 편지였다.


나는 안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걸.

손녀들이 커서도 기억할 첫새벽 수탉이 홰치는 소리,

쫑쫑쫑 어미를 따라다니며 콕콕 쪼아준 벌레를 먹는

암탉과 병아리를 품은 넓은 마당,

그 마당 한쪽의 닭장을.

그 닭장은 아버지의 손길로 지어야 한다.

그래서 꼭 가려는 것이다.

이번만큼은,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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