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나의 뿌리고, 내 삶이 깊게 스며든 세상이기에

-마당 끝에 서서

by 루씰


마당이 좋다.

볕이 쨍한 한낮만 아니면 나는 자주 마당을 어슬렁거린다.

구석구석 둘러보고, 대문 밖 담장 밑도 걸어보고

쭈그려 앉아 잔디 사이 솟은 풀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남편은 종일 마당에서 산다.

할 일이 없을 땐 들마루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느릿한 숨결로 하루를 보낸다.


나의 삶은 언제나

흙냄새와 풀 내음이 스며든 마당에서 시작되었다.

도시의 불빛과는 거리가 먼 이곳,

투박하지만 따뜻한 숨결이 살아 있는 마당은

그저 땅 위의 공간이 아니라 나의 철학이 자라난 터전이다.


잠깐 빌라에 산 적이 있다.

남편이 응급실에 실려 가 한동안 입원하고 퇴원했다.

그 뒤 십 년 넘게 산 집을 정리했다.

병든 몸으로 지붕을 고치거나 마당을 손볼 수 없었다.

우리는 먼지 쌓인 묵은 짐을 정리하고,

열여덟 평 공간에 들어갈 간소한 살림만 챙겼다.

손때 묻은 물건을 수없이 버리고 나누었다.

삶의 반쪽을 담담히 흘려보냈다.


나는 작은 책상 앞에서 종일 글만 쓰며 갇혀 지냈다.

하지만 남편은 견디지 못했다.

낚시를 핑계 삼아 날마다 문밖으로 나섰다.

마당 없는 집,

앞집 옆집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 그곳은 우리에게 삶이 아니었다.

결국 일 년도 못 채우고 우린 다시 마당 있는 집을 찾아 나섰다.


계절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나는 마당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자연이 말해주는 희로애락,

그리고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의 모양.

아침이면 창을 열고 마당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상쾌한 공기와 새들의 노래가 하루를 깨운다.

햇살에 부서지는 이슬방울,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꽃들,

그 모든 장면이 한 편의 시가 된다.


남편과 나는 마당에서

무한한 생명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고 여린 잎이 열매를 맺기까지

그 모든 시간이 경이롭고도 경건하다.

자연의 느린 순환 속에서 우리는 기다림을 배우고,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익힌다.


물론, 이 삶이 늘 평화롭지만은 않다.

풀은 끝도 없이 돋아나고 벌레와의 싸움은 날마다 전쟁이다.

공들인 작물이 바람에 쓰러지고 땀은 한여름 소나기처럼 흐른다.


“우리 언제까지 마당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남편과 나는 답을 안다.

우리가 더 늙어 운전할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마당을 떠나야 할 것이다.

마트나 병원, 식당이나 면사무소에 일을 보러 가려면

아니, 하다못해 조금 떨어진 이웃에 갈 때도 차로 움직인다.

시골에서 자동차는 꼭 필요한 교통수단이다.


흙 묻은 손으로 수확한 채소 한 줌이 고된 하루를 위로한다.

정직하게 쌓아 올린 수고는 어떤 말보다 묵직하게 나를 다독인다.

마당은 남편과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는 흙을 만지고 햇볕을 쬐고,

바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풀을 뽑고 꽃을 심는 일은 결국 내 삶을 돌보고 다듬는 일과 같아서,

손길이 닿은 만큼 마당도, 우리도 함께 살아난다.

도시의 편리함과는 바꿀 수 없는 작고 단단한 가치.

마당은 나의 거울이며 나를 성장하게 하는 토양이다.


아직은 떠날 수 없다.

이곳은 나의 뿌리고 내 삶이 깊게 스며든 세상이기에.


오늘도 나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흙냄새를 들이마시고

눈에 보이는 생명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이 마당은 나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나만의 작은 우주다.

그 우주가 언제까지 나를 지켜줄지는 모르지만.


“우리 마당 있는 집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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