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 없이도 피는 마음

풀 속 채송화

by 루씰

베란다 창 아래, 채송화가 피었다.

텃밭 손질하느라 풀조차 매어주지 못했는데, 풀 사이에서도 방긋방긋 웃는다.

제대로 보살핌 한 번 받지 못했어도, 아프다는 말 없이 피고 또 진다.


채송화는 하루가 무척 바쁘다.

아침이면 봉오리가 열리고, 한낮 햇살 아래 활짝 피었다가 해가 기울면 조용히 오므라든다.

피고 지는 그 하루의 순환을 쉼 없이 반복하며, 투정 없이 제 몫을 살아낸다.


텃밭은 풍성하다.

늘어진 토마토, 통통하게 살 오른 오이, 싱싱한 잎사귀 아래 숨은 고추까지.

사람들은 큼직하고 실용적인 작물들에 더 쉽게 눈이 간다.

물을 주고, 가지를 치고, 거름도 더하는 정성은 늘 그런 채소들이 먼저다.


그런데 마당 한쪽,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풀숲에서 피고 지는 채송화는 참 작고 소박하다.

바로 그 작음 때문에 더 눈에 밟힌다.

풍성한 작물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그저 피어 있는 꽃.

누구의 주인공도 아닌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피워낸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작물들보다,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오히려 그 작은 채송화 한 송이다.

흐린 날이나 비 오는 저녁이면, 꽃잎을 꼭 다물고 있어서 다 진 줄 알았는데,

다음날 맑은 햇살이 들면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활짝 피어 눈을 마주친다.


가까이 다가가 보아야만 알게 되는 생의 고요한 끈질김.


남편도 나도 풀 한 번 제대로 뽑아주지 않았건만,

채송화는 여름 내내 바짝 엎드린 채 기어이 살아냈다.

그 뿌리에는 얼마나 많은 인내와 강인함이 숨어 있었을까.

그것도 모르고 그저 피고 지는 꽃으로만 여겼던 게 부끄럽다.


그 작고 고운 빛깔이 자꾸만 마음에 밟힌다.

해 질 무렵 빨간 꽃잎을 꼭 다문 채 조용히 있는 모습에선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혹시 오늘 무언가 버거웠다면, 내일 다시 피어날 준비를 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어떤 날은 흐리고, 어떤 날은 비가 온다. 그래도 또 다음 날은 맑아진다.

그 햇살 아래 어김없이 다시 피는 채송화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피워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찬사를 받지 않아도,

가만히 제 자리를 지키는 존재에서 더 큰 위안을 받는 날이 있다.

채송화는 그런 존재다.


사실 나는 그동안, 텃밭이라는 공간이 먹을 것을 위한 곳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작은 꽃 한 송이 덕분에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었는지,

이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나는 오늘, 채송화에 인생을 배운 것 같다.

다 피운 줄 알았던 삶이, 다시 피어나는 순간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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