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소한 사랑

남편의 머리를 매만지며

by 루씰

남편이 교회 갈 채비를 한다.

나는 여느 주말 아침처럼 브러시와 헤어젤을 챙겨 든다.

그의 머리를 매만지는 시간이다.


며칠 전, 헤나 가루에 커피를 섞어 염색해 준 머리카락은

햇살 아래서 부드럽게 반짝인다.

검은 머리엔 색이 잘 들지 않았지만

희끗희끗하던 흰머리는 따스한 갈색으로 물들어

전체적으로 더 단정하고, 은근히 세련돼 보인다.

세월이 지나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남편의 머리카락이 말해주는 듯하다.


남편은 반곱슬이다.

앞에서 보면 평범한 남자들의 짧은 머리지만

뒤로는 목 아래까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흐른다.

그 머리에 젤을 듬뿍 발라

가볍게 물결치는 듯한 웨이브를 살려준다.

고개를 살짝 돌릴 때마다 컬이 찰랑이며 자연스럽게 흘러내린다.

할아버지라기엔 은근히 멋스럽다.

어느 중년 배우의 스타일 같기도 하다.

아니, 그런 건 그냥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뜻이다.

어쨌든 남편은 자신의 지금 헤어스타일을 참 마음에 들어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 머리는 꽤 짧았다.

이발소 갈 타이밍을 놓치고 미루다 보니 어느덧 길어졌고,

그 길어진 머리 위로 살짝 구불구불한 웨이브가 생겼다.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레 멋스러운 그런 결이었다.

누군가는 예술가 같다고 말했고 남편은 그 말에 신이 나

“마에스트로 머리야” 하고 웃었다.

나는 짧은 머리가 훨씬 산뜻하고 젊어 보인다고

며칠을 두고 자르라고 했지만, 남편은 끄떡도 안 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내가 다니던 단골 미용실에 다녀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두 눈이 커졌다.

“아니, 이게 뭐야?”

“원장이 이렇게 잘라주었어. 난 좋은데.”

그땐 그 말만 듣고, 원장님이 실수한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뒤, 내가 미용실에 따로 들렀을 때

원장님이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 스타일, 남편분이 직접 부탁하셨어요.”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 모든 것이, 남편 스스로 선택한 ‘멋’이었다는 걸.

“아이, 이 뒷머리 좀 더 잘라주지.

여름인데, 머리카락이 목에 닿으면 얼마나 더운데…”

“난 괜찮아. 하나도 안 더워.”


남편은 이 여름을 길어진 머리와 함께 땀에 젖어 보내면서도

단 한 번도 덥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더위를 참지 못해 머리를 높이 묶고, 머리띠까지 쓰며

목덜미를 시원하게 해 두고 다녔지만,

남편은 끝까지 그 스타일을 고수했다.


언젠가부터 남편은 조금씩 자신을 꾸미기 시작했다.

흰 농구화, 흰 바지, 흰 스웨터, 파스텔톤의 분홍 카디건.

그가 평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색깔들이

이제 그의 옷장에서 하나씩 늘어갔다.

흰 발목 양말은 도대체 몇 켤레를 샀는지 모른다.

겨울 양복에도 신어 발목이 훤히 드러나길래

“안 시려?”하고 물으면 “괜찮아.”하고 웃는다.


남편은 다리가 불편해 푹신한 신발을 신어야 하지만

굳이 딱딱한 농구화를 신고 나가겠다고 한다.

걱정스러워도, 그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 고집을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 날은 눈썹 문신을 하겠다고 한다.

눈썹 가운데가 살짝 비어 선을 채워야 한단다.

“뭐어?”

놀라서 되묻는 내게,

“눈썹 모양이 삐뚤어 보여서 그래.”

나는 웃으며 말했다.

“문신을 한다면 내가 해야지. 내 눈썹은 짧잖아.”

무서워서 하지도 못하면서 괜히 농담처럼 던져본 말이었다.

남편은 내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문신 비용이 이십만 원쯤 든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하다 하다 이젠 별 얘기를 다 하네 싶다가도

그걸 말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원한다면 뭐든 해주고 싶은, 그게 요즘의 내 마음이었다.


청바지를 잘라 올이 풀린 반바지를 만들고,

흰 샌들을 어렵게 찾아 신는 남편.

누가 봐도 눈에 띌만한 차림새지만 그는 그런 ‘튀는’ 걸 즐긴다.

양복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

색색의 넥타이를 바꿔가며 맨다.

가을과 겨울, 어두운 옷차림에 작은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며.

심지어 교회 가는 아침이면 내 롤 브러시를 가져다

스스로 뒤통수를 말고 있기도 했다.


예전에 남편은 정말 아무거나 입었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얻어먹기 힘들대.”

내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사람은 입은 옷으로 대접받는다며

제발 멀쩡한 옷 좀 입고 다니라고 수없이 말했었다.

병원을 가든, 모임에 가든

남편은 늘 낡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나섰고

나는 속상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꾸미고 싶다는 그 마음을 나는 좋게 본다.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고르는 그의 모습은 꽤 근사하다.

때로는 내가 옆에서 코디를 다시 맞춰준다.

조금 더 선명한 색을, 조금 더 따뜻한 분위기를.


나는 외출할 때 화장하지 않는다.

로션이나 크림 하나면 충분하다.

출판사 관계자를 만나든, 딸의 상견례 자리에 가든

맨얼굴 그대로다.

결혼 전엔 어땠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런 내가 남편을 꾸며주고 싶어졌다.

늙어간다는 건 때때로 서럽지만, 그래도 멋을 내고 싶은 마음,

그 작은 욕망이

하루하루를 기꺼이 살아가게 만든다.


몇 해 전엔 남편이 머리를 길렀다.

긴 머리를 잘라 암 환자에게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머리를 풀어헤칠 수 없어

나는 매일 남편의 머리를 땋아 돌돌 말아 올려 빵 머리를 만들어주었다.

특히 교회 가는 날이면 조금 더 정성스럽게 땋았다.

흘러내리지 않도록 핀도 단단히 고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머리는 결국 기부하지 못했다.

흰머리 섞인 머리칼은 기부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긴 시간

머리를 기르며 품었던 그의 마음은 참 따뜻했다.


딸들의 머리를 묶어주던 내가 이제는 남편의 머리를 매만진다.

이 아침,

그의 머리를 손질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토록 작은 일상이 우리를 지탱하는 게 아닐까.

그가 오늘도 자신의 스타일을 기꺼이 즐기고

작은 멋을 부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앞으로도 그를 더 멋지게 꾸며줄 것이다.

그게 내 작은 사랑의 방식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말도 사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