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배추를 심으며
김장배추를 심었다. 이웃이 100개짜리 모종 두 판을 건네주었다.
옥수숫대 베어낸 자리와 당근, 양배추, 브로콜리를 심었던 자리를 배추가 차지했다.
심기 시작한 건 어제 오후,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이었다.
밭은 생각보다 좁았고, 해는 빨리 저물었다.
결국 오늘까지 넘겨진 배추 심기는 작은 하우스 안까지 손을 뻗게 했다.
봄에 모종 하려고 마련한 그 공간도 이번엔 밭이 되었다.
남편은 아직 싱싱한 파프리카를 뽑아내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마침내 배추가 편안히 자리할 곳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가지는 선아를 위해, 고추는 언니를 위해 남겨두었다.
심고 남은 모종판을 앞에 두고 남편이 말했다.
“이거 봐. 어제 내가 더 많이 심었지.”
나는 그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심던 포토는 하나씩 차례로 꺼내 심어 표가 났다.
남편이 좋은 것부터 심으라고 해서 조금 덜 자란 것들은 군데군데 남겨두었다.
그러니까 모종이 적게 남은 그 포토는 내가 심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게 자기가 심고 남긴 거라고 우겼다.
“저게 내가 심던 거거든.”
나도 질세라 한마디 했지만, 그냥 거기서 멈추었다.
가끔 서로 자기가 맞다 우기느라 말싸움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부질없는 것에 얽매이는 게 우스워졌다.
남편은 사실, 자신이 얼마나 이 일에 애썼는지를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웃음이 났다.
밭일을 같이 해보면 알게 된다. 남자들은 쪼그려 앉아서 하는 일을 유독 힘들어한다.
밭을 매거나 고구마를 캐거나, 그런 일들은 대부분 여자들 몫이다.
나도 사실 무릎이 아파 오래 쪼그릴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철퍼덕 앉아 움직인다.
어쨌든, 나는 남편보다 꼼꼼하고 재빠르다. 차례차례 모종을 골라 심었고,
그래서 더 적게 남은 게 내가 심던 포토가 맞다.
그걸 떠올리다 문득 큰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엄마, 나도 점점 엄마 닮아가는 것 같아. 욕실에 수건 비뚤게 걸려 있으면 그냥 못 지나치겠어. 똑바로 맞춰야 속이 시원해. 설거지 끝나면 싱크대 물기도 꼭 닦고, 가스레인지도 반짝반짝하게 닦아놔야 마음이 편해.”
딸애는 성격이 덜렁이다. 같이 살 때도 내가 그리 잔소리했던 것 같진 않은데, 결국은 다 보고 자랐나 보다.
내심 걱정했던 부엌살림도 이젠 제법 잘 해내고 있으니, 괜스레 흐뭇해졌다.
작은딸도 아이 둘을 키우면서 자기도 모르게 내 말투를 따라 하고 있단다.
“아구, 이쁜 내 새끼”, “어구어구 그랬쪄?” 하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배 아프다면 배를 문질러주면서 옛날에 내가 불러주던 전래동요를 똑같이 불러준다고 했다.
“까치야, 까치야. 울 애기 생일 때 미역국 끓여서 쌀밥하고 한 그릇 줄게 나서다오.”
‘나서다오’는 ‘낫게 해 다오’의 사투리지만, 그 노래도 결국은 내가 친정엄마한테 배운 것이다.
그렇게 딸들에게, 그리고 손녀들에게, 나는 내가 자라온 세계를 물려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딸들에게 남긴 가장 자연스러운 유산일지도 모른다.
태도, 습관, 말투까지도.
그래서 더 확신한다. 나는 일하는 데는 꼼꼼한 사람이다.
포토에서 좋은 모종부터 차례로 골라 심었고, 모종판에 적게 남은 게 바로 그 증거다.
아니, 어쩌면 남편이 진짜 기억을 못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남편의 기억력도 이제는 가끔씩 헷갈린다. 안 한 말도 했다고 우기고, 한 말도 안 했다고 할 때도 있다.
그래도 뭐 어쩌랴. 그게 우리 나이인걸.
텃밭 일은 대부분 남편이 한다.
나는 씨앗이나 모종을 심을 때, 수확철에 열매를 따는 일 정도만 곁눈질하며 거든다.
하지만 그렇게 땀 흘려 일한 남편이, 모종 하나 더 심었다고 자랑할 때면, 속으로 웃음이 난다.
자랑이라기보다는, 그저 “나도 열심히 했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래, 당신이 더 많이 심었다 해도 좋아. 중요한 건 결국, 배추가 잘 자라주는 일.
그 배추로 김장해서 겨울을 준비하고, 식구들과 웃으며 밥상에 둘러앉는 일이니까.
종일 마당에서 일하는 남편은 밤이면 끙끙 앓는다.
나도 이틀 배추 좀 심었다고 온몸이 쑤신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서로를 살핀다.
다리를 주물러주고, 파스를 붙여주고, 감기 기운 있으면 생강차를 끓인다.
잊는 것 많아도 서로 챙기며 다툼은 짧고, 웃음은 길게 남긴다.
해 질 녘엔 들마루에 나란히 앉아, 하우스 지붕에서 늙어가는 호박을 바라본다.
그렇게 말수가 줄어든 저녁을 맞이한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함께 늙어가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