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우리가 있었다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마치며

by 루씰

코타키나발루의 하늘과 바다는 푸르고 눈부셨다. 젊은 날의 우리처럼 활기 넘치는 햇살이 모든 풍경을 찬란하게 비추었다. 그 빛은 환하고 생기 있었지만, 어쩐지 우리에게만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뜨겁다기보다 서늘했고, 반갑다기보다 조용했다. 딸과 사위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기엔, 우리의 시간은 그보다 훨씬 느리게 흘러갔다.


여행은 시작부터 서로의 리듬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딸의 손에 들린 일정표는 마치 목적지를 향해 쉴 틈 없이 달려가는 기차 시간표 같았다. 반딧불 투어를 위해 덜컹대는 차를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는 시간. 좁은 강폭 양쪽으로 맹그로브 숲이 펼쳐진 나나문 강을 따라 흐르는 작은 나룻배. 제셀톤 포인트에서 흔들리는 모터보트에 몸을 실으며 바다를 누비는 순간들.

딸과 사위는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숨 쉴 틈 없이 풍경을 삼켰지만, 우리는 낡은 의자에 기대어 고단한 몸을 조용히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딸은 자주 우리를 돌아보았다.

“엄마, 괜찮아?”

“아빠, 힘들지 않아?”

그 따뜻한 물음 속에는 분명한 배려와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그 눈빛 안에 숨어 있는 조급함을 나는 느꼈다.

‘빨리 오세요, 함께 즐겨요’라는 속마음.

우리는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그 말은 점점 더 무거운 돌처럼 마음속 깊이 가라앉았다. 사랑하는 자식의 여정을 방해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노년이 주는 가장 깊은 고통이라는 것을 나는 그 여행에서 또렷이 깨달았다.


밤이 되어 반딧불이 수놓은 강가를 지날 때, 수많은 불빛들이 반짝이는 모습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투어에 포함된 드넓은 바다 위에서의 선셋 풍경 또한 압도적이었다. 붉고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이 바다 위에 펼쳐졌을 때, 딸과 사위는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 찬란한 저녁노을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평생 보아온 해 지는 하늘이었기에,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을 크게 표현하지 못했다. 감탄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기보다는, 조용히 마음속에서 스며드는 감정으로 남았다. 그 차이가, 우리와 젊은이들 사이의 또 다른 거리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저 반딧불들은 과거의 우리였는지도 모른다. 함께 웃고, 함께 달리며 모든 것을 처음으로 마주하던 시절. 지금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해야 하는 시기임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호핑투어의 액티비티 체험 시간, 딸과 사위의 웃음소리는 파도처럼 청량했다. 우리는 잠시 스노클링을 즐겼고, 나는 딸을 따라 페러세일링과 씨워킹에도 도전했다. 바닷바람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어딘가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남편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원하던 액티비티를 대부분 하지 못했다. 업체에서는 참여가 어렵다고 했고, 결국 그는 바닷가에서 짐을 지키거나 스노클링을 하며 홀로 시간을 보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내 마음은 오래도록 저렸다.


딸은 그런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배려했다. 걱정했고, 챙겼고, 웃으며 다독였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그래서 더욱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자식이 주도하는 여행에서, 우리는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괜찮다고, 힘들지 않다고, 여전히 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과 우리의 시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놓여 있었다. 그건 나이 때문이 아니라 살아온 리듬과 감각, 그리고 체력이 달라진 탓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행기 창밖으로 코타키나발루의 푸른 하늘이 멀어지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나는 나란히 앉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하루하루가 하나의 긴 그림처럼 떠올랐다.

고요한 비행기 안, 딸과 사위는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었고 우리는 조용히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집은 낯설 만큼 조용했다. 여행 가방을 풀면서도 우리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짐 속에서 나온 바다 냄새와 자잘한 기념품들이 방 안 가득 코타키나발루의 온도를 퍼뜨렸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우리는 정말 여행을 다녀왔구나. 함께였구나. 끝까지 견뎌냈고, 웃었고, 또 사랑했다는 사실이 말없이 가슴에 들어찼다.


이번 여행은, 우리에게 분명 선물이었다. 젊은 시절처럼 모든 걸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딸과 사위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순간들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다르지만 함께였고, 느리지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우리에게 가장 편안한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곁을 지키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간 그 자체라는 것을. 그 여행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자 가장 아름다운 여정이라는 것을. 자식과 함께한 여행은 그 시작을 다시 일깨워준 고마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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