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갈아낸 자리에서
월요일 밤에 떠나 일요일 아침에 돌아온 집은 낯설 만큼 고요했다. 대문을 열자 훌쩍 자란 풀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 며칠 사이 비가 내렸는지 외발 수레엔 빗물이 제법 고였다.
텃밭의 무 싹은 반쯤만 올라와 있고, 배추 모종 몇 포기는 시들거나 녹아 사라져 군데군데 빈 구멍이 뚫렸다. 집 안의 공기까지 일주일의 부재를 기억하고 있는 듯, 조금은 서늘하고 낯설었다.
일요일 하루는 푹 쉬자고 했는데, 오후 늦게 마실 나간 남편이 손님들을 몰고 왔다. 코타키나발루 면세점에서 친구들을 위해 산 영국산 진을 하루도 못 기다리고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큰 병을 앓고 난 후 남편은 술을 끊었지만, 이웃 친구들은 여전히 지독한 술꾼들이다.
손님 중에는 강화에 살다 곡성으로 귀농한 의득 씨도 있었다. 오랜만에 본 의득 씨는 마르고 주름이 늘었지만, 농부답게 더 단단해 보였다.
아내 혜형 씨가 책을 냈다며 한 권을 건넸다. 그들이 강화에 살 때 나도 몇 번 만난 사람이다. 남편은 오랜만에 만난 의득 씨를 핑계 삼아, 그 길로 다른 술친구들까지 모아들였다.
여행 가기 전 냉장고를 비워 안줏거리도 없었지만, 이것저것 찾아내 안주 몇 가지를 만들었다. 내 집에 온 손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피로에 전 몸으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움직이다 보니 몸이 오히려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종일 뒹굴며 혜형 씨의 『꽃이 밥이 되다』를 읽었다.
논물에 서서 기록한 쌀밥의 서사!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벼농사를 지으며 뼈마디가 닳는 고된 일상이 눈앞에 절절하게 펼쳐졌다.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진중하고 성실하며 정직한, 진짜 농부들. 그들의 삶 앞에 경외심이 일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해발 500미터, 봉화 산골 비탈밭.
강화에서 오 년을 살다 우리는 이곳으로 왔다. 그 무렵 우리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강화에 살다 이사 간 차령이네가 우리 소식을 듣고 전화했다.
“언니, 머리도 식힐 겸 한번 놀러 와요.”
차령 엄마의 마음을 받아 딸들을 데리고 차를 몰았다. 울진과 경계를 이루는 봉화 끝 여우골. 초입에만 집들이 듬성듬성 모였고, 끝없이 오르는 골짜기엔 한 해 전 태풍 매미의 흔적이 여기저기 파여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 다시 오른쪽으로 오르는 작은 샛길. 그 끝에 평평한 마당과 아담한 집이 우리를 기다렸다.
그날 밤 차령이네서 우리는 생의 고비를 넘기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 강화의 집을 떠나기로.
산허리를 돌아 십여 분을 더 가면 빈집이 한 채 있었다. 3천 평이 넘는 산비탈 밭이 딸린 집. 주인이 사정이 있어 내놓은 그 집이 우리에게 손짓했다.
운명은 엉뚱한 데서 시작되는 것일까.
손바닥만 한 텃밭 말고는 흙을 다뤄본 적 없는 우리는 그곳으로 이사했다. 아이들은 마을 건너 분교로 전학하고, 우리 부부는 팔자에도 없던 농부가 되었다.
늦가을에 이사해 겨울을 나고 봄이 왔다.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가파른 비탈밭. 돌투성이 버려진 땅을 오직 우리 두 사람의 손으로 일구어야 했다. 돌을 골라내고, 내가 소가 되고 남편이 뒤에서 밀며 쟁기를 끌었다. 그 넓은 밭을 기계도, 남의 손도 빌리지 않고 둘이서 다 갈아냈다. 갈고, 고르고, 비닐 멀칭까지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이것이 우리의 생계라고 생각하니 죽기 살기로 했다. 차령 아빠는 그때 내게 ‘멀칭 공주’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봄이 무르익자 초봄에 씨앗으로 싹을 틔운 단호박 모종을 옮겨 심었다. 비탈진 밭에 쪼그리고 앉아 한 포기 한 포기 흙을 헤치며 심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행 같았다. 땡볕 아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 물을 주느라 비탈밭을 오르내리며 끌고 다니던 무거운 호스, 땅바닥을 기며 뽑아내고 뽑아내도 솟아오르는 풀.
그 대가로 저녁마다 쑤시는 관절, 젓가락질도 못 할 만큼 아린 손가락.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점점 채워졌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초록빛 단호박 줄기들이 뻗어나가고, 노란 꽃이 피고, 벌들이 날아드는 장면은 눈부신 축복 같았다.
여름이 깊어지자 줄기가 밭 전체를 뒤덮고, 그 아래 단단한 단호박들이 하나둘 열렸다. 가을이 되어 탐스럽게 익은 단호박들을 수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땀이 열매가 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고달픈 날들이 지금은 아득한 꿈같다. 그러나 그때 배운 건 분명하다. 흙은 우리가 쏟은 노력만큼 정직하게 보답한다는 것. 그리고 그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이 우리 삶을 지탱해 준다는 것.
그 시절의 나는 서툴고 고단했지만, 땅을 붙들고 몸으로 삶을 견디며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길어 올린 기분이었다. 절망 대신 흙을 택했던 그날의 선택이 우리를 단단하게 빚어냈음을, 지금도 텃밭에 앉아 흙을 만질 때마다 다시 깨닫는다.
일상의 작은 땀방울이 모여 삶의 큰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