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밥 한 끼
천종 씨가 떠났다. 골수암.
얼마 전 수술 들어가기 전, 살아서 돌아올지 어떨지 모른다며 밥 한 끼 먹자고 했다. 남편은 태진 씨와 덕명 씨를 태우고 읍으로 나갔다.
그 후로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토요일 새벽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난 말복, 삼계탕을 끓여 몇 사람을 초대했는데 그날따라 아파서 못 온다고 했다.
남편은 올 정초에 새로운 사람을 셋이나 사귀었다. 해상 씨, 두한 씨, 그리고 천종 씨. 그중 해상 씨는 몇 번 우리 집에 다녀갔고, 남편도 그의 집에 갔지만 다른 두 사람은 밖에서만 만나 나는 볼 기회가 없었다. 남편의 입을 통해 이야기만 들었는데, 얼굴도 못 보고 떠났다고 하니 마음이 서늘했다.
아직도 남편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눈이 반짝인다. 나는 있는 인연도 줄이고 싶은데, 남편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금세 형, 동생이 된다. 남편 나이가 있다 보니 대개 칠팔 년, 많으면 십여 년 아래의 동생 격이다.
그런 새 친구들 가운데서도 남편은 특히 천종 씨를 마음에 두었던 것 같다. 양쪽에 목발을 짚고 모임에 나올 때면, 집에 갈 때 남편이 직접 태워다 주기도 했다.
한 번은 화가인 천종 씨 아내의 그림을 보고 남편이 엽서를 가져왔다. 아주 마음에 드는 그림이라며 사주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 형편에 무슨 그림이야?”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나도 그림이 좋긴 했지만,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물건. 무리해서 사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몇 마디 더 조르다가 그만두었다.
상갓집에 다녀온 남편은 천종 씨 아내가 전보다 더 바싹 늙어 보였다고 했다. 남편의 죽음이 눈앞에 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생각하니 그때 그림을 사지 않은 것이 괜히 미안해졌다.
“젊을 땐 뭐 하던 사람이야?”
문득 궁금해졌다.
“외국에 나가 돈도 많이 벌었대.”
“자식은 있어?”
“응, 둘이나 있다는데… 상갓집에 너무 일찍 가서 보진 못했어. 멀리 산다나 봐.”
돈도 있고, 자식도 있다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죽을지 모르니 마지막 밥이나 먹자던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얼마 후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사는 삶이라니.
나는 글로, 말로 늘 “멈추는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라고 하지만, 그것이 천종 씨의 얼마 남지 않은 삶과 같을 리 없다.
그날 저녁, 남편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에게 천종 씨는 잠시 스쳐 간 인연이 아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남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소중한 존재였으리라.
그를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기쁨을 다시 느꼈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던 그의 모습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다.
나는 그를 알지 못했지만,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그를 알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 밥 한 끼를 그토록 간절히 청했던 것은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으리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온기를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았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늘 다음을 기대하며 산다. 하지만 천종 씨는 다음이 없는 마지막을 이미 예감한 채 살았다. 어쩌면 그에게 삶의 마지막은 미룰 수 없는 오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고 싶지만, 어떤 말로도 그의 깊은 슬픔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말없이 곁에 앉아 있는 것으로 그의 슬픔을 함께 나눈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천종 씨가 남긴 삶의 흔적을, 그리고 그의 마지막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