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지나면 인연도 바뀐다지만

시절 인연

by 루씰


나를 부르는 진옥 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높은 톤이지만 애틋한 음성, 생글거리는 눈웃음. 뭔가를 주고 싶어 종종거리며 주방을 뒤지던 바지런한 몸짓, 마당에 핀 봄꽃들을 자랑하며 꽃보다 환히 웃던 동그란 얼굴….

동네 아줌마들 여섯이 언니, 동생하며 뭉친 모임에서 나는 진옥 언니가 가장 좋았다. 누구보다 언니를 사랑하고 의지했다.

우리는 정치적 지향도, 성향도 같아서 만나면 밤이 늦도록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과도 끈끈한 사이여서 뭐든 있으면 퍼주고 싶었다.

진옥 언니는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언니네 집은 면 소재지 마트나 병원, 목욕탕에 가는 길목이다. 오며 가며 들르기 딱 좋았다.

맛있는 게 있으면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에게 맞을 만한 옷이나 가방 등이 생길 때도 있었다. 내가 손에 뭔가를 들고 가면 언니는 텃밭에서 딴 호박이나 가지, 줄 게 없으면 냉동실에 얼려놓은 떡이라도 쥐어서 보냈다. 서울에 친언니가 둘이나 있지만, 멀리 있는 혈육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 언니가 더 살갑게 느껴졌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SNS는 뜨거웠다. 쓰레기차 vs 똥차니 온갖 조롱이 오갔고, 영국 언론은 ‘역대급 역겨운 선거’라고 했다. 난 똥차만은 절대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똥차가 우리 진영의 후보였던 거다.

새해 첫날 우리 집에 모였다. 내가 쓰레기차라고 생각한 아무개를 뽑을 거라고 선언했다. 언니가 깜짝 놀랐다.

“안 돼. 그러지 마.”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얼마 후 모두 일어섰다. 현관 밖에서 내가 말했다.

“언니, 아무개 안 뽑을 거야. 무명씨 뽑을게, 무명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차마 아무개를 뽑을 수 없던 나는, 제3의 후보인 무명씨 이름을 되뇌었다. 언니가 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래, 그래.”

언니는 내가 무명씨를 뽑을지언정 아무개를 안 뽑는 것만으로 흡족해했다.

나는 제발 똥차라고 생각한 그 사람만은 안 되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아무개를 대놓고 응원할 수도 없었다. 그저 소극적으로 아무개의 홍보 웹자보를 페이스북에 몇 번 공유만 했다.

좋은 정치인을 발견하면 없는 살림에 아끼지 않고 후원금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개에게는 차마 후원할 수 없었다.

새해 첫 모임 이후, 우리는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나를 뺀 나머지는 분명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났을 거다. 내게는 아무도 전화 한 통조차 없었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똥차라고 생각한 그 사람이 떨어졌다.

나는 누구에게도 선뜻 연락할 수 없었다. 내 바람이 이루어져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4월 초, 남편과 큰딸과 함께 미국 작은딸네 가기로 했다. 작은딸이 둘째를 낳을 예정인데 아빠에게 꼬물대는 어린것을 안게 해주고 싶다고 꼭 같이 오라고 했다. 코로나 시기라 모든 준비가 번거로웠다. 새로 이사할 집도 구해야 했다.

미국 갈 준비를 하는 와중에 미친 듯이 부동산을 뒤져 맞춤한 집을 찾았다. 빈집이어서 계약 뒤 닷새 만에 이사까지 마쳤다.

진옥 언니가 걸렸다. 미국 가기 전, 간다고 말해야 했다.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치 얘기만 빼고, 그동안의 일들로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통화를 끝내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2주 예정이었지만, 1주 만에 집에 돌아왔다. 하필 사위는 그때 다리가 부러져 깁스한 상태였고, 산모인 작은딸은 쉴 수가 없었다. 제 남편과 꼬마 큰딸을 챙겨야 했고, 친정 식구들을 위해 장을 보러 운전해 마트도 다녀와야 했다.

집안이 복작댔다. 차라리 우리가 가는 게 자기네 가족들만의 리듬을 찾고 휴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와 진옥 언니에게 미국에 잘 갔다 왔다고 전화했다. 목소리가 싸늘하며 사무적이었다. 어리둥절했지만 명랑한 척 마무리했다.

일주일 만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 후, 여기저기서 보이던 낌새들.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했다.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 약속을 잡고 언니네 집을 찾았다. 언니가 대뜸 말했다.

“***를 사랑해?”

뜬금없는 대통령 부인의 이름.

“네에?”

갑작스러운 물음에 내가 더 놀랐다. 언니는 내가 변했다고 했다. 불쌍하다고, 자기들끼리 말했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진영을 버리고 못난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졌다. 머리가 정수리부터 정확히 십자로 그어지며 골이 빠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쉬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고 컥컥댔다.

네 쪽으로 쩍 하니 쪼개질 듯 아픈 머리를 감싸고 짓누르며 몸부림쳤다.

정치적 입장 하나 다르다는 이유로,

그 모든 시간이 부정당했다.

그 모든 따뜻함이 단절되었다.

언니와 나눈 대화, 함께 웃었던 날들, 서로 기대던 순간들마저도.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입장 하나로만 평가받는 그 순간은 마치 내가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언니가 물을 가져왔고, 나는 소파에 누웠다. 한참 동안 증상이 계속되어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119 부를까?”

언니도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손을 저었다.

언니, 구급차가 필요한 게 아니야. 나를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여 줘.

난 변하지 않았어, 조금도!

한 이십여 분 흘렀을까, 서서히 증상들이 가라앉았다.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가 취소했다. 바람을 쐬면 좀 더 진정될 것 같았다. 어둑어둑한 밤길을 걸어서 집에 왔다.

그날 밤, 너무 많이 울었고 그 후에도 더 많은 날을 울며 지냈다.

그리고 가슴 속엔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간직했다.



“언니,

마음을 다 주었던 걸 후회하지 않아.

그 모든 날들을 지우고 싶지 않아.

미움에 물들지 않도록 애썼고,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엔 언니를 사랑해.

우리 사이가 끊어진 게 아니라

그저 시절이 지나간 걸지도 몰라.

시절이 만든 인연,

시절이 데려간 인연.

그때의 우리는 진심이었으니까.”


시절이 지나면 인연도 바뀐다지만,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다시 심장이 뛰고,  멈춘 시간이 흐를 리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