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불편한 것들의 가치
어제저녁, 우리 집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옆구리가 약 15cm가 터진 아들의 이불. 아내는 그걸 보자마자 “이제 버려야겠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내 안의 뭔가가 꿈틀거렸다. ‘아니, 이걸 왜 버려?’ 아내가 버리려고 현관문 앞에 내다 놓은 이불을 아내 몰래 아들 방으로 다시 가져왔다.
바늘을 집어 들자 갑자기 어릴 적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리 엄마가 내 양말 뒤꿈치를 꿰매주시던 모습. 그때는 ‘아, 왜 이렇게 구린 걸 계속 신으라고 하시나’라고 투덜거렸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다 사랑이었다니.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아빠, 뭐 해?”
갑자기 튀어나온 아들 목소리에 깜짝 놀라 바늘에 찔릴 뻔했다. 아들은 내가 바느질하는 걸 신기한 듯 쳐다봤다. 하긴 요즘은 어느 매체에서도 바느질하는 장면을 쉽게 찾아보기 힘드니 아들 딴에는 신기했을 것 같다.
“아빠가 아들이 좋아하는 이 이불. 엄마가 못 버리게 해 줄게!”
아들은 신나 하며 방을 나갔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엄마! 아빠 바느질하고 있어.” '아이코 요놈이 조용히 할 일이지' 엄마에게 말하는 바람에 아내가 아이들 방으로 왔다.
아내는 날 보더니 “오빠, 설마….”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난 결심했다. 이 이불을 살리기로.” 아내는 “오빠 마음대로 해. 내가 다시 이불 버릴 거야!”라고 하며 방을 나갔다.
30분 후, 터졌던 부분은 말끔히 꿰매어졌고, 아내가 이불을 못 버리게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려 이불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소동을 겪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쉽게 포기하고 버리는 것들 속에 얼마나 많은 추억과 가치가 숨어있을까? 조금 낡았다고, 불편하다고 바로 버리는 게 과연 최선일까?
오늘 밤, 아들은 '부활한' 이불을 끌어안고 행복하게 잠들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의 추억과 사랑을 이렇게 한 땀 한 땀 꿰매며 살아갈 거다.
아내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난 모른 척했다. 아내가 또 쓸만한 걸 버릴지 모르니 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