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민지네는 방학 때 괌으로 여행 간대. 우리는 언제 해외여행 가?"
주말 아침, 딸아이의 투정 섞인 목소리에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 영상을 보던 아들도 고개를 들어 내 표정을 살폈다. 아내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부엌으로 발길을 돌렸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차를 새로 사자는 아내의 제안에 “대출이 아직 많이 남았잖아.”라고 말했을 때도 침묵만 남았다.
매일 아침 통근길, 막히는 도로 위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적성에 맞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아파트 한 채도 장만했다. 하지만 대출금은 좀처럼 줄지 않고, 두 아이의 학원비와 생활비를 쳇바퀴처럼 갚다 보면 달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친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요즘 예민해졌다. 방은 늘 어질러져 있고, 대화는 점점 줄어든다. 아들은 넘치는 에너지로 집안을 뛰어다니지만, 숙제 시간만 되면 온갖 핑계를 대며 도망간다.
주 2회 아내는 요가, 나는 헬스장에 간다. 각자의 방식으로 건강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몸은 여기 저기서 비명을 지른다. 무릎은 시큰거리고, 어깨는 결리고, 비염은 여전하다. 하지만 운동은 우리 부부의 작은 행복이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며 나누는 대화가 하루의 피로를 덜어준다.
얼마 전 아내가 말했다. “애들 방학 때 가족여행이라도 다녀오자.”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행은 무슨…. 대출이자도 제때 못 갚고 있는데.” 아내의 실망한 눈빛이 마음에 남는다. 가족들의 작은 표정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문득 깨달았다. ‘없는 것’만 헤아리다 보니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어제저녁 아들이 족발을 맛있게 먹는 모습. 엄마 몰래 용돈을 더 얹어 주니 좋아하며 웃는 딸. 피곤한 출근길에 아내가 건네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부족함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부족함이 반드시 불행은 아니다. 대출금 때문에 밤잠을 설치지만, 우리 가족만의 보금자리가 생겼다. 아이들 교육비가 부담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부족함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부족함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해외여행 대신 동네 등산을 하며, 새 차 대신 조금 불편한 중고차를 타고 우리는 더 소중한 것을 배우고 있다.
이제부터 일상의 부족함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려 한다. 단순한 결핍의 기록이 아닌, 우리 의 성장 이야기를 써내려가려 한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부족함은 당신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까?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