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취업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어?”
딸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TV에서 청년 실업과 ‘이태백(이십 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자신의 미래가 궁금했나 보다.
“글세…. 지금 대졸 초임이 연봉 3,000만 원 정도라던데.”
“그럼 한 달에 250만 원이구나. 근데 왜 민지 언니는 대학 가기 싫다고 하지?”
딸의 순수한 질문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스물넷에 첫 직장을 구했을 때는 월급으로도 자취방을 구하고 저축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50만 원은 훨씬 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250만 원으로 살아가기가 훨씬 더 버겁다.
얼마 전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서울의 30평대 아파트 가격이 1990년대에는 직장인 연봉의 8배 정도였는데, 지금은 20배가 넘는다고 했다. 그사이 월급은 고작 1.5배 정도 올랐을까?
퇴근길에 마주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을 보며 생각한다. 대부분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일 텐데, 저 시간에 편의점에서 일하고 나면 자기 공부는 언제 할까? 나도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요즘은 투잡, 쓰리잡을 뛰어도 겨우 방값을 맞추기 바쁘다고 한다.
며칠 전, 회사에서 후배가 털어놓은 고민이 떠오른다.
“전 결혼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빠듯한데, 결혼해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욕심은 접어 두려고요. 양육비에 생활비에 감당이 안될 것 같아요.”
그의 나이 서른여섯. 내가 그 나이였을 때는 이미 첫째가 태어났다. 물론 그때도 빠듯했지만, 열심히 일하면 미래가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전세로 시작해서 지금은 대출을 내서라도 내 집을 마련했으니까.
저녁 식탁에서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여보, 우리 애들은 어떡하지? 이러다 진짜 엄마 아빠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거 아닐까?”
“맞아. 요즘 뉴스 보면 N포 세대라며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고 하더라고.”
문득 지난 주말 딸의 친구 아빠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초등학생인데도 벌써 학원비가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두 아이 학원비만 매달 100만 원 가까이 든다. 맞벌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과열된 교육 경쟁 속에서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하니 아이들이 불쌍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요즘 청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현명하다. 무작정 저축만 하는 대신 재테크를 공부하고, 돈보다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소비도 더 스마트하다. 공유 경제를 잘 활용하고,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구매한다.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말을 우리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어쩌면 부족함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더 창의적이고 현명한 삶의 방식을 발견할 것이다.
오늘도 퇴근길에 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저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미래를 응원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 부족함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돈은 중요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네가 행복한 거야. 지금은 힘들어 보여도, 너희 세대만의 새로운 길이 반드시 있을 거야.”
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늦은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