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갈대가 나무가 되기까지
11월의 쌀쌀한 아침, 복도에서 계약직 동료 두 분과 마주쳤다. 지난 주말 시험을 치렀다고 했다. “시험은 잘 보셨어요?” 묻자 서로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정말 유능한 인재들인데. 쭉 같이 근무하면 좋으련만…. 12월은 계약 갱신을 하는 달로 피를 말리는 달이었다. 10년 전 내 모습이 생각났다.
2019년은 특히 힘든 해였다. 학술지 논문 게재와 회사의 큰 프로젝트가 겹쳤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주체의식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집사님이 건네준 ‘독서천재 홍대리’라는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런 책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반신반의하며 펼친 책장 속에서 나는 조금씩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얼굴들도 다 비슷한 처지였다. 각자 다른 회사, 다른 직종에서 일하지만,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의 성장을 갈구하는 표정이었다.
자기 계발서, 독서 관련 서적, 에세이들이 내 손을 거쳐 갔다. 처음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책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휴직 기간 동안 독서는 나를 치유했다. 복직 후, 이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고 싶었다. 때마침 사내 동아리 모집 공고를 보았다. 망설임 없이 독서동아리를 제안했다. 월 1회, 우리는 책 속에서 본 것, 깨달은 것, 실천할 것들을 나누었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라는 책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864페이지라는 두께에 처음엔 망설여졌지만, 역사 속에서 자폐가 어떻게 진단되고 이해되어 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빠져들었다.
원래는 역사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동료들과 함께여서 새로운 관점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혼자였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책이, 함께여서 완독의 기쁨이 되었다.
“선배님도 계약직이셨죠?” 어느 날 후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5년 정도. 지금도 가끔 그때 꿈을 꿔.” 사실 정규직이 된 지금도 여전히 성장을 위한 고민은 계속된다. 그러던 중 상사가 공저 책 출간을 제안했다.
예전 독서동아리에서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양성과 존중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책을 쓰면서 동료들을 새롭게 보게 됐다.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이 이제는 그들만의 개성으로 보였다. 업무 문서 작성도 한결 수월해졌다.
자투리 시간에도 책을 찾게 되었고, 업무 아이디어도 책에서 얻게 됐다. 아들은 내가 쓴 책을 담임 선생님께 자랑스럽게 선물했다고 한다.
혼자 워드 프로세서에 써 내려가던 글들은 지속되기 어려웠다. 피드백 없는 글쓰기는 외롭고 힘들었다. “오빠, 안 자?” 와이프가 아이들을 재우고 서재로 들어와 물었다.
“응, 브런치에 글 좀 쓰려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 피드백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책 출간 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내 글이, 마치 그때 ‘독서천재 홍대리’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노트북을 열어 ‘5화 결핍을 통해 발견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결핍과 마주하고, 그것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꾸어간다.
독서를 통해, 글쓰기를 통해, 서로와의 나눔을 통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또 다른 이름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결핍은 어떤 가능성으로 피어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