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속도로 살아가기
며칠 전 회사에서 ‘디지털 드로잉’ 연수가 있었다. 나름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룬다고 자부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강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자꾸 버퍼링이 걸렸다. 결국 옆자리 후배에게 수시로 물어가며 겨우 따라갔다.
연수를 마치고 나오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과 눈이 마주쳤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 세대의 더딘 손놀림과 낯선 용어들 앞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눈빛으로 공유했다.
한국직무능력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40대 직장인의 82%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불안을 경험한다고 한다. 새로운 업무 툴 적응에 20대는 평균 2주면 충분하지만, 40대는 6주나 걸린다고 한다. 이런 통계를 보니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서글퍼진다.
“오빠, 나 오늘 요가 예약했어. 나 없을 때 애들 숙제 봐주고 영상은 약속한 시간만 볼 수 있도록 해 줘.” 주 2회, 아내의 퇴근 후 요가 시간이면 아이들 숙제 검사와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 체크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아이들의 온라인 클래스 접속부터 유튜브 시청 시간 관리까지, 이것도 일종의 디지털 숙제다. 연수실에서 느낀 낯섦이 집에서도 이어진다.
요즘은 야근도 잦다. 성과 보고서에 디지털 전환까지 겹치면서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 다행히 아내가 아이들 돌봄을 전담해 주어 늦은 시간까지 일할 수 있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피로가 쌓일수록 업무 속도는 더뎌지고, 더뎌질수록 야근은 늘어난다. 악순환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 또 한 번의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아내가 물었다. “오빠, 내일 뭐 할까? 일주일 내내 열심히 달렸잖아.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아님 야외 나들이?” 머릿속에서는 이번 달 카드값과 생활비가 계산되기 시작했다. 주말의 여유로운 외식 한 번이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다.
아이들을 재운 뒤, 침대에 앉아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아내도 알고 있었다. 우리 가정의 팍팍한 현실을. “그래도 가끔은 숨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이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데.” 돈은 늘 부족하지만 우리의 체력과 시간은 더 빠르게 바닥나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임플란트한 어금니가 욱신거렸다. 꼭 이렇게 무리하고 피곤할 때면 몸이 반응한다. 예전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 체력이 걱정된다.
매슬로우는 결핍이 채워지지 않을 때 불안이 찾아온다고 했다. 디지털 역량의 부족, 시간의 부족, 체력의 부족.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회사의 선배는 디지털 드로잉을 배우며 힘들어하다가, 오히려 그 경험을 살려 ‘디지털 원격 연수’를 수강 신청했다. 자신의 결핍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맞서기로 했다.
아내는 요가를 통해, 선배는 원격 연수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결핍과 마주한다. 뻐근한 어금니를 달래며 글을 쓴다. 다음 주의 디지털 드로잉 연습도, 성과 보고서도 걱정되지만, 지금은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한다.
불안을 인정하고, 나누고, 함께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우리 세대가 마주한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