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인생의 최고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에게 있어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이런 질문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답에 따른 행동을 끈질기게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이구, 그러면 그렇지. 네가.'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늘 이렇게 자책했다.
그런데 세 문장을 쓰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인간이지.' 자책에서 허용으로 변했다. 완벽할 수 없는 피조물이니까.
요즘 주일 설교 말씀을 꼼꼼히 적어가며 듣는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 11시. 뇌의 상태는 최고 컨디션이다. 토요일에 여가생활을 즐기고, 일요일 아침엔 출근 걱정 없이 늦잠을 잔다. 아침 식사도 허겁지겁 먹지 않고 나를 위해 챙긴다. 몸과 마음이 최고 상태니 뇌의 컨디션도 최고다.
그런데 왜 예배 시간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는데, 갑자기 회사 업무가 떠오른다. '아, 그거 월요일에 처리해야 하는데...' 다시 집중하려 하면 이번엔 글쓰기 소재들이 스쳐간다. 심지어 내일 아침 식사 메뉴까지 고민이 된다.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말씀에는 집중이 안 된다.
'이게 정상인가? 나만 이런가?'
그래서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말씀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둘째,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다.
말씀이 다시 한번 삶에 녹아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을 다시 풀어 글로 쓰며 조금 더 실천에 옮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말씀이 나에게 등불이 되었듯, 누군가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씨를 뿌리고,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지난주 설교 말씀은 '용서'에 관한 것이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정한 용서는 타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나는 K를 용서하고 있을까? 용서를 한다고 다짐했거늘 K를 보면 옛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용서' 다짐만으론 부족하다. 내 힘만으로 부족하다.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긴 한 걸까?
그러면서 나의 삶의 중요한 가치가 다시금 수면으로 떠올랐다.
잘 살고 있나?
무엇을 향해 가고 있나?
오늘 나는 말씀을 거울삼아 잘 살았나?
혹시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겸손하지 못하고 나의 의가 너무 드러났나?
구체적인 반성이 시작됐다.
어제 회의에서 동료의 의견을 너무 쉽게 반박했다. 그때 나는 정말 회사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더 똑똑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삶의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나의 이야기로 표현한다.
'나의 삶이 이 세상에서 얼마 남지 않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왔다 간 것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이것이 나의 삶의 목적에 대한 답이겠거니 생각한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세상 즐거웠습니다. 좋은 환경 주시고 좋은 사람 만나게 하시며 좋은 것들을 누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 곁으로 가오니 절 받아주세요.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과 말씀처럼 살려고 노력했지만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셨기에 제가 그나마 방탕한 길로 빠지지 않고 옳은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매우 부족했지만 감사했습니다. 부디 저희 모습을 통해 주님의 모습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다. 언제 어떻게 이 세상을 마감할지 모른다.
그러니 나에게 주어진 인생, 감사하며 살아보아야겠다.
내 것만 주장하지 말고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하지 말고
겸손하게 이웃을 돌아보며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완벽한 신앙인이 되려 하지 말자.
대신 조금씩,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신앙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