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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복잡함

by 어니스트 정

예배 시작 30분 전, 조용한 예배당에 앉아 있을 때였다. 부목사님이 내 옆자리에 앉으며 던진 질문이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집사님, 제가 왜 집사님 옆자리에 앉았을까요?"


나는 그 순간 당황했다. 머리를 빠르게 굴려봐도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눈치가 없으시네요"라며 웃던 부목사님의 표정에는 무언가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 보조교사를 부탁하신다는 말씀과 함께, "3주 동안 기도하면서 집사님이 많이 기억났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 단순한 부탁이 아님을 직감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창한 환상이나 극적인 사건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평범한 일요일 아침, 옆자리에 앉은 동역자를 통해 조용히 다가온다. 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수련회는 교회에서 먼 타 지역에서 열리는 것이라 손이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즉시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신호 주세요. 주님이 원하는 일인지 저에게 알려주시면 헌신하겠습니다."


얼마나 단순하고 직접적인 기도였던가.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도 복잡한 조건들을 내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저 솔직했다. 확신이 필요했고, 그래서 확신을 구했다.


주님의 응답은 너무나 즉각적이었다. 바로 그날 낮 예배에서 목사님은 로마서 12장 1절을 본문으로 '성령의 역사'에 대해 설교하셨다. 성령 충만을 받는 세 가지 방법 - 순종, 신뢰, 헌신. 이보다 더 명확한 신호가 있을까? 나는 그 자리에서 결단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순간부터 예상치 못한 장벽이 나타났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딸에게 수련회 일을 말했을 때, 딸의 반응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길길이 날뛰며 내가 수련회를 따라가면 자신은 절대 수련회에 가지 않겠다고 화를 냈다.


그 순간 나는 당황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 같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춘기 때문일까? 누군가의 방해 공작일까? 아니면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본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던 걸까?


이런 혼란스러운 순간에 우리는 자주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었던 걸까? 내가 착각했던 건 아닐까? 순종하려는 마음이 진짜였을까, 아니면 내 욕심이었을까?


나는 응답받고 순종하려고 했지만, 딸의 의견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순종하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순종의 길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실까? 가족을 무시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가족의 의견을 존중하여 포기하는 것이 지혜로울까?


순종은 때로 이렇게 복잡하다. 단순히 "예" 또는 "아니요"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딸은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부목사님께서 딸과 상담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수련회를 앞두고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이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항상 즉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순종의 과정에서도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가족 관계 안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을 믿는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행동과 언행이 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내가 보여준 신앙의 모습이 딸에게는 어떻게 비쳤을까?


때로는 우리의 열심과 헌신이 가족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가족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과제가 아닐까?


지금도 나는 기도하고 있다. 주님께서 딸의 마음을 돌리시어 보조교사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수련회를 가서 돌아오는 그날까지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관하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더 나은 아버지가,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순종은 완벽한 이해나 완전한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순종이다. 그리고 그 걸음걸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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