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극 좁히기
6월 7일, 하루 더 지나고 나서야 우리 집에 조용한 화해가 찾아왔다.
저녁 즈음 아내가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직접 말할 준비는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내는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아들에게 "아빠가 운동을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라고 시켰다. 나는 아내에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함을 느꼈다. 화해의 준비가 완전히 되지 않았음을 서로 알고 있었다.
나는 밖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와 다시 거실 소파에서 잤다. 모두들 자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거실에 자고 있는 나를 아내가 깨우며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조금 화가 누그러짐을 느꼈다. 6시쯤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1박 2일간 있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화해를 했다. 대화를 나누며 깨달은 것은 이것이 '답 없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어리석음도 아니었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는 내용도 아니었다.
나는 가정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현실을 걱정했고, 아내는 스트레스 해소와 가족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사춘기 딸은 가족 여행보다 자신만의 시간을 원했다. 제각기 이유가 있었다.
오늘 묵상 말씀은 레위기 3장 1절에서 7절, '화목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 양, 염소로 화목제를 드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소를 드리는 화목제에서 '소의 다양한 장기를 떼어낸다'는 의미는 하나님께 속임이나 가식이 없어야 함을 말한다고 해설되어 있었다.
적용 편에는 "하나님과 이웃 간에 화목하며 살아가십니까?"라고 묻고 있었다. 꼭 이 말이 "가정이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내와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 들렸다.
화목제에서 장기를 떼어내는 것이 속임이나 가식이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니, 참 깊은 뜻이다. 진정한 화목은 겉으로만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진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어제까지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 애썼다. 억지로 이해하는 척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오늘 아내와 나눈 대화에서도 서로 자신의 진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것이 바로 화목제의 정신이 아닐까.
이해와 존중, 공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삶에서 이해, 존중, 공감을 녹여놔야 하는데, 내 힘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삶에서 부딪치는 직관적인 문제들이 장벽을 만든다.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현실, 사춘기 자녀의 특성, 각자의 필요와 우선순위. 이 모든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어느 하나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킬 수도 없는 상황들.
그래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 같다. 화목제가 단순한 제사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상징하듯, 우리 가정의 화목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영역이다.
어제의 감정 조절, 오늘의 화해. 모든 것이 "주님 도와주세요"라는 기도로 시작되었다. 내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고 계신다.
오늘도 나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힘을 빌려 살아가야겠다. 화목제처럼 속임이나 가식 없이, 솔직하되 사랑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되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말이다.
완전한 화목은 아닐지라도,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시는 은혜인 것 같다. 어제의 갈등이 오늘의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지듯, 앞으로도 매 순간 하나님께 의지하며 진정한 화목을 이루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