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술 그리고 방사선

2-8.

by 생각책가방


한강라면


전원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러 가던 날, 병원까지 제부의 차로 이동하였다.


입원 예정 시간보다 일찍 출발해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

한강을 지나갈 때쯤, 제부가 아버님 한강라면 좋아하실 것 같다고, 한강에 들렀다 가면 어떨지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하던 아빠는 당연히 한강라면을 궁금해했다.


병원에 가는 길이라 스트레스와 긴장이 가득했는데,

한강을 바라보고 가면 아빠 마음에 잠시라도 쉼이 생길 것 같아 함께 가보기로 했다.


평소 아빠는 대부분의 음식을 맛있다고 하셨다.

조금만 입맛에 맞아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다.”며 감탄하였다.


한강라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이라고 하며 나에게도 계속 권하였다.

라면 기계도, 라면 그릇도 신기해하셨다.


라면을 다 먹은 후, 카페에 들러서 차를 마셨다.

잔잔한 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다음에 또 오자고 하며 출발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것이었지만,

한강에 들러서 라면을 먹고 바람도 쐰 아빠의 표정은 좋아 보였다.


“아빠, 나중에 또 오자. 그때는 오래 있자.”


아빠랑 나란히 앉아 한강을 보았던 마지막 기억.






2022년

3월 중순

전원한 병원에 입원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다.


어떤 검사는 아빠가 많이 고통스러워하였다.


CT 검사 전, 조영제를 주입하기 위해 정맥에 바늘을 꽂는 것과 채혈도 아빠에게는 고역이었다.

항암으로 인해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서 바늘을 여러 번 찌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혈액이 응고돼서 잘 안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병을 알기 위한 검사가 환자를 더 괴롭게 했다.


일주일간 입원 후 퇴원하였다.



3월 말, 수술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 후, 수술을 받기 위해 다시 입원하였다.

오른쪽 신장과 요관을 절제하는 수술이었다.


인공방광 수술을 한 지 약 1년 반이 지나 받는 두 번째 개복 수술이었다.


보호자는 병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여러 위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긴장하며 기다렸다.


몇 시간 후, 수술이 종료되고 중증 회복실로 이동 예정이라는 병원의 문자를 받았다.


이후 주치의가 와서 수술이 잘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다만 아빠는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서 중증 회복실에 있을 거라고 하였다.


나중에 병실로 올라온 아빠는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였지만,

공 흡입기를 통한 호흡과 심호흡, 걷기를 천천히 시도하며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4월 말

퇴원 후 보름이 더 지나고 조직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신우요관암 3기

.

.

.


라고 했다.


1기이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암은 언제부터 또 자라고 있던 걸까.


2기 이상이면 예후가 좋지 않다고 했는데... 하...


그래도...

그래도...


아빠는 또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7월~8월, 방사선 치료

복부 CT 검사 결과, 오른쪽 신장을 떼어낸 자리에 암세포가 있어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전에 부작용이 많아 힘들어했던 아빠는 방사선 치료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른 부위에 받는 거라 전처럼 심한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 거라고, 방사선종양학과 의사가 말했다.


더운 여름 내내, 아빠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오가야 했다.


8월 중순

일주일에 5번, 28회로 계획되어 있던 방사선 치료가 드디어 끝났다.



10월

뼈 검사와 CT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하였다.


‘와!’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는 줄 알았던 11월 초, 아빠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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