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설마... 또 재발한 건가?'
두려움과 무력감이 우리를 짓눌렀다.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통증은 계속되어서 진료 때 이야기하니 마취통증의학과로 연결해 주었다.
2023년 1월이었다.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신경차단술도 받았다.
며칠은 효과가 있었지만, 아빠는 또다시 아프다고 하였다.
통증의 원인을 알 수 없어서 힘들었던 겨울.
복지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배우면 통증으로부터 아빠의 시선이 분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가 재미있어 할 것 같은 캘리그라피와 바둑을 신청하고 수업에 필요한 재료를 사두었다.
주민센터에서 노래 교실도 신청하였다.
아빠가 제일 즐거워한 수업은 노래 교실이었다.
노래 교실을 다녀오면 수강생분들에게 박수받았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였다.
캘리그라피 수업을 다녀온 날에는 화선지에 배운 글씨를 연습하였다.
그렇게 아빠가 계속해서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2023년 3월
통증이 늘어갔다. 또다시 검사가 잡혔다.
주치의 선생님은 재발하지 않았을 거라고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예감이 틀리기를 바랐다.
3월 말
PET CT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암이 뼈, 림프절, 장간막까지 전이되었다고 했다.
옆에서 함께 듣던 아빠의 절망이 느껴졌다.
암은 또 숨어 있었나 보다. 도대체 어디에 있던 걸까...
현재 상황에서 항암을 할 수 있을진 알 수 없으나 종양내과 선생님을 만나보라고 하셨다.
며칠 뒤로 종양내과 첫 진료가 잡혔다.
4월
'항암이 어렵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통증은 뭐로 견뎌야 하는 거지?'
진료일이 오기까지 한숨과 걱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주치의가 될 분이 지혜롭고 선한 분이기를 바랐다.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이전에 통합 진료를 받던 날 보았었다.
2022년 4월 통합 진료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비뇨의학과 의사가 함께 있었다.
신장 전 절제 수술 후, 신우요관암 3기로 진단된 아빠의 항암과 방사선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그때 상황으로는 항암이 의미 없다고 종양내과 의사가 말했었다.
옆 모습만 보았었는데 차갑게 느껴졌던 기억이 나서 걱정되었다.
종양내과 진료 당일.
아빠의 이름이 모니터에 떴다.
“똑똑”
조심스레 진료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차갑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놓였다.
‘딱딱. 딱딱’
이후 아빠의 병력을 확인하기 위해 모니터 속 페이지를 넘기는 마우스 소리가 들렸다.
‘항암을 할 수 있을까?’
초조하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2019년도에 항암 시작했었네요?”
의사가 물었다.
“네. 전이된 상태였는데 항암하고 암이 거의 사라졌었어요.”
대답을 들은 의사가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적이었네요.”
“네. 그렇죠.”
아빠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세포독성항암제인 카보플라틴과 젬시타빈으로 시작한다고 하였다.
항암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겨서 항암을 받을 것인지' 의사가 물어보았다.
우리는 여기서 받을 거라고 하였다.
“여기서 저랑 시작하면, 중간에 힘들더라도 끝까지 가는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끝까지 가자.'는 말이 아빠에게 기회가 더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 여정에 의사도 함께한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느껴서였던 걸까. 위로가 되었다.
진료실을 나온 아빠는 자신감 있는 의사를 만나서 좋다고 하셨다.
아빠의 즐거움이었던 노래 교실은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