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와 병원 화장실

2-11.

by 생각책가방



“엄마 암은 이 항암제를 맞아야 해.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면...”


암병동 대기실.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대기실 의자에서 아빠와 함께 기다리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은 모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대기실이 조용해서 내용도 들렸다.

대부분 딸이 엄마에게 말했고, 어머님은 듣고 계셨다.


아마도 어머님이 그날 첫 항암을 시작하는 듯했다.

그와 관련해서 딸이 엄마에게 내용을 알려주고,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딸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고, 설명은 논리적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흔들리지 않고 하나하나 담담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따님이 강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차례가 되어 아빠가 항암 주사실로 들어간 후, 나는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장실 칸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 화장실에서는 종종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나도 화장실에서 울 때가 많았다.

병원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니까.


‘에효... 어떤 일이 있으셨을까...’


잠시 후 울고 있던 분이 안에서 나왔다.

좀 전에 대기실에서 엄마에게 씩씩하게 말하던 따님이었다.

나는 놀랐고, 그분이 혼자 있고 싶어 할 것 같아 얼른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로 나가자,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엄마 앞에서 괜찮은 척했던 거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처음 말기암 진단을 받았던 날을 제외하고는 나도 아빠 앞에서 운 적이 없었다.

평소엔 눈물이 많았지만, 아빠에게 검사 결과나 병과 관련된 무언가를 설명할 때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항암 종류가 바뀔 때,

진료 시간에 나빠진 검사 결과를 들었지만 아빠가 이해하지 못했을 때,

또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이되었다는 결과를 들었을 때,

완화의료학과로 가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라고 했을 때,

항암을 쉬어야 할 때,

항암을 그만두어야 할 때,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는 아빠에게 대답해야 할 때...


병원에 있으면 아빠에게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보호자인 내가 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문장이 뱅뱅 돌고 이 단어, 저 단어가 앞뒤로 왔다갔다거렸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정보를 알려주듯이 말하려고 노력했다.

암담했지만, 내가 울어 버리면 아빠가 상황을 최악으로 받아들이고 포기할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땐 시선을 바닥에 두고 설명하다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며 일어섰다.

그곳에서 울고 심호흡을 한 후 눈물을 닦고 다시 아빠에게로 갔다.




그런 내 모습이 떠오르니, 따님이 엄마에게 어떤 마음으로 설명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다 첫 항암이면 암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테니 엄마도 딸도 받아들이기 버거웠으리라.

울지 않으려고 버티며 엄마에게 말했을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위로가 될지 오지랖이 될지 알 수 없어서 돌아섰다.

그저 어머님께서 완치되시길 마음으로 바랄 수밖에.


그 후로 따님과 어머님을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우리와 항암 시간이 겹치지 않았던 것 같다.


보호자로서 아빠에게 힘든 이야기를 전해야 할 때면 가끔씩 그 따님이 생각나곤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금도 왜인지 종종 그때가 생각난다.


언젠가 나누었던 아빠와 나의 대화도 누군가에게 눈물이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저랑 끝까지 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