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매일 보는 방안 서랍 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서류들이 담긴 보관함.
보관함 안에는 병원에서 받았던 진료 후 안내문, 항암치료 안내문,
검사 일정 안내문, 진단서, 소견서, 검사 결과지 등이 들어있다.
잔뜩 얽혀있는 종이를 걷어내니 작은 노트들이 줄지어있다.
노트의 앞표지를 보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빠의 시간이 담긴,
공책.
복용하는 약이 많아지면서 기록할 노트가 필요했다.
A5 정도 되는 크기의 노트를 사서
왼쪽에는 시간을, 가운데는 약을 쓸 수 있는 칸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아빠가 식사와 간식, 물양, 체온과 혈압을 기록하는 칸도 추가하였다.
매일 저녁.
다음 날 먹어야 할 약과 시간을 적었다.
지속형 진통제와 항응고제 등 매일 먹어야 하는 약과 영양제가 있었다.
식후에 먹어야 하는 약, 식전에 먹어야 하는 약이 있었고,
시간 간격을 두고 먹어야 하는 약도 있었다.
노트를 작성하지 않으면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잠들기 전.
약 복용 시간을 잊지 않도록,
아빠는 노트를 보며 다음 날 알람을 미리 맞춰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는 노트를 확인하며 약을 드셨다.
알람을 맞춰놓아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복용한 약은 형광펜으로 표시하였다.
지속형 진통제를 먹어도 중간중간 통증(돌발성 통증)이 있었다.
그럴 때는 속효성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속효성 진통제는 통증이 있을 때 먹는 약이어서, 복용 후 아빠가 적어놓았다.
나는 형광펜으로 표시된 것을 보며 중간중간 아빠가 놓친 약이 있는지 확인하였고,
아빠에게 증상(변비, 설사, 구토 등)이 생기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챙겨주고 노트에 기록하였다.
매일 노트를 보면서 아빠가 통증약을 하루에 얼마나 먹는지 체크하고 메모해 두었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거나 심해질 경우, 다음 진료 때 의사에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노트를 작성하고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노트는 보통 두 달 분량이었다.
아빠는 앞표지에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한 날짜와 완료일을 썼다.
앞표지마다 적힌 아빠의 글씨를 바라보며 노트를 세어본다.
하나, 둘, 셋...
총 열한 권이다.
하나씩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아빠의 상태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날짜가 흐를수록 약이 늘어났고, 진통제의 용량이 올라갔다.
노트에서 아빠의 고통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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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권째 노트
시작: 2024. 8. 22
완료: 2024.10.24
열한 권째 노트
시작 : 2024.10.25.
완료:
열한 권째 노트에는 완료일이 쓰여있지 않다.
열한 권째 노트를 다 쓰기 전, 아빠는 눈을 감았다.
아빠의 글씨가 아빠를 닮았다.
아빠의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아빠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