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식적 항암치료인가요?

2-12.

by 생각책가방




항암 교육 시간.

1차 항암(카보플라틴, 젬시타빈)의 주기(사이클)가 3~4주라는 설명을 들었다.


1회(1사이클) 일정

-1주 카보플라틴(1시간 투여), 젬시타빈(30분 투여)

-2주 젬시타빈(30분 투여)

-3주 휴식


2회(2사이클) 일정

-1주 카보플라틴, 젬시타빈

-2주 젬시타빈

-3주 휴식

.

.


이런 주기로 반복될 거라고 하였다.



항암 후에 여러 부작용이 있었다.


1회 항암 후.

가슴 통증과 혈뇨, 설사, 목이 쉬고 손에 쥐가 나는 증상이 생겼다.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서 수혈을 받기도 했다.


예정된 2회 항암일에는 호중구 수치가 낮아져 항암을 받지 못했다.

항암일은 며칠 뒤로 미뤄졌다.



2회 항암 후.

체함, 오심, 구토 증상이 생기고 설사가 심해졌다.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고 수액을 맞았다.



2023년 5월.

항암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CT와 뼈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나빠지지 않았다.


이후 3회, 4회 항암이 이어졌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손발 저림이 심해지고 부작용이 더해갔다. 체력도 많이 약해졌다.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는 날이 잦아지면서 알아야 할 것도 많아졌다.


암에 대해 더 공부하기 위해 ‘아빠를 위하여’(위암이셨던 아빠와 따님의 이야기가 담긴 정보만화)라는 책을 주문하였다.


책을 받은 후 몇 페이지를 읽다가, 울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작가인 따님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울었을지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고, 아빠가 겪은 일들이 떠올라 슬펐다.

‘아빠의 암도 이렇게 진행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섭기도 했다. 미리 알게 될 내용이 두려웠다.


그래도 보호자로서 미지의 세계를 알아둬야 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조금씩 읽어 나가던 중, 항암화학요법이 나오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고식적 항암화학요법

《아빠를 위하여》 글. 그림 석동연, 감수: 김선영 교수(서울아산병원)

진행성, 4기 이상 전이암 대상으로 수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암 진행을 늦추고 증상완화를 목적으로 할 때.



‘아빠도 고식적 항암치료인 건가? 낫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통증을 줄이기 위한 치료라는 건가?'


더 알아보니 고식적 항암치료는 완치가 아니라 증상 완화를 위한 치료라고 하였다.

아빠를 간호하며 여러 가지를 공부했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아빠가 받는 항암의 기대효과, 현재 상황에서 보호자인 내가 알아야 하는 것 등 궁금한 내용이 쌓여갔다.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언제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2023년 6월 말.

4회차 항암을 받기 전, 진료를 받았다.

진료실을 나온 후, 아빠가 앉아 있을 빈 의자를 찾았다.

진료실이 보이지 않는 방향이었다.


“아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나 진료실 앞으로 가서 안내 듣고 수납하고 올게.”

진료 후에 항상 반복되는 순서라 아빠는 알았다고 하였다.


나는 진료실 앞으로 가서 다음 일정과 안내를 들은 후, 간호사에게 보호자 면담을 신청했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긴장된 마음을 품고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저희 아빠가 받는 항암이 고식적 항암치료인가요?"


“네.”


"그러니까... 암을 없애는 게 목표가 아니고, 통증 완화가 목표라는 뜻인 거죠?


“네.”


...


...


예상한 답변이었지만 막상 들으니 힘겨웠다. 심호흡을 한 후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낫지 못한다면... 항암을 더 못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완화의료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항암을 못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완화의료를 생각해 두어야 한다고 했다.

많이 심각한 상태이며, 현재 상황에서 평균 여명은 6개월이라고 하였다.


“6개월이요?”


비뇨의학과에서 뼈와 림프절, 장간막까지 전이되었다는 검사 결과를 들었을 때는,

항암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종양내과 첫 진료일에 항암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쁜 결과는 어느새 의식 아래로 내려갔다.

2019년 처음 항암을 받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암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으며 지냈다.


6개월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아빠가 돌아가시게 될 거라는 사실이 의식 위로 올라오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만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여러 일을 겪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후 아빠는 1년 반여를 더 우리 곁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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