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임상에 참여하지 않을게요.

2-13.

by 생각책가방



2023년 7월 무더운 여름.

고요한 새벽, 방 안.

아빠의 다음 항암을 공부하기 위해 자료를 들여다본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잘못된 결정을 할까 봐 무섭다.



1차 항암을 4회 마친 후, 의사는 우리에게 다음 항암을 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CT와 뼈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고, 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제가 달라진다고 했다.


검사 결과 나빠졌을 경우‘키트루다’,


검사 결과가 괜찮을 경우(나빠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1. 기존에 맞던 항암제인 카보플라틴젬시타빈 2회 더 진행

2. 면역항암제인 바벤시오(성분명: 아벨루맙/ 비급여) 맞기

3. (아벨루맙이 포함된) 임상에 참여


이 중 하나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다음 항암치료 단계를 알아보았다.

키트루다바벤시오에 관한 정보도 찾아보았다.


임상에 관한 자료는 좀 더 꼼꼼히 살펴보았다.

병원에서 받은 책자임상 시험 설명문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내용을 정리했다.


공부한 내용을 아빠에게 알려주었다.

아빠는 검사 결과가 괜찮게 나온다면, 임상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비급여인 면역항암제(바벤시오)는 우리 형편에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넉넉한 형편이 아닌 딸이어서 아빠에게 많이 미안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

‘바벤시오’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다는 뉴스 기사를 보았다.

임상에 참여해야 할지 다시 고민되었다.


CT와 뼈 스캔 검사 결과가 나오는 진료일이 되었다.


“암이 많이 줄어들었네요. 뼈전이도 줄고, 좋아졌어요.”


감사한 결과였다.

기쁜 마음도 잠시, 바로 다음 항암이 걱정되었다.


이제 '바벤시오'에 급여가 적용되는데,

그래도 임상에 참여하는 것이 좋은지 어떨지 모르겠다고 의사에게 물었다.


임상 항암을 받게 되면 병원에 자주 오가야 하므로,

아빠의 체력이 된다면 참여하는 것을 권하고, 그렇지 않다면 '바벤시오'를 바로 맞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아직 임상 선정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임상에 참여하면, 병원의 지원과 임상연구간호사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벨루맙과 추가로 투여되는 약제가 있는 그룹에 배정된다면,

아벨루맙만 단독으로 맞는 것보다 효과가 더 좋을 수 있다고 했다(그만큼 부작용도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무작위배정이라 어떤 그룹에 들어갈지 알 수 없고, 선정된다고 하더라도 스크리닝 기간(임상에 적합한 건강 상태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걸치면 항암이 한 달이나 미뤄지게 된다. 병원에 자주 가야 하고, 여러 번 검사도 받아야 했다.


아빠, 엄마, 동생과 의논했지만, 모두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워했다.


결국 결정은 주 보호자인 내가 해야 했다.

아빠의 병력과 상태, 항암제와 임상과 관련된 정보를 제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부작용이 클 수 있지만 효과가 좋을 수 있으니, 임상에 도전해야 할까?

급여가 됐으니 얼른 바벤시오를 시작하는 게 좋을까?'


며칠에 걸쳐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암환우분들이 많이 가입한 카페 글을 검색해 보았다.

긍정적인 내용도 있었고, 부작용 때문에 힘들다는 글도 있었다.


결론 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결정의 짐이 너무 무거웠다.


그즈음 아빠의 체력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임상에 참여하면 검사를 자주 받아야 하고 매주 병원에 오가야 하는데, 현재 상태로는 무리라고 판단되었다.


임상에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지만, 염려는 계속되었다.


'잘못 선택한 거면 어떡하지?’


며칠 후, 연구간호사에게 임상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의 체력이 나빠져서 임상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뜻을 전했다. 간호사는 일단 임상 미참여라고 입력해 두겠으나, 며칠 후 진료이니 더 고민해 보고 진료일에 알려달라고 하였다.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으니 또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임상에 참여해야 하는 건가? 하...’


숙고의 날이 지나고 종양내과 진료일이 되었다.


'똑똑'

여느 때처럼 진료실 문을 살짝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

.

.


“교수님, 저희 임상 안 하고 바벤시오로 들어갈게요.”



2023년 8월.

1차 항암 유지요법 ‘바벤시오’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아빠가 항암을 맞던 날들이 종종 떠오른다.


‘만약 임상에 참여했다면, 아빠에게 효과가 있었을까?

어쩌면... 아빠에게 임상 약이 딱 맞아서 암이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았을까?

좋은 기회를 놓친 건 아닐까?’


‘어쩌면...’

‘어쩌면...’


아니, 임상에 참여했다면 부작용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때 아빠의 체력으로는 무리여서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만약에...’

‘만약에...’


아무리 '어쩌면, 만약에'를 가정하며 돌이켜봐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잘못된 판단을 한 건 아니었는지 곱씹고 또 곱씹게 된다.


아빠가 나를 탓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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