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
아빠가 없는 안방.
아빠가 없는 우리 가족.
아빠가 없는 일상.
아빠의 암은 1기에서 급작스레 말기로 악화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항암과 방사선, 수술, 패혈성쇼크, 중환자실, 재발, 수술, 전이 등 여러 과정을 겪었다. 하나하나의 과정 안에 긴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 이야기는 고통이었고, 아빠는 자신의 이야기를 감수했다.
삶을 향한 의지가 컸던 아빠에게도 결국 완화의료센터(호스피스) 소견서가 주어졌다. 응급실을 통해 2차 병원으로 먼저 입원하게 되었다. 급속히 나빠졌다. 섬망이 심한 상태였던지라 엄마와 내가 같이 있기도 하고, 교대하기도 했다.
이후 완화의료센터로 옮겨 생애 마지막 12일을 함께 보냈다. 의사가 안타까워할 정도로 아빠는 고통의 감각이 살아있었고 괴로워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잊어갔다. 작년 12월, 아빠의 호흡이 멈췄다. 매일 아빠 상태를 살피고 기록하고 간병하던 엄마와 나의 일상도 멈췄다. 아빠의 나이 만 70세였다.
우리는 깊은 혼돈과 슬픔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매시간을 눈물로 보냈지만, 서로를 위해 엄마도 나도 각자의 방에서 침묵으로 울어야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면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괴롭고 그리웠다. 삶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겪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눌 수가 없었다. 슬픔의 깊이를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도대체 이 힘든 시간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사별, 애도와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 보았다. 글을 쓰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시작하려고 했지만 ‘아빠가 보고 싶다’는 문장 외에는 써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5월 말쯤 도서관 사이트에서 글쓰기 프로그램 공지가 올라왔다. 글을 쓸 수 있을지 두려워 망설였지만, 용기 내어 신청 버튼을 클릭하였다.
일인일저 시민작가 프로그램으로 문집이 발간된다고 하였다. 그 안에 아빠와 보냈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쓸 수 없었다. 문장을 쓰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와 글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와 보냈던 이야기'에서 '아빠를 보내고 지금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주제를 바꾸었다. 그 역시 녹록지 않았다. 울고 멈추다가 시작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결국 글을 마칠 수 있게 되었고, 눈물을 안고 버텨낼 수 있는 힘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 힘을 받아, '아빠와 함께했던 날들'과 '아빠를 보낸 후의 나날'을 이곳에 담으려고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르겠지만, 아빠의 미소와 노래, 좋아하던 음식, 같이 걷던 일상을 떠올리면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아빠의 하루가 나의 하루였고, 아빠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슬픔을 흘려보내기 위해 시작한 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로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