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입니다.

2-1.

by 생각책가방


벌컥 방문이 열린다.


"왜에?”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아빠를 향해 퉁명스럽게 말한다.


아빠는 아무 때나 방문을 열었다.

딸 방이니 노크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때뿐. 다음 날이 되면 또 잊어버렸다.


아빠가 나에게 오는 대부분의 이유는, 궁금한 것이 있거나 할 일을 주기 위해서였다.


‘인쇄해 달라, 문서로 작성해 달라, 핸드폰 문자가 잘 안 적힌다,

여기 있는 메모 앱 내용을 저기로 옮겨달라, TV에서 나온 어떤 것을 찾아달라’는 등의 소소한 일이었다.

대부분 피곤한 상태였던 나는,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 아빠의 요청은, 소변에 가끔 피가 섞여 나오는데 원인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뭐라고 하는지 물었더니, 염증이라 약을 처방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영 낫질 않으니 더 알아보고 싶다고 하였다.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아빠의 말을 흘려들었다. 병원에서 검사했고 약을 드시고 있으니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성격이 급해서, 낫는 과정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왜 그렇게 나는 무심했을까...'


깊은 후회로 떠오르는 어떤 날의 기억.



2016년.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던 아빠는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받았다. 방광암 1기였다.


아빠의 암은 재발이 잦아서, 경요도 절제술(방광경을 통해 암과 주변 조직을 긁어내는 수술)과 검사를 반복했다. 매번 마음을 졸이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재발했다는 결과는 여러 번 들어도 힘들었다. 그래도 악화되지 않음을 다행이라 여기며, 다음 검사 결과는 호전되었다는 소식이기를 또다시 바랐다.


그런 바람이 닿기라도 한 것처럼,

2019년 1월.

검사 결과, 0기에 가까워졌다고 했다.

곧 완치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2019년 6월.

통증과 함께 아빠는 갑자기 많은 양의 혈뇨와 핏덩어리를 쏟았다.

검사를 받고 초조하게 결과 날짜를 기다렸다. 날마다 두려워하며 보냈다.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결과가 나오던 날.

병원에 아빠만 가겠다고 했다. 수술받고 입원했을 때는 엄마가 간병했지만, 진료는 대부분 아빠 혼자 다녔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혼자 갈 거라고 하셨다. 안 좋은 증상이라 걱정되니 엄마와 나는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아빠의 언성이 높아졌다. 결국 홀로 병원으로 가셨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오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0기에서 몇 달 만에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나빠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진료실에 함께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상사에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반차를 낸 후,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과 앞에 앉아 있는 아빠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를 보며 왜 왔냐고 짜증을 냈다. 딸이 온 것이 곧 병의 악화를 뜻하는 것이라 여겨져 두려우셨던 것 같다. 나는 의사를 만나고 싶어서 온 것이라 말했다.


곧 아빠의 이름이 불리었다.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무서웠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야 하니 '침착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말기입니다. 암이 림프절까지 전이되었고 심각한 상황이에요.”

.

.

.

“네?”


'말기? 말기? 무슨 말이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는 말이 100% 와닿는 순간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어떤 것을 물어봐야 하는 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저희 아빠 얼마 전까지 0기였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의사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항암치료뿐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진료실 밖으로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옆에서 듣던 아빠의 모습도 흐릿하다.


다시 떠오르는 장면은, 밖으로 나온 아빠가 울고 있는 모습이다. 소리 내어 우는 아빠를 처음 보았다.


“네 엄마에게 잘해준 것이 없어서, 이제라도 잘해주려고 했는데... 어쩌냐... 어떡하냐...”


같이 울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은 눈물로 가득했고, 머릿속은 얽히고설킨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내가 열심을 부리고 적극적으로 알아봤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않지 않았을까?'

암이 발견되기 전 아빠의 증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나를 자책했다.


몇 달 만에 이렇게 악화될 수 있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같이 살지만, 달랐던 우리의 일상이 조금씩 겹쳐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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