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방사선, 항암

2-2.

by 생각책가방


"우리 아빠는 머리카락 없어도 멋있네."


듬성듬성 남은 머리카락을 밀고 온,

아빠의 모습을 보았던 날.


멋있다는 내 말에 아빠는 웃지 않았고,

방으로 들어간 나는 꺼이꺼이 울었던.


어느 날의 기억.



말기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절망 속에 울음을 내뱉으며 진료실 앞에 있던 날은,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날들로 이어졌다. 아빠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어 했다. 몇 달 전까지 0기에 가깝다고 했는데, 말기라는 사실을 한동안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알아보니 여러 병원에서 치료 방향을 듣는 것이 좋다고 하여, 아빠가 가고 싶어 하는 병원과 다른 병원들을 예약하였다. 하지만 체력이 약해진 아빠는 걷는 것도 힘들어하여서, 병원은 두 곳만 가볼 수 있었다. 진료를 받은 후, 더 가까운 거리의 아빠가 원하던 병원으로 옮겼다.


전원한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첫 시작일은 2019년 7월 3일이었다.


항암이란 것이 워낙 힘들고 후유증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되고 겁이 났다.

아빠가 견딜 수 있을지 염려되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세포독성항암제(시스플라틴, 젬시타빈)로 시작했다. 3번의 주기로 항암제를 투여했다. 중간에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고 열이 나는 증상으로 쉬기도 했지만, 아빠는 견뎌냈고 3차 항암을 마쳤다.


항암이 끝나고 추적검사를 하였다. 놀랍게도 pet-ct 검사 결과상 암이 사라졌다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암은 남아있다고 했다. 암이 남아있다는 뒤의 말은 아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마음이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이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보이지 않는 암까지 모두 사라지기를 소망했다.

힘들었던 항암이었지만 효과가 있는 것이니, 암이 남아 있다고 해도 어쩌면 기적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느닷없이 닥쳐왔듯, 어느 날 홀연히 암이 사라져 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후 2019년 10월 15일부터,

남은 암 제거를 위해 30회의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중간에 아파서 쉬는 날이 있었고, 통증과 혈뇨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항암 치료를 버텨냈던 것처럼, 아빠는 포기하지 않고 모든 횟수를 마쳤다.


그러나 방사선 치료는 아빠에게 맞지 않았던 건지, 보이지 않던 암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건지, 통증과 증상이 악화되었다.


2020년

5월 20일.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더 독한 항암제였다. 기력이 쇠해져 있던 아빠는 많이 힘들어하였다.

이전 항암제에서는 빠지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몇 움큼씩 빠졌다.


6월

괴로웠던 항암이 끝난 후 수술 날짜가 잡혔지만, 고열로 인해 취소되었다.

수술로 암이 제거되면 호전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아빠는, 크게 실망하였다.


7월

다시 수술 날짜가 정해졌다. 또 수술이 미뤄질까 봐 걱정되는 한편, 방광을 적출하는 큰 수술이라 수술 후 합병증이 있을까 봐 염려되기도 하였다. 수술이 미뤄지는 것도 걱정이요, 수술을 받게 되는 것도 걱정이었다. 그래도 수술을 무사히 잘 마치기만 한다면, 큰 고비는 넘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더 나쁜 일도 있다는 건 내 생각 범위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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