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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Feb 25. 2019

영어는 일 개  언어다.

(1) 영어가 '된다'?

언젠가 어떤 얘기 끝에 문득 누군가 “그런데 너는 언제부터 영어가 되게 되었니?” 하길래 “어, 거…  머…” 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 안 해본 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워낙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어쩌다 한국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하면 영어 얘기가 나오게 마련이기는 하다. 

처음 미국에 와서, 빨리 영어가 배우고 싶어 사방팔방 가능한 클래스는 하루 종일 쫓아다니던 시절, 당시 아이 유치원에 함께 다니던 한 아이 엄마가 미국 생활 2년 차라길래 아이고 영어는 득도(!?)를 했겠구나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막상 아직 득도(?!)는 못한 상태로 5년 차에 신랑이 잡을 얻어 이사한 노스 다코타에서 다시 7년 차 9년 차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는 영어가 아니라 미국 현지 생활의 득도를 탐하던 기억이다. (얘기가 좀 길어서 기회가 닿으면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지만, 5년 동안 부모님에게 전혀 기대지 않고 남편의 빡빡한 박사과정 TA 월급만 가지고 3인 가족이 살려고 하면 슈퍼에 가도 아예 들여다보지 않는 섹션, 한 번 들러보지도 못하는 레스토랑이 있어서 미국 살이를 알고 했다고 보기가 어렵다. 정보가 제한적이었므로.)   

     

그러니까, 미국 살이 대충 2년 차부터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 이제 영어는 좀 되니?”  

한 10년 사니까 “이제 영어는 되겠네”  하고 떠보고, 20년 살았더니, '느이'는, 하고 나를 아주 한국 사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15년 전 남편이 학위를 받아 유학생 커뮤니티를 떠나 온 후로는 주변에 아는 한인들도 한인업소 분들 말고는 거의 없고, 10년 전까지는 아직 전화모뎀이라 느린 인터넷도 별로 사용하지 않았고, 트위터를 시작하기 전인 5년 전까지는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들여다보지 않아서 잘 몰랐기도 하다. 지금은 내가 (영어로) 사는 것을 보면  “이제는 (이만큼 사니까) 할 말 다 하고 사네” 하고 부러워(?) 하기도 한다.


‘영어가 된다’ 이거 어느 수준을 가리키는 것일까?  문득 일어로도 이 ‘된다’는 말이 똑같다는 것이 생각난다마는. (英語ガ できましょう) 한국사람이라고 한국말을 다 잘하는 것도 아니듯 뭐 거창한 수준이라기보다는 흔히 말하 듯 그야말로 '할 말은  다 하고 산다’는 것인 모양인데, 소위 영어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정말이지 It depends…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지’라는 말이다.

 

Depends on…


출신 국가의 문화, 환경도 물론 중요하다.

처음 미국 왔을 때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은 영어와 어순이 같아서 우리보다 영어를 잘한다고들 했다. 그들은 생각 많이 안 하고 그냥 자기 나라말로 생각나는 데로 영어로 단어를 바꾸어가며 말하면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법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클래스에서 친구들을 사귀어보니 그들은 그들대로 중국인 특유의 악센트와 발음 문제와, 동양인의 특징인 복수나 관사 문제가 있었고, 특히 그런 해당 단어가 없는지 she/he를 어느 나라보다 특히 잘 틀렸다. 그보다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국가에 대해 좋게 말해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잘 하든 못하든 두려워하지 않고 말을 하는 것이 더 큰 것 같았다. 


영어 알파벳권 나라들끼리 서로 언어가 배우기 쉽다는 얘기도 자주 하지만 여기도 함정이 있다.

미국인들이 거의 자랑스럽게 하곤 하는 잘 알려진 조크가 있다. 두 개 언어를 말하면 bilingual, 많은 언어를 말하면 multilingual, 자, 그러면 한 개 언어밖에 못하면? 답은 Monolingual 이 아니라 American. 

알파벳을 공유하는 유럽권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아무래도 단어도 비슷하고 좀 낫지만, 문법도 다르고 이들의 발음이나 악센트 문제가 완전히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와도 많이 다른 마당에, 단어도 비슷하다고 했지, 분명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그들도 따로 노력을 해야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사람 귀에는 얼핏 충분히 훌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분명 비영어 국의 사람의 영어에도 특유의 악센트와 발음이 있다. 영국작가의 최신작을 읽으면 찰스 디킨슨 작품의 영어보다도 더 사전을 많이 찾아야 할 정도로 언어는 부단히 진화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아니할말로 한국어에 일어와 중국어와 겹치는 단어들이 더러 있다고 한국인들이 모두 일어와 중국어 배우기가 수월한 것도 아니잖는가. 


언어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막상 반성할 것은 안 하고 쓸데없는 것은 반성하기를 잘하는 한국인들은 흔히 한국인이 익숙하지 않은 알파벳의 발음을 잘 못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는데, 경험에 의하면, 각 개 단어 발음 만으로 치자면 한국인들이 유난히 '발음 자체'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F와 th 발음이 없는 나라도 많다. 혀 탓도 그렇다. 생각해보라. 혀가 길어지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혀 짧은 소리가 날 것이 아닌가. 혀 짧은 소리는 생각해보면 이와 입술이 혀를 자꾸 무는 소리를 내는 것이므로 사실은 '혀 긴 소리'라고 해야 한다. 참고로, 영어로 혀 짧은 소리를 lisp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 단어를 발음해보면 알 수 있듯이 혀를 무는 소리라는 것이다. 

혹자는 영어가 빨라서 못 알아듣는다고 하지만 가령 한국말도 천천히 해도 다 알아듣는 것도 아니잖는가. 히어링hearing이 아니라 리스닝listening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해하며 잘 듣는다는 말은 hear이다. 'I hear you' 라는 말은 그저 소리만 듣는다는 말이 아니다. 주변의 한국말에는 얼마나 우리가 정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생각해보라. 잘 들어야 많이 배우고 모순같지만 '자기 할 말만 생각하지 말고' 잘 들어야 말도 더 잘하게 된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한국인들의 영어는 발음이 아니라 억양=엑센트 문제도 있지만, 문제는 사실, 유독 한국인은 체면치례 문화이기 때문에 넘들 앞에서 망신 안 당하고 ‘완벽한 문장을 완벽한 발음으로 멋지게 구사’하려고 하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생각을 미리 너무 많이 하는 데 있는 수가 많다.

남들 신나게 얘기하고 있는데 혼자 앉아서 한국말로 생각을 먼저 다 하고, 문법에 따라 영어로 옮긴 후에, 열심히 발음에 충실하게 하려고 하니, 이 과정에서 이른바 오버해서(overdoing) p까지 f로 발음하고 별로 안 굴려도 되는 l도 r로 왈왈 굴리는 웃지 못할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열심히 생각해서 한마디 했는데 이미 주제가 바뀌어 넘의 말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하는 봉창 맨이 되기도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과묵해지고 연습의 기회도 적어져 악순환이 계속된다. 

외국인으로서는 발음 무관 영어가 유창(!) 한 것으로 대표적인 나라가 인디아와 이탤리 같은 경우다. 얼핏 웃음이 나올 정도로 강한 저들의 발음과 억양으로, 그야말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남미, 중동이나 중국사람들도 하려고만 들면 별로 여러 가지 신경 안 쓰고 할 얘기가 있으면 한다. 그들 식으로 우리도 발음 신경 안 쓰고 하면 더 오히려 의사소통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의사소통은 그야말로 자신 있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영어 클래스에 미국에 온 지 정말 얼마 안 되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브라질 학생이 왔다. 선생님이 말할 기회를 주려고, 브라질은 소고기 요리가 맛있지?(나는 이때 이 사실을 처음 들었다) 레시피 좀 나눠보렴? 하고 말을 건넸는데, 이 학생은 질문을 듣고 함께 온 사람들에게 자기 나라 말로 묻더니  beef가 무슨 뜻인지 알아냈고 그로부터 한 5분에 거쳐 beef 한 단어를 반복하며 손짓으로 요리를 했었다. 그것도 분명 말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내가 영어가 안돼서…” 이런 자격지심/self-conscious의 말도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은 곧잘 “왜 잘 하구만” 하고 말해준다. 물론 미국인들의 성향대로 친절하게 격려해주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일전에 누가 굳이 설명해주기를 우리는 단 한마디를 해도 엄연히 제대로 된 문법에 대충 맞는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데 완벽(이 어느 수준을 말하는 건지 모르지만) 하지 않다는 이유로 영어를 ‘못 한다’는말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I can speak English 대신 I  speak English 라 말하는 것이 맞다. 미국인들은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can’t 소리 잘 안 한다. I don’t drive. I don’t eat meat. 하고 말한다. 자신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얼른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욕은 물론 '멋진' 슬랭을 빨리 배우려 들기를 잘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어차피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아주 아름다운 영어를 한다고 그런 것은 배우지 말라는 조언을 튜터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어설픈 사투리가 지방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은 이치다. 원래 언어란 진화를 하는 것이고 시대에 따라 유행어라는 것도 생기는 것이 당연지사지만 단정한 영어의 값어치는 슬랭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주변 환경에도 좌우(고 말하고 있지만 좌우 앞뒤 위아래)된다. 아무리 미국에 살면서 영어학원도 다녀도, 집에 돌아오면 한국 연속극 보고, 주말마다 한국인과 골프를 치고, 한 달에 한 번 씩은 한국인들과 팟럭을 하며, 한국교회에 나가면서 영어가 쉬이 늘기를 바라기는 힘들지 않은가. 초반에 한국 성당에 잠깐 나갔을 때(전 예금을 다 털어 넣은 고물차 사고가 나서 폐차하고 난 후로는 라이드를 부탁하기 죄송해서 우리끼리 미국 성당을 나가기 시작했음) 디트로이트서 한 달에 한 번 원정을 오시는 신부님이,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 빨리 잘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려면 이렇게 한국사람들끼리 자꾸 모이지도 말고 서로 아는 척도 말아야 한다고 잔소리하시면서 집에 가면 혼자 심심하다며 사람들을 붙잡아놓고 밤늦도록 술을 드시곤 한 이야기가 있었기도 했지만, 외국어를 배우려면 우선 그 나라 사람들이랑 놀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현지인과 연애가 최고라고들 하잖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 기량이나 성격이 안타깝게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수학 덕후, 역사 덕후, 코드 덕후 다르듯이 분명 언어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언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에 소질이 있다고 볼 수는 또 물론 힘들다. 처음 영어클래스서 만난 한국인 s 씨는 문법 통이었다. 현지인 선생이 놀랄 정도로 늘 문법 시험은 딱 100점 만점의 실력을 과시하곤 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모두 공식(??!)으로 외운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영어로 말수가 별로 없는 편이었다. 초보의 특징 ‘열심히 생각을 하면서 머리로 문장 만들면서’ 말하곤 했던 그가 늘 부러워한 것은 다름 아닌 내가 그렇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썼듯이 나는 영어 익히기를 좋아해서 영어 점수가 좋았고, 대학 졸업하고 나중에 외국인 여행사에서 영어를 써먹을 기회도 있었고, 번역일도 하면서 살긴 했다마는, 신혼여행으로 하와이 간 것 말고는 남편 공부 때문에 미국 와서 영어클래스라는 것도 난생처음 다니고 있던 주제에 내가 무슨 통뼈라고 그보다 영어를 더 '잘했'겠는 가마는, 당시의 나는 새로운 세상에 와서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신기하다고 떠들 일도 많아서 그런지 오자마자 되지도 않는 농담까지 영어로 따먹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나서는 것은 안 좋아해도(나는 어디 가서 친해지기 전에 먼저 떠들기 시작하는 편은 아니다. 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내숭이 아니라 나는 그저 친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남의 눈 신경 쓰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랬는지, 가진 것도 별로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처음 영어를 접했을 때처럼 미국에 왔으니 얼른 영어로 살고 영어로 모든 것을 빨리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는 데는 회화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문법이나 어휘력, 문장력도 고급 영어를 구사하고 글을 잘 쓰는데 필요하므로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도 확실히 해두자. 

다른 나라의 '언어로서의 영어'를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했으니, 다음에는, 그렇다면 '영어를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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