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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Apr 13. 2019

혹은 영어로 맞장구만 치고 있고 싶지는 않을 때(2)

줄넘기처럼 살짝 뛰어들기

그래도 명색이 대한의 학교에서 배운 말들이 있는데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데도 맞장구만 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때는 물론,

I disagree (with you). 동의하지 않아

라고 용감하게 말해도 된다.

된다, 썰렁해지고 나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 가운데 그다음 수습은 당신의 몫이어서 그렇지.


영어는 돌아 돌아가는 것이 수순이다. 몇 번을 강조하지만, 미국인들이 옳고, 낫고가 아니라, 심지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구닥다리 격언을 끄집어낼 필요도 없이, 이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안 그래도 한국사람들은 흔히 너무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도 명절이면 만나 너는 언제 시집갈래, 취직은 안 하니, 왜 이렇게 팍삭 늙었니 해가면서 서로 얼굴 붉히면서도 못 고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면서 대화를 하는 법도 익히면 나름 꽤 편해지니까 나를 믿고 한국에서도 한 번들 완곡한 화법을 써 보시길 바란다. 지구의 평화가 오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으실 것이다.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는데, 동의하지 않거나 오래간만에 나도 할 말이 있는데도 맞장구만 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상황에서 끼어들어 말하고 싶으면,

You know what?

You know what I'm thinking? 있잖아, 내 생각에는 말이야

너 뭐 알아? 가 아니고, 저기 있잖아, 식으로 그냥 하는 말이다.

상대방도 일단 "What?" 뭐? 하고 시간을 주게 마련이다.


뛰어들었으니 이제 줄을 넘어야 하니까, 의견을 말할 때는 멋지게, 네가 틀렸어! 그게 아니야,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말고,

내 생각에는 말이야, I think, 잘은 모르겠지만, I don't know but..(이 화법 때문에 미국인들이 한국말을 할 때, '모르겠어요...'(?!) 하고 시작하는 것을 종종 본다) 하고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면 좋다.

반면, I don't know how.../I don't know why...로 시작하면 '도대체' 어떻게, 왜 이런 식인 다소 공격적인 화법이 되므로 유의하자.


물을 때도, 한국에서 중학교 이상의 영어교육을 받으셨다면  What/when is...?라고 직설적으로 묻는 분은 없겠지만,

I'd like to know...    ~이 알고 싶은데요

Could you tell me...?  ~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보다도 더 완곡한 표현이,

I was wondering if/whether...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 더 용이하게 잘 쓰인다.




그 밖에, 한국사람은 상하관계와 의무가 강조되는 식으로 교육받아 그런지, 이런 것 저런 것을 '해야 한다'는 개념과 태도를 많이 가지고 있는지라 흔히, 너 이거 먹어줘야 돼, 그건 여기 가야 돼, 라는 생각으로 You must/have to 나  You should를 가볍게 많이 쓰게 되는데, 그런 말들은 조금 너무 강한 편이라서 친구라면 모를까 손님이나 윗사람에게 쓰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배웠다. 미국인들에게는 '이렇게 해야만 해' 하는 식의 강요로 들리는 것이다.


자기가 I have to라고 말하는 것도 그냥, '나 오늘 이거(가령 빨래 같은 것) 해야 돼'로 들리는 게 아니라 외부적인 강압이 있거나 적어도 데드라인이라도 있는 것처럼 들린다.

나아가 You'd better 도, 그저 '너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거야'라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딴에는 생각해서 완곡한 조언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의 '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좋지 않을 거야'는 협박에 가까우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어떤 제안이나 조언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수도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기도 할 수 도 있다(조언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으니까) 그런 경우,

You want to를 쓰면 좋다.

직역으로 "너는 이렇게 하고 싶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네가 뭘 원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런 것이 아마도 네가 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뉘앙스를 담고 있다. 완곡히 권하는 것이다.

You don't want to go there. 직역은 너 거기 가고 싶지 않아, 의미는 '너 거기 안 가고 싶을걸'이 된다.

하지만, 어떻든 내가 뭘 원하는 것을 남이 말하는 듯한 문장이 묘한 것은 사실이라 흔히 조언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I don't?" "I do?" 이런 묘한 답들을 또 하게 된다.

누군가가 제안을 하고 받아들일 때도, 그냥 Sure, Yes, Ok, (I) will do (that),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We/I can do that, thanks" 그럴 수도 있겠네, 고마워.

라고 받을 수도 있다.




미국 영화에서 보면 멋진 주인공들의 격렬한 말싸움 장면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실은, 술자리가 있는 곳에 가면 술기운을 빌어 비겁하게 언성 높이는 모습이 흔하게 보이는 한민족과 달리 일반 미국인들은 가벼운 언쟁도 상당히 싫어해서 피하는 편이지만, 혹시라도 언쟁이 되어도 쌕쌕 웃으면서 할 말 다하는 passive aggressive 수동적 공격형이 많은 편이다. 물론 한국 사람들 중에도 '너 어디 가서 그러지 말라고 다 너를 생각해서 얘기해주는 거야'식의 '조근조근 맥이는' 화법도 수동적 공격형 화법에 해당되겠지만.


그래서 정말 대화 중 언성이 높아질 정도로 문제가 생기면 말로 풀어내기보다는 즉시,

You should leave. (이쯤에서) 너 가는 게 좋겠다.

문을 열어주며 완곡히 내쫓거나(이럴 때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가야 한다. 친구 좋은 게 뭔데 그러지 말고 이야기를 해보자며 물고 늘어져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경찰 부른다. 미국인들도 물론 우정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매우 오랜 기간 쌓아온 것이 아니라면 어제까지 파티에서 만나 하하호호하던 사람이 다음날 회사에 나가면 pink slip (핑크 슬립=해고장)을 받는 것이 미국이니 평상시 웃는 얼굴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혹은 반대로,

I should just leave(go). (너하고 상대하기 싫으니) 나 갈게,

하고 나가 버릴 수도 있다. (이것도 물리적으로 잡으면 안 된다. 폭행으로 간주됨)

이 경우는 삐진다기보다는 일단 피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경우, 뒤에 'Before we say something we'll regret later' 이런 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한편 맞는 말이나 사람 감정이 그렇게 칼질하듯 끊어지는 것이 아닌 바 흥미로운 사실임에 틀림없다. 개인사나 가정사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먼저 어쩌다 이야기가 이미 조금 나왔어도,

You (are sure that you) want to talk about it? 얘기 좀 해 볼래?

하고 반드시 묻게 마련이고, 거기서 싫다면 내버려 둬야 한다. 자꾸 얘기하려다 말고 얘기하려다 말고 그래서 속 터지게 하면 한 번쯤 Come on! 해 볼 수는 있겠지만, '말해봐. 친구 좋다는 게 뭐야. 말을 해야 알지~' 하며 졸라서는 안된다.


전화를 하다가도 I gotta go(run) '어 끊어야겠다', '나가봐야 돼', 하면 왜? 하고 이유 묻지 않고 끊어줘야 한다. 친한 사이면 나중에 설명하면 되고 아니면 설명도 필요 없다. 그냥 끊고 싶거나 직접 만나서도 그냥 피하고 싶은 얘기 거나, 말하다 그냥 고만하고 싶어도 그냥 그렇게만 말하면 된다. 괜한 거짓말 하고 핑계 대지 않아도 되어서 익숙해지면 편리하고 좋다. 다툼을 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막상 흔히 '삐진다'라고 말하는 상태는 영어로 뭘까?

삐진다는 것은 말을 안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give the silent treatment. 직역으로 '조용한 벌을 준다'가 된다.

I'm giving him/her the silent treatment. 나 그 사람한테 삐졌어.

Oh, you are not giving me the silent treatment~  삐지기냐? 그렇다고 삐지니?


+참고로

상대방이 언쟁 중에라도 오래간만에 맞는 말을 하면,

touché/to͞oˈSHā/(투쉐) 그 말은 맞네.

사전 뜻은 point is well made 주장이 맞는다, 즉, '졌다'는 뜻도 된다.

어쩌다 논쟁을 벌이다 발단은 어쨌든지 간에 일단 서로의 뜻을 이해했으니 가라앉히고 화해하고 싶으면 악수를 청하며,

Ok, so, truce? 오케 오케, 휴전?

하고 물을 수 있다. 글자 그대로 휴전이란 말인데, 서로 사과할 것 없이 그만 하고 싶으면 웃으며, 그래 그래, 휴전?  하면서 화해를 청해볼 수 있다. 괜히 상대방은 한껏 화가 나 있는데 내가 더 이상 말하기 싫거나, 더 이상 하다간 영어가 딸려서 지겠다 싶어서 이런 말로 끝내버려서는 안 되겠지만.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회 지위가 있든가 직장 상사라든가 하면 미국인들도 나름 긴장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에게 Mr. Ms. 반드시 붙여서 깍듯하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고,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서보다도 학교생활의 규율에 대해 엄격한 편이다. 얼핏 보아서 느슨한 것 같은 법규 같은 것들도 막상 어기면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한국은 계급도 계급이지만 나이가 있으면 어느 정도는 예우를 해줘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물론 나이만으로는 윗사람 대접을 기대하기 힘들다. 아무튼 상하좌우 아무에게나 간섭하는 것은 무조건 좋지 않지만 말이다. 어느 데이케어에서 두 살짜리 어린이가 남의 사물함을 정리해주었다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조언을 부모에게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참으로 미국인들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영어로 읽은 책의 일부를 영한 번역 인용으로 봐도 신기하게 어느 책에서 나온 건지 잘 알아보는 편이지만, 영문 대화는 모두 머릿속에서 반말로 읽기 때문에 대화를 존댓말로 번역해놓으면 매우 낯설다. 특히 하오체는 정말 싫어해서 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오체로 말하는 악몽을 꾼 적도 있다. 하오체는 자동으로 김 사장과 박 여사가  상상되는 말투 아닌가.

이렇게 영어는 '따로' 존대가 없어서 한국말처럼 존댓말의 사용 여부만으로만 시비가 붙는 법은 없어서 편한 건 사실이지만, 물론 교과서에서 배우셨을 can/could you, may/can I, please 등을 넘어선, 위아래 불문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예의 바른 태도와 화법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십사 하는 당부를 드리고 싶은 것이다.


물론 영어로 잘 표현을 못한다고 해서 예의 바르답시고 쏘리쏘리 남발하는 것도 필요 없는 일이다. 어색하다고 괜히 우습지도 않은데 웃지도 말자. 그럴수록 진지하게 열심히 자신을 표현하도록 해보자. 아이가 대학으로 떠날 때 내가 세 가지 당부를 적어 보내줬는데, 그중 하나가 '안 웃길 때 웃지 말고 안 웃길 때 웃지 말자'였다. (나머지 두 가지는 '돈 없으면 쓰지 말자' '인스턴트를 먹는 건 좋은데 인스턴트'만' 먹지 말자'였다-라면이면 파나 계란이라도 넣어먹으라는 말. 지금은 아이가 성인이니까 나보다도 더 건강식으로 잘 챙겨 먹고 있다만.)


물론 살다 보면 별로 안 고마운데 예의상 한 땡큐에 상대방이 아주 쾌활하게 you are welcome이라 답하면 어딘가 의문의 패배감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땡큐와 플리즈는 아침마다 주머니에 자일리톨껌처럼 한 움큼 챙겨나가도록 하자.

모든 성공적 대화의 시작이요 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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