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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Apr 27. 2019

내가 주체가 되어 살기

영어로 살면 의무와 불가능이 줄어든다?


처음에 클래스나 사람들 만나 영어로 자기 소개할 때, 별생각 없이, 딴에는 '그 때 (때가 되서) 미국에 와야 했거든?' 이런 의미로 We had to come to America.(사실은 남미를 포함한 미 대륙 전체가 아메리카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보통 자국을 U.S-U.S.A 도 아님-라고 부른다.) 라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튜터가 조심스럽게 왜 미국에 와야 했는지(도망자?) 물어도 되냐고 물어서, 으잉? 아니, 미국 대학 학위 따려면 미국에 와야 하잖아. 하고 답했던 기억이다.


얼마 후, 부모님께 손 안 벌리려고 겨우겨우 끌어모은 전재산(그래봐야 몇천불)으로 산 고물 중고차를 끌고 다닌 지 며칠 안되어, 어느 집에서 보지도 않고 후진으로 길로 쑥 나온 트럭을 직진을 하던 우리 차가 박아서 차를 폐차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모르고 싸답시고 보상이 거의 없는 보험을 샀던 우리는 그냥 차를 날리게 되었는데 사람이 안 다친게 어디냐고 하기에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미국에서 차가 없이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라서 힘들게 차를 장만해서 참 기뻤으니 그만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 차 박은 운전자가 I didn’t see your car.라는 말을 했었다.

안 그래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아쭈 뭐? 못 본 것도 아니고 ‘안’ 봤다고? 하고 무책임하다 생각되어서 더 화가 났었다. 그런데 변호사였던 내 튜터가 설명해주기를(미시간주는 서로 고소해서 패가망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는 좋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학생인 우리에게는 최악이었던 no fault system이라고 해서 각자 자기 차는 자기가 커버하는 방식이라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받아낼 것은 거의 없는데 이 양반이 나중에 상대편 운전자의 보험사에 레터를 보내 미니멈 커버리지 500불을 받아주기도 했다), couldn’t이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볼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는 게 되니까 외려 책임 회피라고, didn't 이 맞다고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고도 그때는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 지금은 당연히 무슨 차이인지 안다.


미국인들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면 can’t를 잘 안 쓴다. 정말 누가 팔을 비틀고 있는 게 아니면 have to, must도 잘 안 쓴다. 혹 데드라인이 있는 숙제는 나 숙제해야 해, 정도는 써도, 너무 더러워서 방 청소해야 돼, 이런 거 가지고는 have to 잘 안 쓴다. 그런 식으로 말하다가는 자칫 누군가 force to강제로 시키는 분위기가 될 수 있다. have got to(gotta)가 무난하다. (aught to는 미국에서는 이제 거의 안 쓴다)

결석 통보도 학점을 줄 선생님에게 안 온다는 말을 하려면 뭔가 궁색한 변명으로 '못 오는' 이유를 늘어놓으며 can't come이라 말 할 법한데도 won’t be there로 끝난다. 어찌 되었건 이유가 있으니 '안 온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안 오는 사연을 들어보면 2년 전 형이 죽은 날이라는 둥, 이혼을 하는 중이라는 둥, 그래서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지만 말이다.


한국말로는 할 수 없다, 해야 한다, 개념이 매우 헐렁하게 쓰인다. 하지만 사실 보통 개인의 결정은, 실제 가능성이나 강제성은 거론할 필요 없이 그냥 하거나 말거나를 본인이 결정하면 되는 것일 경우도 많다.

물론 실제로 강제성을 띈 일도 있지만, 내 책임의 일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내가 마음먹으면 되는 to do 할(미래형)일 일 뿐이고, 할 수 있어서 한 것은 ‘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했다'라고 하듯이 마찬가지로 정말 못 할 땐 ‘못 했다’는 말도 필요 없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살면서 보면, 말이 태도를 결정하니까 모든 걸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처럼 말하는 습관은 좋을 게 없더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만 하고, 할 수 없는 일이 많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안 하는 정도로 살고 있는 삶은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는 가부장제도도 그렇고, 상하 중심 관계가 많아서 의무적인 것도 많은 편이지만, 때로는 그런 일들도 물리적으로 '못하겠다'라고 핑계를 댈 생각을 먼저 하기보다는 그 결과를 책임질 수만 있다면 '안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의무적인 것이면 할 수 있는 일도 하기 싫고, 하면서도 더 힘들게 마련인데, 파업한 비용 cost가 너무 크고, consequence결과가 너무 dire 심각해질 때는 눈 딱 감고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 치우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result는 아주 직접 적 immediate인 결과고, consequence는 조금 더 나아간 최종 결과, 그리고 ramification은 일파만파 갈라져 나가 다다른 때로는 뜻밖의 결과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눈 앞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멀게 길게 보면 또한 의무나 가능성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 수도 있겠다.   


오늘도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 '할 일', 을 찾아 하시는 하루가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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