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어도 한국어도 한 개의 언어일 뿐이다.
영어 공부에 대한 글이라고 하면 주로 학습법이나 문법책이기가 쉽다. 실제 적용이 거의 불가능한 단어 암기법도 있다. 암기법은 mneumonics이라고 하는데, 사실 모두 각자 자기 자신만의 암기법이 있는 거지 이렇게 암기하면 좋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내 글은 영어'공부'에 대한 글도 아니고, 영어 공부'법'에 대한 글도 아니지만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영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영어공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일 것이라는 추측은 된다. 하지만 영어를 공부하든 일어를 공부하든 언어를 배우는 법이 있다면, 그것은 영어에만 특화된 방법이 아닌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일어도 초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 어학원 기준으로 중급 정도다. 학원에는 사실 진짜 고급이 없다는 말이 있다. 고급이 되면 힘들어지니까 학원에 나오지 않고 쉬다가 다 잊어먹고 다시 중급으로 들어온다고. 아 따가와) 이 정도 가지고는 외려 한자를 많이 쓰는 뉴스는 좀 알아듣겠는데 영화 대사를 다 알아듣기는 통 무리인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영어책을 주로 읽으며 사는 내게 일어는 아무짝에도 쓸데없기도 하고, 할 일도 있고, 좋아하는 책들도 눈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서둘러 읽어야 하니 쓰지도 않을 일어 공부를 무작정하고 있을 수가 없고, 그러니 일본어 봇 몇 개를 구독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영어보다는 관심을 덜 주게 된다. 공부할 때 말고는 일어 문장을 보면 당연히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2차 세계대전 적함 위치 찾아내기 위해 해독하듯 읽기' 밖에 못하는 것이다. 가령 박물관 가이드 북이 있으면 이제는 한국어로 된 것이 있어도 영어로 된 것으로 집지만 일어로 된 것을 집게 되지는 않는 식이다.
내 생계하고 관련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어로 살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니 물론 일어로 생각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태껏 내가 말한 내 기준으로 나는 절대로 아직 일어가 '된다'라고 말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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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하나의 언어일 뿐이라는 것은, 한국어도 누군가에게는 배워야 하는 언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내 아이는 역으로 한국어가 외국어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모국어로의 한국말의 경우는 사람들은 '얘 (한국) 말할 줄 알아?' 하고 묻지 얘 한국말 돼? 하고 물어오지는 않는 거 재미있다. 모국어는 그냥 하는 거고 외국어는 아무래도 그저 '되는'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일까?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 엄마 아빠 까까로 말을 시작한다고 하면 '엄마'를 한 번 말하는 순간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되는 것일까, 밥이라도 얻어먹을 정도가 되어야 말을 할 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어제는 안 되고 오늘은 되는 건 분명 아니니 자전거나 수영처럼 한번 배우면 몸에 익는 것 쪽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누가 너 한국말 되냐든가 할 줄 아냐든가 묻지도 않지만, 사실은 참 말솜씨도 없고 글도 영 못 쓰는 사람도, 국어 점수도 안 좋고 한국어로 글을 읽어도 이해도 잘 못하는 사람도 정말 많은데, 정말 놀랍게도 그들 모두가 자기가 한국말을 '한다'라고, 심지어 문제없이 잘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주목하자.
가끔 특히 어르신들이 연속극 이름을 틀리게 말하거나, 그 뭐냐, 그, 하, 그거 있잖아, 왜, 하고 뭔가의 이름을 빨리 기억 못 해도, 그 사람 참 한국말 못 하네, 생각하지는 않는데 만약에 한국사람 중 누가 영어로 그런다고 하면 단박에, 에그 영어 못하는 구만, 하고 생각할 것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이 모든 생각의 근거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국에서 한국어로 먹고사는데 대충 ‘문제가 없으면’ 한국말을 문제없이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5살 되기 직전에 우리와 함께 미국에 온 아이가 벌써 유 씨 버클리를 근근이 졸업하고 이제 한 동부 주립대에 분자생물학 박사과정 2년 차다.(박사는 받아야 받는 거라서 아직 소속을 밝지 않기로 함)
나는 앞서 말했듯이 내가 책이 읽고 싶어서 한글을 혼자 배웠기 때문에 그런 건 때가 되면 배우는 것이라 여겼는지 아이에게 한글을 따로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지만, 아이가 오기 전 다니던 놀이방에서 다행히 한국어 읽고 쓰기를 배워가지고 오긴 했는데, 나는 무슨 배짱으로 미국 오면서도 아이에게 알파벳 하나를 안 가르쳐서 데려온 모양이다.(남의 얘기하듯 하고 있음을 주목하시오)
(그래서) 처음에 아이가 처음 킨더에 들어가 영어 배우느라고 힘들었던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하기로 하고(미국에서 한국 어린이가 영어 배우는 이야기이므로 들어둘 만한 이야기가 있을 것도 같지만 일단 미루는 것은 책임회피인가), 아무튼 몇 년이 지나 영어를 더 잘하게 되니까 자연히 다시 한국어를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제야 한글의 구조 이해에 필요할 것 같아서 집에서 한자 딱 100개를 가르친 것이 이른바 내가 한 '체계적인' 한글 교육의 다 다. 하지만 이것은 뜻밖에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
우리는 앞서 말했다시피 남편이 학위를 받고 이주한 후로는 한국 교민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보통 미국에서는 한인교회에서 하는 한글학교는 보낸 적이 없고, 어려서는 한국에서 가족들이 보내준 한글 동화책으로 한국말을 유지하고, 고등학교 나이쯤 돼서는 한국방송 코미디(?) 프로그램 같은 걸 같이 보면서 나름 꾸준히 가르치기(?)는 했다. (내가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말장난을 좋아하기 때문에 외국어로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말장난은 언어를 배우는데 중요한 수단이라고 우겨본다. 이 연재가 끝나면 앞으로도 트위터로는 글자 수가 모자라서 장황해져 못했던 재미있는 말장난도 더러 소개할 생각이다 )
그래도 어려서 읽힌 동화책 후로는 한글책 독서는 전혀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또래에 비해, 그리고 지적 수준이나 영어 단어에 비해 한국어 어휘력은 많이 뒤떨어진다. 티브이 프로그램도 한국어 일상 대화는 75% 정도 알아듣는 것 같은데, 사극이나 뉴스 같은 것을 보면 단어의 의미를 영 모르는 눈치라 물어보면 마지못해 50% 란다.
외국어로 배우려고 들면 한국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아는가.
가령, 오래전 한국말 가르치려고 사온 만화책 둘리를 보자. 어린이들 보는, 그것도 만화니까 쉬울 것 같지만 시작부터 나오는 단어들이, 건방진, 지난해, 무공해, 삽시간에, 정체불명의, 빙산이, 교각 건설 중인… 한 페이지에 벌써 이러니, 할아버지가 야망 차게 보내주신 한국 역사만화에서 '때는 고종.. 년, 바야흐로'로 시작되는 것은 얼마나 불가능한지 대충 감이 잡히실 것이다. 사실 영어로도 그렇고, 만화보다는 차라리 동화책이 쉽다.
내가 자란 문화에 걸맞은 태도 같은 것도 전달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아이는 설명하면 액면가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나도 더 이상 믿지 않는 의무적 충효 개념이라든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시댁'이니 '상사'등과의 위계에 쓰이는 말들의 용도 등은 설명하기 참 어렵고 많은 부분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지야와 공부나 학교 얘기할 때, 그리고 꼭 알아들어야 하는 중요한 얘기를 할 때는 영어를 쓰고, 일상 대화를 할 때는 한국말에 영어를 섞게 된다. 어순도 뒤바뀌어 있고, 괜히 wow 같은 감탄사 같은 거 하는 거 말고, 일상용어 등은 우리가 여기서 영어로 더 자주 쓰는 말들이나 영어로 먼저 배운 의미의 단어들이 주로 그렇다. 만약에 정말 내가 여기서 한국말을 하는 대로 글을 쓰면,
이거 어디다 pay 하나요? 제가 그럼 거기에 drop 해 드릴게요. expiration Date가 어떻게 되나? 이렇게 된다. 꼭 섞어 쓰고자 해서도 아니고 pretentious 해서도 아니다. 나이가 있는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조용한 성격이나 outgoing 한 사람이나, 대개 영어로 쓰는 their own 단어 list가 exist 한다. 그 말은 다들 영어로 하는 것들 말이다. To me, 그 certain 단어에 해당하는 한국말 단어가 딱히 없을 경우도 많은데… well, not exactly. Not that simple. (보시다시피 딱히 아는 체하려고 쓴다고 할만한 어려운 단어도 아니고 한국말로 없는 말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된다. 한 마디로 우습다.)
사실 한국 영어학원에서도 한국말하면 안 되는 식으로 진행하는 곳이 있듯이, 한국어를 배우는데도 영어를 섞어 쓰게 두면 배우는데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누누이 말하지만 그 나라말로 '생각'하려 하지를 않으니 단어만 늘지 않는 게 아니라 어순이 다른 문장도 깨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일 년에 한 달이나 볼까 말 까고, 만나면 아무래도 편한 가족이고, 그러다 보니 우리끼리는 좀 봐주게 되고, 이러니 우리가 한국말을 가르친다고 해도 지야가 배우는 한국말은 '이상하다'. 게다가 아이가 어려서 쓰던 한국말 발음을 귀엽다고 우리도 쓰던 게 아직도 쓰이고 있고, 아이는 남편과 내가 주고받는, 지금 한국 가서 쓰면 간첩되는(이 말 자체도 아마도 뒤떨어진 말일 것이다) 20년 묵은 한국어 슬랭도 배우고, 어쩌다 할아버지하고 통화하면 사투리도 듣는다.
내가 언급했듯이 언어 전환 모드라는 것이 있어서 발동이 걸리면 한국말 모드가 되어주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미국 국내선 게이트만 가도 착! 다시 영어 모드로 변환이 되어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한국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 보면, 혹시 영어를 섞어도 '잘난 척' 하는 걸로 여기지 않을 사람과는 긴장을 안 하니까 외려 영어 안 섞고 말을 더 잘할 수 있는데, 영어를 절대로 섞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람과 얘기를 하려면 그야말로 떠오른 내 생각을 다시 한국말로 확인 번역하느라고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도, 영어 한국어 섞어 써도 되는 우리끼리는 한국말이 좀 '되는'데, 외려 한국에 가서 낯선 한국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는 이적지 한국인 친구는 한 명도 없고, 아시다시피 자랄수록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한국어로 발음은 물론 어눌하고, 아는 분은 아실 것이듯이 기본적으로 영어는 발성 자체가 한국어 발성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와 짧은 단어를 주고받는 수단 외에 언어로의 한국어를 그럭저럭 이해하고 있는데도 자신감이 없어서 말을 잘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집도 완전히 떠나고, 말하자면 가끔 메신저로 내가 한국 가족 소식 전할 때나 섞는 한국어 외에는 영어만 하고 살게 되었는데도, 그래서 한국어가 더 늘었다고 보기는 힘든데도, 가령 집에 들르러 왔을 때 한국 가족들과 통화라도 하게 되면 나름대로 자기가 이만하면 '하나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듯한 자신감을 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발음이나 발성이 이상한 부분을 외국 어니까 어느 정도는 당연히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더 잘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어도 하나의 언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아이가 대학을 가기 직전까지는 아이가 (영문) 에세이를 쓸 때 아직 perspective 관점이 성숙하지 못하거나, 문장이나 전체 structure구조가 좀 헐렁할 수도 있는 부분을 분명 제2 외국어인 영어로도 내가 도와줄 수가 있었지만, 이제 아이가 논문을 쓰고 있는 수준이 되고 나니, 이젠 거꾸로 혹시 내가 의미 전달에 자신 없는 미묘한 부분은 에디팅을 도움받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한글도, 머리가 굵어지면서 영어로 어휘력과 문장력 구사력이 성장하는 만큼 한글도 언어 시스템을 익히는 실력이 늘어 단어 하나를 배워도 스스로 받침이나 단어 구조 같은 것도 알아서 신경 써서 배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이도 한글로는 글을 잘 읽지도 못하고 당연히 어른처럼 글을 써 내려갈 수는 없지만, 어렸을 때처럼 소리 나는 대로 순진하게 마구 쓸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언어의 '수준'이라는 것은 꼭 발음이 좋고 말을 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1) 2) 3)에서 영어가 되느냐 안되느냐 기준이 한국어에도 평행으로 적용되는 것을 보셨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어도 일 개 언어이고, 영어도 일 개 언어이고, 그러니까 영어는 1 개의 언어일 뿐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일단 영어는 언어고,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잘하는 마음가짐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다른 사람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의 의사 전달을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
문법, 단어 등은 어쩌면 그다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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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내가 적극적으로 고군분투하며 익히는 영어를 강조한 만큼, 흔히 말하는 '자연스럽게 배운다'는 말의 어불성설에 대해서는 또 할 말이 있지만, 일단은 그래도 언어를 단어나 문법의 억지 '암기'로 배우면 실제로 쓸 수 있는 언어가 못 된다는 노선은 확실하다.
발음할 수 없는 단어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발음을 모른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사전적 의미를 외워가지고는 있지만 발음할 수도 없어서는 사실 그 말을 정말 '안다'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자신이 없을 수밖에 없고, 그러면 말을 입에서 내 보낼 수가 없달까. 그것이 오늘 이 연재가 끝나면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들의 소정의 목적이다.
많은 언어 중에서 '영어라는 언어'를 깊이 알고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
모든 언어는 어딘가 열쇠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산다.
언어는 '어린아이도 배울 수 있게' 나름의 규칙을 자체로 보여주게 되어있으니까.
영어는 일 개 언어이다. (끝)
*앞으로는 찬찬히 몇 개 단어를 깊게 생각해 보기도 하고, 같은 단어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도, 어원을 살펴보기도, 비슷한 카테고리의 단어를 모아보기도 할 것이다. 단어는 많이 아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단어를 이해하고 흥미를 가지면 뜻 외에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는 생각이다. 알아야 하는 단어, 몰라도 되는 단어는 따로 없다. cilantro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혹은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에게 고수란 말은 반드시, 기필코, 꼭, 알아야 하는 단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