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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02. 2019

알래스카 봄 이야기(5)

오 데날리

데날리 산을 보는 방법은, 데날리 산자락에서 가까이 보는 것과 국립공원에 들어가서 아예 산속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멀리서 한눈에 알래스카 산맥을 파노라마로 보는 것, 세 가지 방법이 있다.

5월쯤 되면, 해는 길어졌지만, 데날리뿐 아니라 알래스카 산맥의 꼭대기들이 아직  하얗게 눈에 덮여있어 멋질 때고, 알래스카 주립대 캠퍼스만 올라가도 남쪽을 바라보면 한 시간 반 거리의 알래스카 산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네, 제가 이런 곳에 삽니다. 저 사람은 제가 아니지만.

날씨만 허락하면, 이것만 봐도 한국에서 동남아 패키지 4박 5일 비용을 알래스카 행 비행깃값 만에 털어 넣어 알래스카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장관이다. 대학 도서관에 책이라도 빌리러 가면 쌓아놓은 책은 그대로 두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 썩은 도낏자루만 싸 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웅대한 산맥의 광경이 오로라보다도 더 끊임없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단, 이 장관을 보기 위해서도 페어뱅크스의 날씨가 아니라 데날리 산맥의 날씨가 중요한데, 워낙 산이 높기 때문에 ‘그 지역에’ 구름이 끼면 산을 덮어버리니, 그러면 데날리가 아니라 산 할아버지 구름모자만 보고 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날씨는 오로라에만 상관이 있는 게 아니다. 산은 바다처럼 날씨 예측이 어렵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게 산의 정기를 받아 마신 후, 주립대 캠퍼스 내에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자연박물관에 들러 보는 것도 좋다. 지구의 여러 요소의 흐름을 색과 소리로 바꾸어 오묘한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고요한 방에 들어가 앉아 보고, 실제 이 지역에서 발굴한 아가 매머드와 이런저런 알래스카의 역사적 기록, 알래스카 원주민 공예품, 그리고 알래스카에서 캔 금덩어리나 장신구들, 사이드 테이블만 한 흑요석 등 알래스카 산 광물과, 아주아주 거대한 곰 박제 등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커피숍은 좀 더 보강했으면 좋겠다. 어째서 갈 때마다 휴업이야 오세요 알래스카 멋진 커피숍 창업 기회가 있는 곳.다.


멀리서 보는 것도 좋은데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다는 분들이 물론 계실 곳이다. 인류는 보이면 만지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달까지 갔다는 말은 정말 옳은 말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은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

페어뱅크스에서 남쪽으로 200㎞정도 거리를 달리면, Nenana니나나 강을 끼고 근사한 호텔들과 크고 작은 케빈 들의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는 곳을 거점으로 ‘데날리 관광’이며 래프팅 등을 즐길 수 있는 관광타운으로 가면 된다. 앵커리지에서는 조금 더 멀지만, 앵커리지 근처에는 또 다른 높은 산맥들이 많이 있으니까 굳이 데날리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백두의 산맥은 정말 멋지기 때문에 카메라가 후진 것으로 유명한 아이패드로 아무렇게나 찍어도 이발소 달력각 장관이 척척 잡힌다.

데날리 산은 높이 6,194m로, 코르딜레라 산계의 북쪽 끝,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국내 최초 에베레스트 등반에도 성공하신 고상돈 님이 정복한 후 하산길에 그만 안타깝게 사망하신 산이다. 알래스카 원주민이 오래전부터 '높은 곳, 위대한 것'이라는 의미의 데날리라고 불러왔는데 1897~1901년 재임한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를 기념해 (왜죠) 한동안 엉뚱한 매킨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 데날리로 이름을 바꿀 것을 선포함으로써 제 이름을 되찾았다.

이 바람에 알래스카에서만 맛볼 수 있던 '맥'킨리 버거가 맥도날ㄷ에서 사라지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데날리가 본 이름을 찾은 것도 중요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알래스카 방문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미국 대통령 후보들은 이른바 swing state라고 불리는, 표가 아슬아슬한 곳에서만 선거운동을 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인구 대비 대통령 선거 표 3석짜리 알래스카나 4석짜리 하와이를 올 일은 없기 때문이다. (가령 뉴욕주는 29석) 그래서, 이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긴 해도, 골수 공화당 알래스카에 민주당인 오바마가 왔을 때는 깃발을 들고 마중 나가고 싶은 것을 조용히 살고자 하는 나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꾹 참았다.

미시간에 살 때는 먼발치에서나마 부시와 클린턴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노스다코타 (3석 - 알래스카와 인구가 비슷함) 포함, 인구 적은 곳에 살면 치사하게 얄팍한 정치인의 푸대접을 받는다는 설움의 산증인이라서, 나는.


하와이와 알래스카가 미국의 주가 되려고 49위와 50위를 다투던 시절에, 알래스카가 간발의 차이로 하와이를 앞서 49위가 된 것의 배경도 우습다. 당시 정권을 쥐고 있던 민주당이 하와이가 더 보수적이고 알래스카에 반골(?)이 많을 것이라고 (결과적으로 잘못) 판단해 알래스카를 먼저 받았는데, 알고 보니 지금까지 알래스카는 다른 건 모두 반골 맞는데 (마리화나 합법이나 낙태 허용 등)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이 확실하고 오히려 하와이가 민주당 지지 주였다나.


화셜,

데날리 관광이라고 하면 물론 북한산 자락 산악회 용으로 사들인 그 등산복을 입고 ‘등반’씩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데날리 국립공원’ 숲에 들어가 보는 것인데, 아무 차나 몰고 개인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5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원주민 협회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설명을 들으며 일종의 사파리를 즐길 수 있다. 운영 시간과 스케줄은 신청 인원에 따라 다르다지만 일단 7~8시간 정도 걸리는 모양이고, 중간에 내리거나 타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니 노약자들이나 성격 급한 사람들은 힘들 수도 있다.

이 탐방을 하는 목적은, 주로 동물원에서 늘 잠만 자고 냄새나는 상태가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서식’하는 동물을 보겠다는 것이 가장 클 텐데 (물론 여전히 잠을 자고 있거나 냄새가 날 수는 있다), 알래스카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은 물론 아프리카 사파리의 그것과는 달리, 무스, 산양, 순록, 사슴, 흰머리 독수리, 카리부, 여우, 늑대, 갈색곰 등이 될 것이다. ( 강조: 곰 이야기할 때 말했지만, Polar bear 북극곰은 이 남쪽에선 절대 못 본다)


하지만, 몇 시간이나  버스에 꼬리뼈 아프게 갇혀 있었는데도 곰은커녕 무스 한 마리 본 적이 없다는 불평도 들은 적이 있으니, 과연 시간과 돈을 들여 꼭 가야 할만한 투어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기상이 허락하는 한, 길에서만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눈 덮인 산맥의 장관이며 자연의 숲을 볼 수 있고, 산악지역이라서 예측하기 까다로운 기상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7시간의 버스 투어 역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우는 돈을 미리 지불했다는 걸 기억한다는 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데날리 지도. 초록점이 찍힌 공원 안 도로로는 개인차는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디타워만 가봐도 아시겠지만, 높은 것은 멀리서 보아야 그게 높은지 알고 사진(!)에도 담기기 때문에, 천하의 데날리도 그냥 동네 숲과 별로 다를 바도 없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개인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트랙 코스들도 있긴 하지만, 트래킹에 숙련된 분이 아니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일종의 등산로긴 하지만, 앞서 말한 곰 문제(!)도 있고, 한국처럼 손잡이와 발디딤과 오리탕 막걸리 파전집을 만들어 놀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 무게 정도의(안알랴줌. 그다지 무겁지는 않은데 그래도 애 하나라도 짊어지고 다니라고 하면 힘들걸요) 식량과 침낭과, 다시 말하지만 무기를 소지하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진취적인 기상은 멀리서 받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교가마다 들어있는 이런저런 한국의 동산의 기상을 받고도 우리 모두 이다지도 잘 성장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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